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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판타 영화제 여는 김홍준 감독 올해는 구로동맹파업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며칠간 계속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을 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김영미씨(전 효성어패럴 노조위원장)를 택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던 차에 김홍준 감독으로부터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표면적인 메시지는 “이번 주 <씨네21>을 보라”는 거였는데 속뜻은 연대를 요청하는 거였다. 구로동맹파업의 정신은 연대에 있는 거니까, 그리고 한때 국민오락이었던 고도리에서 내가 배운 유일한 전술은 ‘동자필살’이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글로써 연대를 하는 게 도리에 맞다. 모든 스태프들 무보수로 일해 김홍준 감독은 작년 말에 짤렸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짤린 것이다. 공식적인 용어로는 ‘해촉’인데 해촉이란 말은 사태의 심각성을 나타내기에 그 강도가 약하다. 그가 짤린 공식적 이유는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을 겸직하고 있어서 영화제 일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과 그 동안 부천의 영화제가 부천 시민의 대중적 정서와 유리된 채 진행되었다는 것. 본디 나는 사람을 짜르는 데에 합당한 이유라는 게 있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 쪽이다. 그렇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멀쩡하게 일을 잘하고 있던 사람을 짜른 공식적 이유가 밝혀졌으니까 따져봐야 한다. 김 감독을 짜른 형식적 주체는 그 영화제의 조직위원회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 책임과 권한은 조직위원장인 부천 시장에게 있다. 우선 겸직이 문제가 된다고 친다면 수 십 개의 겸직을 자동적으로 맡고 있는 부천 시장이 시장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겠다. 하지만 이 분은 영화제 조직위원장 자리에서도 아직 물러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의 대중적 정서로 말하자면 작년에 부천 시장을 뽑은 보궐선거의 정당성 자체가 문제가 된다. 대략 유권자의 20%대가 투표해서 40%대의 득표율로 새 시장이 뽑혔다. 85만명을 행정적으로 대표하는 자리가 겨우 몇 만명의 지지에 의해 결정되었다. 또한, 이러한 문화행사가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만을 생각해서 일을 처리한다면 영화제에 비교해서 그 효과가 5분의 1이라는 부천의 만화행사에 관련된 사람들도 죄다 짤려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언론에 보도된 비공식적인 이유다. 김 감독을 짜르는 회의를 주재한 부천 시장은 그 사유를 설명하면서 “지난 영화제 개막식에서 김 위원장은 조직위원장인 나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밝혔다고 한다. 나는 이게 진짜 이유일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아주 수긍이 가는 얘기다. 외지에서 온 영화쟁이가 감히 시장님 이름을 외우지 못하다니, ㅎㅎㅎ…. 이것은 시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참으로 무례한 일이고 그런 만큼 짜를 만하다. 굳이 ‘관점 놀이’를 계속하자면, 처세술이란 관점에서 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아무렴, 짤린 다음에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는 짤리기 전에 외우는 게 더 낫다. 어쨌든 사태의 중재에 나선 영화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괘씸죄를 저지른 김홍준 감독을 비롯해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과 스탭들은 결국 밀려나버리고 말았다. 만약 내가 짤렸다면 나는 매일 밤 부천 시청 앞에서 촛불 시위, 아니 횃불 시위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서울에서부터 부천까지 삼보일배, 아니 일보삼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감독과 스탭들은 영리하고도 ‘쿨’한 방식으로 대응을 했다. 판타스틱 영화제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는 ‘진짜’ 영화제를 같은 기간에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이름하여 ‘리얼판타스틱영화제’-쫓겨난 스탭들을 지지하는 외국 영화인들이 해외에서 보낸 항의 및 격려 이메일에서 많이들 써보냈던 표현에서 따왔다고 한다. 홈페이지에서는 리얼판타스틱영화제를 줄여서 ‘레알 판타’라는 애칭을 쓰고 있다. 영화제를 후원하는 분들을 모아 ‘선수단’과 ‘응원단’을 만들었는데 그 앞에 이런 애칭을 붙여서 부르고 있다. ‘괘씸죄’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장 ‘해촉’
추방된 ‘환상적’ 정신 찾으려 진짜 판타 준비
동유럽 SF특별전 ‘마르크스의 침공’ 기대 모아
다수 영화인 부천쪽 출품 참여 거부
영화제 후원자들 ‘선수단’ ‘응원단’ 구성 레알 판타 영화제는 부천영화제에 비해 예산은 10분의 1이고 영화 편수로는 4분의 1이라고 한다. 모든 스탭들이 무보수로 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 해외로부터 손님을 한 명도 부르지 않고 부대행사도 없고 영화만 튼다는 얘기다. 개막작은 소련 최초의 SF영화인 <아엘리타>라고 한다. 1924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인데, 옛날에 무성영화가 상영될 때에는 큰 극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작은 극장에서는 피아노가 라이브로 반주를 했다. 이번에는 음향학자이자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송현주씨가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음악과 함께 상영한다고 한다. 