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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1 14:36 수정 : 2005.07.01 14:36

골방에서 만난 천국-박인하의 만화풍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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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치는 옛 만화는 세월 저편의 눅눅한 시간을 이야기한다. 빛바랜 갱지, 푸르딩딩한 인쇄는 지난한 시절의 흔적. 표지에 찍힌 둥근 ‘검열필’ 도장과 상-중-하로 분권한 제본은 고단했던 만화계의 비사가 들어 있다.

표지를 넘기면 무수한 칸들이 굽굽한 냄새를 피우며 그 때 그 시절 주인공의 사연을 들려준다. 그들은 다름아닌 우리의 자화상. 그들의 모습과 스토리가 우리의 옛모습이고, 배경으로 그려진 골목과 수채구멍과 수돗가는 우리가 산 시절이자 공간이 아니겠는가.

<골방에서 만난 천국>의 저자 박인하는 우리 손을 골방으로 잡아끌어 추억을 보여준다. 대여섯 살부터 만화를 즐겨 보았다는 1970년생 저자는 만화평론가가 되어, 두둑한 연구보따리를 들고 있거니 재미를 기대해도 좋을 터. 그의 시선은 유년기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를 지난 70~80년대에 꽂혀 있다.

70년대의 코드는 가난과 반공

가난한 골목길, 대문들이 마주보고 아침저녁으로 눈인사를 한다. 때로 나즈막한 담 너머 고함이 빨랫줄처럼 넘나드는 곳. 그곳에서 아침이 시작되고 하루 해가 끝난다. <꺼벙이>(길창덕) 1권의 30개 에피소드 가운데 골목에서 시작한 것이 21개. 달리기대회, 생일잔치, 꽃밭 만들기 등 또래 아이들 일상이 펼쳐진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엔 웃음과 근심 때로는 눈물나게 슬픈 가족이 있다. <비둘기합창>(이상무), <일곱개의 숫가락>(김수정), <웍더글 덕더글>(황미나)이 그런 얘기. <비둘기합창>은 실직한 아비, 다방에 취직한 큰딸, 공사판으로 나선 큰아들, 연탄배달하는 고교생 아들이 작은 마당에서 누렁이 한마리와 더불어 산다. 탁구공 같은 동그란 얼굴에 짧은 머리의 주인공은 70년대 대표 캐릭터. 이상무 만화의 한칸 한칸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족 간의 정을 표현하는 최적의 방식으로 채택된 것이다. <번데기 야구단>(박수동)은 가족에서 골목을 지나 한발짝 큰길로 나선 이야기다.

배고픔은 변두리 삶의 일상. 가난한 아이들에게 권투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일곱개의 숟가락> <비둘기 합창> <무당거미>에서 권투는 가난과 겹쳐서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빚바랜 70~80년대 만화 비둘기합창 · 일곱개의 숟가락…
웃음 · 눈물 스민 가난한 골목 비추고 로보트 태권 V · 똘이장군…
“반공” “경제개발” 구호가 나부낀다
그 시절 만화방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만났고
룸펜 · 노동자들은 지친 몸을 쉬어갔다

당시 박정권이 내세운 구호는 경제개발. 중화학공업은 발전의 상징이었다. 정부 시책을 달달 외웠던 아이들한테 <철인 캉타우>, <로보트 킹>, <로보트 태권 V>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로보트 태권 V>는 중화학공업과 정의를 상징하는 거대한 강철로봇과, 최고의 힘을 상징하는 태권도, 악의 세력인 붉은 제국, 사람이 되고싶은 인조인간의 비극까지 70년대의 아이콘 그대로이다.

반공을 국시로 한 그 당시 간첩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존재. 반공만화는 한 장르를 구성할 만큼 융성했다. 축구만화 <불타는 그라운드>에 축구와 무관한 인민군이 등장하여 서사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똘이장군>는 반공만화 최고봉이어서 탁아소, 세뇌, 배급, 땅굴 등 북한을 연상시키는 코드 총집합이었다. <소년 007>도 세계의 불가사의에 스파이를 접목했다.

한편 <사랑의 낙서>(강철수)류의 성인만화는 불만을 표출할 데 없는 청춘처럼 빡빡하게 편집된 공간에 데이트 장소인 다방과 극장, 야간통금 등 70년대 풍광이 가득 들어있다.

80년대 5공정권은 통금해제와 컬러텔레비전 스포츠라는 일종의 당근을 제시하였다. 사람들은 프로야구에 열광하듯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에 열광했다. 퇴물들, 외딴섬 지옥훈련, 50연승 등 외인구단 선수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해 배설욕구를 채웠다. 5공은 스포츠를 통해 대중 조작했지만 대중은 이 만화를 통해 전복을 꿈꿨다.

5공정권과 스포츠만화

한칸짜리 만화의 융성은 박재동이란 걸출한 인물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정치일색의 시사만화를 사회 문화로 관심을 넓혀 전교조 노동자 농민 종교 등 다양한 소재를 소화해냈다. 전두환의 백담사행을 다룬 ‘백담사의 아침’(88년 11월 25일치)은 물건. 전씨 부부가 있고 그 뒤를 기관원, 기자, 정복경찰, 전투경찰이 따르고 맨 뒤에는 화염병 든 대학생이 붙어있다.

70~80년대 만화의 표정을 다 털어놓은 지은이가 이끄는 장소는 추억의 만화방.

전후 폐허 속에 만화방은 모험과 에스에프 저쪽의 세계를 넘보는 공간이었다. 1957년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책 총판인 ‘서울총판’은 서울 아현동 경기공전 앞. 만화책을 리어카에 싣고 시내의 만화방을 돌며 낱권을 팔았다. 60년대 전성기 만화방에서는 만화와 싸구려 주전부리, 그리고 흑백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었다. 텔레비전 시청 딱지는 만화 10권을 빌려보면 사은품으로 주어졌다. 70년대 <소년생활>, <어깨동무>, <소년중앙>은 아동잡지 트로이카. 이정문의 <철인 캉타우>,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 이두호의 <무지개 행진곡>이 연재됐다. 넉넉치 못한 집안의 아이들은 만화방에서 읽었다. ‘클로버문고’ ‘청바지북스’ ‘이서방TV문고’ 등 기획전집은 어떤가. <바벨 2세>에 열광한 어린이들이 이제 40대다. 80년대 통금해제와 더불어 역, 공단 근처의 만화방은 룸펜 노동자 서민을 위한 싸구려 숙박시설이었고 으슥한 골목에서는 사설 포르노극장이었다. 정녕 만화방은 상처받은 영혼들의 안식처였다.

70~80년대 이야기는 그 시대 안팎으로 확대된다. 지은이가 겪은 것이 아니어서인지 자료 위주다. 하지만 만화 표지와 주요 장면이 쪽마다 실려있어 지루하지 않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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