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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30 15:59 수정 : 2005.06.30 15:59

5년여 전부터 급속히 성장해 연간 3천억원대의 시장으로 커진 ‘학습만화’가 ‘교양만화’로 거듭 나려면 새로운 변화와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그리스로마 신화>(가나출판사) 1000만부, <코믹 메이플 스토리>(서울문화사) 245만부, <마법천자문>(아울북) 300만부, <살아남기>시리즈(아이세움) 280만부, 만화 삼국지(아이세움) 300만부.

이들 학습만화는 내리 몇주째 종합순위 15위권(북새통 집계)에 드는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코믹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도 가세했다.

이들은 여러 권으로 된 시리즈라는 게 특징. <그리스 로마 신화>는 20권째, <코믹 메이플 스토리>는 9권째, <마법천자문>은 8권, 살아남기 시리즈는 12권째다. 신화, 게임, 마법 등 판타지적인 주제와 기법을 차용한 점도 눈에 띈다. <마법천자문>이 한자의 새김과 소리를 주문으로 사용한 방식은 일종의 트렌드까지 만들고 있다.

이처럼 아동 학습만화 시장이 불붙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동안 초등학생들이 마음놓고 볼 만한 만화가 적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기왕의 학습만화들이 정보전달을 위주로 빡빡한 내용을 딱딱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해 온 점이 지적된다. 다시 말해 만화가 아동들의 지배적 미디어로 자리잡았음에도 지나치게 오락 또는 학습에 치우쳐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동들은 만화를 넘어 컬러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게임에 무한정 노출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탐닉하게 되었다는 거다.

이렇듯 여건이 무르익은 마당에 신종 학습만화가 치고 들어온 것. 참신한 아이템, 만화적 재미와 학습의 적절한 조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에 질높은 그림과 컬러로 완성도를 높여 접근했으니, 아이들은 빠져들고 학부모들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거다. ‘에듀테인먼트’란 말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아울북 김진철(47) 상무는 “<마법천자문>이 한자를 놀이대상으로 삼으면서 한자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또 서울문화사 최원영 차장은 “어른만의 생각으로 어린이들에게 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횡포”라며 “어린이에게 만화는 청량제, 오아시스”라고 말했다.

고급 만화 작가 대거 유입

학습만화 시장은 한해 전체 만화시장 7500억원 가운데 35~40% 가량 점유하여 3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콘텐츠문화진흥원 통계, 2003년 기준) 2500억원 규모의 만화영화보다 훨씬 크다. 이 시장은 90년대부터 커지기 시작해 2000년 초반 가나출판사의 <그리스로마 신화>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급속성장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학습만화 시장이 커지면서 돌파구를 모색하던 일반출판사들(21세기북스, 한스미디어, 한언, 홍진피엠 등)과 코믹출판사(대원, 학산, 서울문화사 등)이 새롭게 뛰어들면서 학습만화를 해온 기왕의 출판사들(예림당·능인, 대교출판, 지경사 등)과 함께 시장을 삼분할하고 있다.

양의 변화는 질적인 변화를 불렀다. 애니쪽 고급 작가군이 대거 학습만화 시장에 유입되면서 화려하고 다양한 스토리와 작화가 가능해졌다. 아이세움의 살아남기 시리즈의 경우 만화잡지(아이큐챔프, 점프) 출신 강경효, 문정후, 정준규씨 등을 영입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와함께 애니와 게임의 입체적인 기법을 채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스토리와 그림이 분화된 것도 주요한 변화 중 하나. 그에 따라 기획자나 편집자의 몫이 커지는 양상이다. 이태훈(36) 웅진주니어 만화팀장은 게임기반 캐릭터 만화가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미있게 공부하는 효과” 인식퍼져 한해 3000억대 시장으로 급성장
그러나 상업성이 지나치다 콘텐츠보다 오락 · 감각적 색상에 치중
소수업체 과점 심해 다양성 막아 교양만화 확대 발전 모색할 때

잘 나가는 학습만화들은 대체로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과학학습만화 WHY 시리즈(예림당·전16권)는 주인공이 테마별로 궁금증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수학마왕과 대결하면서 진도를 나아가는 방식인 수학마왕 Z 시리즈(웅진주니어), 주인공이 무인도, 아마존, 사막 등 자연지역에 떨어지거나 이라크, 프랑스, 중국 등을 여행하면서 지식을 알아가는 살아남기와 보물찾기 시리즈(아이세움)는 극적 요소가 훨씬 많이 가미됐다. <먼나라 이웃나라>도 비슷한 형식이다.