부대 행사없이 영화만 본다 이번 레알 판타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크게 네 파트라고 한다. 하나는 ‘판타스틱 영화세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외국 장편영화들, 다른 하나는 ‘코리안 판타지’라는 한국 장편영화들, 또다른 하나는 ‘짧지만 판타스틱’이라는 국내외의 단편영화들, 그리고 마지막은 ‘동유럽권 SF영화 특별전’이다. 그리고 1930년대와 해방 직후의 기록영화 2편이 발굴되어 특별 상영된다. 내 경험으로, 영화제의 프로그램을 살피면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찜하는 것은 신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표를 훑는 것보다 백배, 아니 만배는 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마음의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면서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 이번에 놓치면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영화를 낙점하는 일은 영화보는 일 그 자체에 못지 않게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이다. 이번 레알 판타 영화제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동유럽권 SF영화들이다. 타르코프스키를 빼놓고는 다 내가 모르는 감독들의 영화들인데, 195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한 것이 1990년대 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동유럽권 SF영화 특별전에는 묘한 방식으로 과거와 미래가 교차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특별전의 부제는 ‘마르크스의 침공’인데 느낌표가 세 개나 붙어 있다. 또, ‘판타스틱 영화세상’에 속하는 작품들은, 프로그래머들의 설명에 따르면 “관객에게 보일 것을 생각하면 행복하고 가슴이 뛴다”고 한다. 한국 장편영화들의 목록은 <혈의 누> <말아톤>과 같은 최근작과 김지운, 유승완, 공수창 감독 등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레알 판타 영화제는 대다수 국내외 영화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부천 쪽에서는 울상이다. 영화인들 거의가 다 부천 쪽에는 출품이나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보이콧이고 연대인 셈이다. 레알 판타 영화제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도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판타스틱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영화제의 정체성 확립이다. 레알 판타 영화제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판타스틱 영화제의 정신이 현실에서 추방당하고 유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제의 이름을 ‘리얼’ 판타스틱영 화제라고 붙인 것도 다 여기서 비롯된다는 게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영화는 판타스틱하다.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는 것이나 영화제에 참가해서 영화를 즐기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잠깐 동안이나마 지겨운 현실을 초월하는 일이다. 너무 화딱지가 나서 부천 쪽은 들춰보지도 않았지만 그쪽도 뭐, 볼 만한 영화들로 프로그래밍을 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영화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김홍준 감독은 아주 솔직하게 부천영화제가 “잘되기 바란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라고 말했지만 관객의 관점은 다를 수 있다. 즐기고 싶은 영화와 영화제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구로동맹파업도 2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일어난 일이라면 해고 노동자들이 레알 대우어패럴이나 레알 효성물산이나 레알 가리봉전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 머리를 스친다. 교과서에서 말로만 들었던 사회적 소유 내지는 공동체적 소유를 실현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레알 판타 영화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훑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김영덕 프로그래머의 일기였다. 거기에는 자신이 아무런 대책없이 짤려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임을 깨닫는 각성의 순간이 들어 있다. 그나저나, ‘레알’ 관객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연대 하느냐고? 레알 판타 영화제는 오는 7월14일부터 23일까지 서울 낙원동의 아트시네마와 필름포럼에서 열린다. %%990002%%한국전쟁 뒤 첫 동맹파업 구로동맹파업=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대중적, 정치적 동맹파업이다. 전두환 정권이 1985년 6월 22일 구로 지역의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3인을 구속하자, 대우어패럴, 가리봉전자, 효성물산, 선일섬유, 부흥사 5개 노조는 동맹파업에 들어간다. 29일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이 강제 해산당할 때까지 5개 사업체 6개 공장에서 약 1,400명의 노동자가 동맹파업을 벌였고 그 밖에 수많은 지지 및 항의 투쟁이 뒤를 이었다. 이 파업의 바탕에는 선진 노동자들과 학생운동 출신 노동자들의 결합을 포함한, 일상적인 지역 연대활동 및 교류가 있었다. 이 파업은 기업별 노조의 제약을 뛰어넘는 지역 연대투쟁의 전범을 보여줌과 동시에 단련된 노동운동가들을 많이 배출함으로써,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지역노조협의회’ 건설 및 민주노조운동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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