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30 16:16 수정 : 2005.06.30 16:16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공사현장은 이화학당이 복원될 자리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화여대 교정을 모처럼 산책했다. 이대에 마지막 와 본 게 1990년대 초반이었고, 그때는 금남의 구역이었으니 이대 산책은 감회로운 경험이었다. 오랫만에 돌아본 캠퍼스는 지난 10여년 새 달라진 대한민국의 풍경과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캠퍼스 안팎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3건의 공사가 서로 묘한 대조를 이루며 기자의 시선을 끌어 당겼다. 그것은 한 대학 캠퍼스라는 공간을 넘어 지금 우리 시대가 표출하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표상하는 기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의 많은 대학들은 지금 공사 중이다. 미래, 비전, 개혁, 국제화 등등 각종 명분을 앞세워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외형을 바꿔가고 있다. 건물이 들어설 공간이 부족하면, 운동장을 깍고 녹지를 메워 버린다. 내실은 어떨지 몰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학은 왠지 무능하고 시대에 뒤쳐져 보일 정도다.

386세대 이상의 세대들은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 한번 들러보시라. 무언가를 짓고 있거나, 짓기 위해 공사판이 벌어져 있다면 당신은 그래도 최소한 ‘돈있거나 돈되는 대학’은 나온 것이다. 앞으로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다면 2000년대 이전의 캠퍼스는 마치 식민지시절이나 전쟁 복구시대의 흑백사진처럼 과거와 현재를 구획하는 경계선이 될지도 모른다.

기부 손벌리는 대학들

내년에 개교 120주년을 맞이하는 이대 정문을 들어오면 2007년 말 완공을 목표로 시작된 ‘꿈의 이화 프로젝트’ 청사진이 진열돼 있고 그 뒤로 공사를 앞둔 빈 터와 마주친다.

이대는 지난 5월16일, 1935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온 이래 그 틀이 유지되어온 이대 교정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대역사”의 첫 삽을 떴다. 새 초현대식 교사의 이름은 가칭 이화삼성캠퍼스센터(ESCC). 신인령 총장은 기공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기존의 낙후된 건물의 보수(renovation)와, 연구중심대학 및 국제화 목표의 달성을 위한 인프라로서의 대학원생과 외국인교수 및 유학생을 위한 기숙사이며, 장차 충원될 교수들의 연구실 등의 연구공간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한 학생들에게 국제적인 수준의 다양한 학습을 위한 실험의 장과 복지시설을 제공하는 것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 동안 잠정적으로 이화캠퍼스센터(ECC)라는 이름으로 준비해 왔으나, 건축기금의 상당부분을 기부해 주는 기부자와 건물 명칭을 공유하는, 우리의 약속과 관례에 따라 이화·삼성캠퍼스센터(ESCC)로 잠정적인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대학들이 부자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지만 모두 다 원하는 결과를 얻고 있는 건 아니다. 대표적 기업 삼성의 경우 적어도 20여개 대학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기부금을 요청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대나 이화여대는 삼성의 기부를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선택받은 대학인 셈이다. 앞으로도 많은 대학들이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교육지표’ 아래 더 많은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자본가들에게 기업보국, 교육입국의 정신을 호소할 것이다.

이건 단지 일개 대학의 캠퍼스 리노베이션이나 교육환경 개선 차원에서 발상되는 건 아니다. 좋든 싫든 2005년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관철되는 핵심적인 한 단면이다.

대한민국 시대정신의 한 단면

이대 교정에 ESCC말고도 신축중인 이화신세계관을 비롯해 이미 포스코관, 이화삼성교육문화관, 에스케이텔레콤관 같은 건물이 있고 중앙도서관 안에 고 최종현 에스케이 회장 기념실이 있는 건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사와 맥을 같이한다. 눈은 높고 손은 낮은 처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이 없다. 넘쳐나는 자본의 힘을 빌릴 수밖에. 그래서 한국의 유수한 대학들은 너도 나도 유명기업이나 자본가의 이름으로 캠퍼스를 채워가려 안간힘을 쓸 것이고, 그렇게 세워진 건축물들은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역사적 증거를 자임하게 될 것이다. 비록 학문의 전당이 가게 간판이 즐비한 시장통같은 모습으로 비친다 할지라도 그쯤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고려대 보직교수들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학생들의 불경을 사과한다며 보직사퇴를 발표한 사건은 사(士)의 상(商)에 대한 정신적 굴복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상이 사를 기르고 평가하는 시대의 도래를 확인하는 것이었고, 현재 우리의 시대정신이 ‘돈에 대한 숭배’라는 사실도 새삼 깨우쳐 주었다.

10여년만에 이대 교정을 산책했다
한쪽에선 이화학당 교사가 복원되고
다른 쪽엔 삼성 돈으로 건물이 올라간다
대학이 실용주의의 기지로 전환되는 지금
미래 지원해줄 부유한 파트너를 갖게 될
이 땅의 ‘일류대학’들은
우리 사회에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이대를 둘러보며 발견한 또하나의 의미있는 공사는 최초의 이화학당 교사를 캠퍼스안에 복원하는 공사였다.

