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30 17:22
수정 : 2005.06.30 17:22
일본은 없다
전여옥 지음/ 지식공작소
‘너의 서재를 보여 주면, 네가 누군지 말하겠다’는 독서 금언에 따르면, 나는 종교인이다. 집을 옮길 때마다 엄청난 책 짐을 본 이사업체 직원의 첫 마디는 하나같았다. “교회 목사님이세요?” 그러면, 읽은 책의 목록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역시 섣부른 판단이기 쉽다. 하물며 어떤 책을 읽지 않았거나 늦게 읽었다고 탓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럼, 책을 통해 사람이 변화하거나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물론 독서는 지적 감성적 자극을 주고, 각성의 계기를 부여하며, 변화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를, 책이 나온 지 무려 12년만에 읽었다. 자격 시비에 휘말릴 지도 모르지만 나는 떳떳하다. 화제작과 베스트셀러를 전부 읽을 순 없는 노릇이고, 이제라도 읽었으니 말이다. 연전에 ‘베스트셀러 따라잡기’를 하면서 잘 팔린 책의 특성 세 가지를 느꼈다. 쉽고 재미있다. 널리 읽힌 까닭이 분명하다. 그러나 안 읽어도 그만이다. 베스트셀러는 유행을 타는 책이다. 따라서 철 지난 베스트셀러는 김 빠진 사이다 맛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은 달짝지근함이 제법 남아 있다. 아무튼 예전의 베스트셀러 산출 공식에 비춰 10여 년 전 서울의 종이값을 한껏 올린 책을 살펴보자.
우선, 제목이 그럴 듯 하다. 부정적으로 단정하는 표현은 초유의 것이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거꾸로 일본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싫다’는 제목이 더 걸맞을 책에 대해 무슨 얘기냐고 하겠지만, 지은이가 제시한 일본 특유의 현상들은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우리 사회의 현안이 되었다. 법조계에 여성의 진출이 눈부시고, 불황기에 여성 노동력이 제일 먼저 감원 대상이 되며, “모든 것이 돈으로 결정되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사회”인 것은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1.53쇼크(저출산), 정년(황혼)이혼, 안면(낯짝)사회 등은 상황이나 표현 방법이 약간 다르게 재현되었다.
“쟁쟁한 반일론자인 김영삼이 여당 내부에서 급부상하던 무렵”(〈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에 나온 이 책의 출간 시기가 적절했다는 일본인 비판자의 지적은 착오에 의한 것이다. 〈일본은 없다〉는 “1992년 8월”이 아니라, 1993년 11월에 나왔다. 그리고 출간 이듬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문 1위에 올랐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이 1993년 선을 보인 점에 주목하고 싶다. 밀리언셀러가 쏟아진 이 해는 현재로선 한국 경제의 가장 가까운 호황기였다. 면밀한 일본 사회 분석은 노마 필드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에 비할 바가 아니고, 특파원의 생생한 현장 보고로는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에 한참 못 미치는 책이 잘 팔린 데에는 좋은 경제 여건 말고도 다른 비결이 있지 않을까. 혹여 일본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독자의 뜨거운 호응 덕분은 아닐는지.
이 책을 통해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일본엔 상식이 없다는 거다. 그런 주장을 어찌 그리 몰상식하게 펼치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현실 인식은 참으로 문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있는 자, 가진 자보다 없는 사람, 덜 가진 사람이 더 보호받고 더 생각되어야 한다는 상식이 있어요.” 이제 알았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상식이 안 통하는구나. 책은 언제든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진작 읽었다면, 와타나베 쇼이치의 정체를 파악해 〈지적생활의 방법〉을 냉정하게 평가했을 거라는 아쉬움은 있다. 그나저나 〈일본은 없다?2〉는 언제 읽지, 참.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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