영어교재 <영공전설>(웅진닷컴)은 <마법천자문>과 형식이 같다. 주인공이 영어단어 철자와 뜻을 주문으로 외우면서 몬스터와 대결한다. 수학마왕 시리즈와 더불어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과목의 지식을 마법의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한다. <조선왕조실록>(현재 5권·휴머니스트)과 <만화삼국지>(전10권·아시세움)는 박시백, 이희재 화백의 독특한 그림체에 기댄 수작. 어린이와 청소년한테 두루 읽힌다. <코믹 메이플 스토리>와 <코믹 크레이지 레이싱 카트라이더>(서울문화사)는 학습만화라기보다 일반만화에 속한다.

학습만화가 덩치가 커진 데 비해 콘텐츠의 수준이나 적절성에 관한 평가는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오로지 학부모와 아동들의 선택, 즉 시장기능에 맡겨져 판매부수가 질적인 평가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면서 공급자인 출판사가 전횡하거나, 그들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가되는 모양새다.

업체들 따라하기 졸속제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지나친 상업성.

살아남기나 마법천자문은 학습 대 만화의 비중이 6.5:3.5 정도로 평가된다. 기왕의 학습만화(80:20)에 비해 만화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마법천자문> 한권에 나오는 한자가 20자에 불과하다는 불만은 꽤 많다. 게임·애니의 감각적 색상과 오락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차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성식(36) 한솔교육 출판사업본부 개발팀장은 “실제로 학습만화를 기획해 보니 아이들 감성에 맞춰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극적 요소가 차용되면서 콘텐츠가 빈곤해지거나 올 컬러 제작으로 학부모들의 책값 부담이 커졌다. 예림당 출판기획실 박효찬(40) 부장은 “흑백 학습만화는 값이 싸도 전혀 팔리지 않는다”면서 “추세에 따라 기존의 흑백교재를 컬러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된다 싶으면 우르르 따라하기는 출판계의 고질. 현재 웬만한 출판사 치고 아동만화를 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새로 뛰어들 채비를 하는 학습지 회사들도 다수다. 아류책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마법천자문>은 아류가 10여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까지 비슷한 한자교재를 만든 형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편승한 이순신, 장보고 전기만화도 그렇다. 휴머니스트 한상준(35) 만화팀장은 “넉달은 걸려야 제대로 나올만한 교재인데, 20일만에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회사도 있다”고 개탄했다. 베끼기, 졸속제작은 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학부모단체 적극 관심 가져야

밀리언 셀러의 그늘은 예상보다 짙다. 몇몇 책이 시장을 과점하면서 나머지 학습만화들이 현저하게 덜 팔리는 것이다. 학습성이 뛰어난데도 1만부를 못 넘긴 사례가 많다. 다양성이 생명인 학습만화에는 치명적인 결과다. 모든 아이들이 신화나 한자만 공부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기왕의 시장도 과학, 한국사, 중국고전 등 몇몇 분야에 편중되어 있는 터에 한자나 신화 등 특정 분야의 책이 싹쓸이하면서 다양한 책이 나올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형국이다. 겨우 움트기 시작한 교양, 경제 등 분야도 주춤한 상태다. 특히 창작동화, 한국고전의 개발과 판매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우려할 만하다. 예림당 박효찬 부장은 “게임 캐릭터나 기법을 차용하면 매출이 보장되는데 굳이 돈들여 교재를 개발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사업을 포기한 데도 있다. 아이엘비(계림 자회사)는 편집팀을 해체했고 큐피드(효리원 자회사)도 책을 안내고 있다.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몇몇 호황인 회사를 빼면 아동학습만화 시장은 크게 위축되어 있다. 1년 전부터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기존 학습만화 출판사 쪽은 밝혔다. 청소년용 고급만화 기피현상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전통적인 학습만화 출판사가 콘텐츠에 기법을 보강하고 신입출판사가 학습쪽을 보강하면서 자연스럽게 균형점을 찾아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만화가 종합적이고 폭넓은 사고를 전달하는데 유리한 미디어인 점을 중시하여 ‘학습만화’를 ‘교양만화’로 확대·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견 출판사들이 적절한 트렌드를 리드하고 후발업체들이 따라 붙으면 시장이 바로잡힐 것이라고 예상한다. 학부모 단체나 언론의 적극적인 관심이 시행착오를 줄일 것이라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학습만화가 지식 스펀지인 아동들에게는 장래의 방향타, 학부모들에게는 자녀들과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할 수 있는가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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