이화삼성캠퍼스센터가 물질적 욕망을 과시한다면, 120년 전 건물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행위는 과거를 긍정함으로써 현재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정신적 욕망이 투사돼 있다는 느낌이다.

이 교사는 1886년 선교사 메리 F. 스크랜튼이 서울 정동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여성교육을 시작한 곳으로, 고종이 하사한 한옥이었다고 한다.

연대기의 상징성만 놓고 본다면 이 교사는 이 대학 창립 100주년이 되는 1986년에 복원되었더라면 더 의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무렵 한국은 전근대적 억압과 투쟁 중이었다. 타율적 근대화의 시작을 정체성의 출발로 인정하기엔 아직도 더 많은 자신감을 필요로 했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 공동체가 발전의 상징과 함께 사라진 옛 ‘생가’를 다시 짓겠다는 발상은 결코 우연이 나올 수 있는게 아니다. 그건 자기부정에서 자기 긍정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그 이정표는 한국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성장과 성취에 대한 중간평가라고나 할까. 그런 의식행위는 단지 구조물의 복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구에서 동양으로 이식된 이 세계최대 규모의 여성교육기관은 개발도상국 등 제3세계의 여성인재 120명을 연차적으로 이대에 무료로 유학시켜 그 나라의 민주화와 여성운동을 이끌도록 한다는 이른바 ‘이화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젝트’(Ewha Global Partnership Project)를 최근 발표했다.

“120년 전 미지의 땅 조선에서 여성교육을 시작한 창립자 스크랜튼 여사의 뜻을 기리고, 이화가 축적해온 교육 역량을 세계 여성들에게 환원한다는 의미”이며 “환경이 어려운 외국 학생을 위한 일방적 시혜가 아닌,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속에서 상생의 조화정신과 상호협력을 이루어 낸다”는 목표 아래.

이건 민주화운동세대가 헤게모니를 쥐자 비로소 가능해진 프로젝트이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넘쳐난다 해도 봉건적 질서와 정치적 억압이 상존하는 한 자기도 남도 설득하기 어려운 위선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대는 성공한 민주화시대 여성지도자들의 산실로서 과거 선배들과 다른 차원에서 현재와 미래를 구상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사회는 넘치는 자본주의의 힘과, 자본주의와 길항하며 성장한 세대의 의식세계가 기묘하게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대학은 그 실용주의적 세계관을 건설하는 기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한때 공동체적 가치에 헌신한 자랑할만한 역사가 있고, 현실을 긍정하는 한 미래를 지원해줄 삼성과 같은 부유한 파트너를 갖게 될, 이화여대 나아가 이땅의 이른바 ‘일류대학’들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무엇인가를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기대는 당연히 크지만 대답은 물음표로 남긴다.

무한경쟁의 가속화, 적자생존론의 극성, 계층의 양극화 등을 대학이라고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부자=명문대=특수화라는 등식은 하나의 사회적 양상으로 고착되어가고 있다. 우골탑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부동의 골품탑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대학들은 특권화되고 그걸 둘러싼 질시와 증오와 같은 계급갈등의 요소들이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계급의 문제야말로 결국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경고는 결코 새삼스러운게 아니다.

자본주의에만 봉사하는 학문은 무지성과 몰역사적인 도구일뿐이다. 보편성을 갖지 못하는 자기 긍정은 고작해야 허영과 이기심의 과시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대학은 물질과 정신이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며 그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한나절 교정을 둘러보는 사색의 끝에 질문은 다시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고 있었다.

(추신:이대 캠퍼스 안팎의 주요 공사 세건 중 마지막 하나는 이대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십년 동안 이대 앞에서 장사를 해온 재래시장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쇼핑몰이 추진되고 있는 것. 이 쇼핑몰이 들어서면 이대 앞은 또한번 ‘국제적 쇼핑타운’으로서 명성을 휘날리게 될 것 같다. 한때 공사장 앞 가로수에는 쇼핑몰 분양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지만, 이 공사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개발과 독점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이제 일상이다. 대학 안의 공사도, 대학 앞의 공사판도 결국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들이 요구하는 바를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인우 기자 iwlee21@hani.co.kr



▲ 경남 진주 경상대 총학생회가 대학 쪽과 등록금 인상문제로 갈등을 빚어 지난 3월24일 오후 등록금 현물납부 투쟁에 들어갔다. “나 좀 받아죠 몸값 450만원”이라고 적힌 천을 둘러쓴 소 한마리가 대학본부 앞에 매여 있다. 진주/뉴시스



▲ 한겨레 책·지성 섹션 18.0°는?

금요일에 발행하는 섹션 ‘18.0°’에는 에세이와 담론, 책과 문학 이야기를 타블로이드판 32면에 모았습니다. 18.0°는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한 대기 온도입니다.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김윤식(문학평론가)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이재현(문화평론가)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홍은택(전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최보은(전문 인터뷰어)씨 등 우리 시대 논객들이 한국 사회와 인물들을 탐구합니다. ‘한겨레 그림판’ 초대 화백으로 한국 시사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박재동 화백의 그림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없고, 다른 신문에도 없는, 지식과 사색의 향연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