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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7 쿠키 레이디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버지니아 주 렉싱턴(Lexington)으로 가는 길은 상쾌했다. 노래에도 등장하는 블루 리지 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를 타고 가기 때문이다. 애팔래치언 산맥 남부를 관통하는 이 길은 총 연장 750.4㎞로 경부고속도로보다 더 긴 아름다운 산길이다. 오늘 내가 진입하는 록피시 갭(Rockfish Gap)에서 시작해 노스 캐롤라이나 주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ountain) 국립공원에서 끝난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은 45㎞ 구간만 같이 가는 데 그 동안 해발고도 3280 피트 (984m)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게 돼 있다. 철쭉은 많이 시들었지만 민들레는 한창이다. 블루 리지 파크웨이가 아름다운 것은 산맥 양쪽 아래로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구름이 많이 끼어서 멀리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비가 안 오는 게 어딘가. 전날 밤 비가 내렸고 아침까지도 바이크 하우스에서 바라본 정상에는 비구름이 많았다. 쿠키 레이디를 도와주고 있는 50살의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데비(Debie)는 “조금 있으면 해가 안개를 다 태워버릴 것”이라고 산사람의 지혜를 나눠줬다. 물기를 머금어 나무 둥치는 더욱 검고 나뭇잎은 눈부시게 햇볕을 튀겨낸다. 하늘과 산과 나무, 들꽃 그리고 길이 눈동자에 아로새겨진다. 이 길은 환상적 드라이브 코스여서 자동차 외에도 오토바이족들이 설쳐댄다. 미국에서는 바이커(biker)라고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뜻할 때가 많다. 한국의 폭주족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할리 데이비슨(Harley Davidson) 가족 점퍼를 걸쳐 입고 폭음을 내며 산중의 정적을 산산조각내는 모습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차츰 앞을 쳐다보기가 무서워졌다. 또 어떤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는지 버럭 겁부터 나기 때문이다. 내 자전거는 관절염을 앓아서 기어를 변속하기가 무척 힘들다. 최저단 기어로 올라가야 하는데 바뀌지 않는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손으로 기어를 변속해야 하는데 그러면 짐의 무게에 못 이겨 자전거가 아래로 굴러내린다. 손에 검은 기름이 묻는 것에는 더 이상 개의치 않지만. 내리막에서 충분히 탄력을 받아 오르막을 많이 올라가줘야 나머지 오르막 길을 오르기가 쉬운데 최저단으로 바꿔놓은 기어를 고단으로 바꾸다간 다음에 최저단으로 바꿀 때 자전거에서 내려야 하니 그냥 저단으로 놓고 갈 수밖에 없다. 또 시속 30㎞ 이상을 내면 짐수레 때문에 균형을 잡기 어려워 핸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사고 나기 일보 직전의 위기를 여러 차례 모면하고는 절대 시속 30㎞ 이상으로 달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내리막도 손이 아플 정도로 브레이크를 잡고 있어야 하니 오르막이나 내리막 모두 고행길이다.
산속 정적을 조각내는 폭주족들 블루리지 하이웨이에서 내려와 56번을 거쳐 베수비우스(Vesuvius)에서 608번으로 우회전, 남강(South River)를 따라 달리는 길은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때로는 강물과 철길 사이로, 때로는 강물과 철길을 옆에 두고 말들과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평화로운 평평한 들판을 달려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에나 비스타(Buena Vista)에서 우회전하는 순간 렉싱턴까지 숨이 턱에 차는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렉싱턴은 그 험한 길을 타고 가더라도 가볼 만한 곳이다. 인구 7천여 명의 소도시지만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군사학교인 버지니아 밀리터리 인스티튜트(Virginia Military Institute)와 역시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워싱턴 앤드 리 대학(Washington & Lee University)이 있다. ‘워싱턴 앤드 리’ 중에서 리는 남부 동맹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 나는 항상 미국 남부를 여행할 때마다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남부동맹군에 대한 추모 정서에 당혹할 때가 많았다. 캔터키 주 페어뷰(Fairview)에 가면 남부동맹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의 기념탑이 워싱턴에 있는 조지 워싱턴 기념비만큼 높이 솟아 있다. 리치몬드에서도 남부동맹군 병사들에 대한 기념탑을 보고 왔다. 남북전쟁의 사적이 몰려있는 렉싱턴 이 도시는 아직도 남부동맹을 추모한다
남북전쟁은 노예해방 전쟁이 아니라 중앙의 간섭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남부동맹 대통령은 반역죄로 2년 복역한 뒤
보험회사 사장이 됐다 참 희한하다 더구나 워싱턴 앤드 리 대학은 원래 대학에 재정적으로 기여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라 워싱턴 칼리지로 개명했는데 로버트 리 장군이 죽고 난 뒤 리 자를 더 붙인 것. 이를 테면 미국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적장인데 적장을 기리는 것을 허용한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 만약 한국전쟁에서 어느 한 쪽이 이겼으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미국의 남북전쟁은 특이한 전쟁이다. 일단 전쟁의 이름부터 확실치 않다. 북쪽에서는 ‘반란 전쟁(The War of the Rebellion)’ 또는 ‘노예제도 철폐전쟁(The War for Abolition)’으로, 남부에서는 ‘북부의 침략전쟁(The War of Northern Aggression)’ 또는 ‘남부 독립전쟁(The War of Southern Independence)’으로 부른다.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니 그냥 내전을 가리키는 Civil War로 두리뭉실 넘어들 간다. 추앙받는 ‘로버트 리’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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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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