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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벽’ 운운하며
주눅들어 자기방어나 하는 것
이젠 정말 지겹다
하지만 ‘박주영 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좌절하는 대신
“이기는 법을 배웠노라”고 말한다 %%990002%% 그의 퇴장 사유는 그 전술 혹은 패배 자체에 있지 않다. 브라질도 패한다. 문제는 그 패배의 전후를 다루는 멘털리티. 그는 선수 개인의 기량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말한다. 그리고는 세계의 벽을 말한다. 또 나왔다, 세계의 벽. 난 이제 경기 전 상대 강점을 나열하고 우리 약점을 자백하며 알리바이를 챙기고, 패배 후엔 세계의 벽을 언급하는 감독들이 지겹다. 내셔널리즘에 포박된 성적지상주의의 대한민국에서 반세기 동안 세계무대에서의 패배를 습관화한 개인들이, 그렇게 매맞는 아내처럼 낮아진 자존감으로 자신의 열세를 질서처럼 내면화한 변방인들이 지레 주눅들어 자기방어부터 하는 거, 이해는 한다. 하지만, 패배의 앞뒤를 그렇게 순응하며 아귀맞추는 이 멘털리티. 정말 지겹다. 3. 2002년 독일전에 패하자 언론들은 이 정도면 잘했단 거국적 자위에 즉각 착수했다. 분했다. 패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패배를 원만하고 익숙하게 처리하는 우리 숙달됨이. 평생 다시 오기 힘들지 모를 결승기회 놓친 걸 하루 이틀은 충분히 분해해도 좋으련만. 습관성 탈구처럼 패배를 다루는 그 수습 동작에 20세기 우리네 굴곡의 역사가 알통처럼 배겨 있는 거 같아 속상했다. 뗑깡부리는 이탈리아가 차라리 부러웠다. 모든 나쁜 점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게 유전된다는 거다. 상대가 강하다 말하는 게 공포가 아니라 냉정한 상황인식이려면 자기긍정부터 전제되어야 한다. 박주영 세대는 그게 된다. 세계의 벽에 막상 부딪혀 보니 오히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들을 위해, 나는 이제 우승 못해 분하다 말하는 감독을 원한다. 우리가 세계의 벽이라 말하는 감독을 원한다. 호기가 곧 승리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이미 이긴 경기만 이기는 법이다. 세레모니는 쫌 맘에 안 든다. 어쨌든. 씨바. 박주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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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책·지성 섹션 18.0°는?
금요일에 발행하는 섹션 ‘18.0°’에는 에세이와 담론, 책과 문학 이야기를 타블로이드판 32면에 모았습니다. 18.0°는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한 대기 온도입니다.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김윤식(문학평론가)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이재현(문화평론가)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홍은택(전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최보은(전문 인터뷰어)씨 등 우리 시대 논객들이 한국 사회와 인물들을 탐구합니다. ‘한겨레 그림판’ 초대 화백으로 한국 시사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박재동 화백의 그림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없고, 다른 신문에도 없는, 지식과 사색의 향연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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