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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성공하는 성격과 심리, 대화술, 인간관계 등을 말하는 자기계발서들이 다양한 색깔과 깊이를 담아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용서들은 생존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오늘 한국사회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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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는 대통령이라는, 기업에는 총수라는 가부장이 있고, 그 구성원들은 이들을 믿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위계를 존중하며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댔다. 하지만 아이엠에프는 우리의 오래되고 익숙한 생존방식에 대혼란을 던져주었다. 거리로 내몰리고 생존을 위협받으면서 이제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생존의 덕목들을 찾아야 했다. 그 덕목들을 찾는 과정과 노력이 바로 자기계발로 이어진 것이다.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높아진 자기계발 욕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수동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조직 안에서 주어진 일로 인생의 성취와 안락을 꿈꾸기보다는 이참에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남다른 성공을 이루어보고 싶다는 능동적인 의미의 그것이었다. 이런 욕구에 부응해 시간관리, 화법, 성공학, 인간관계, 능력개발, 처세 등 자기계발을 돕는 지침서들이 서점에 쏟아져 나왔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면서 시장을 넓혀나갔다. 좀 거슬러 올라가서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자기계발서가 포함된 경제경영서가 얼마나 출판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는지 그 변화상을 알 수 있다(자기계발서의 베스트셀러 분류가 극히 최근의 일이니 경제경영서의 흐름으로 살펴보자). 지난 25년 동안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과거 우리나라의 출판은 곧 ‘문학출판’이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981년 상위 20위에 소설 12종, 비소설 8종으로 100% 석권한 것을 비롯해, 시를 포함한 문학 분야의 책들이 1980년대 전체와 90년대 전반기 동안 목록점유율에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20% 이하의 도서들도 인문과 아동서적들이 간혹 얼굴을 내비치는 정도였다. 출판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자기계발책
IMF 전후에는 사고의 틀을 바꾸라 재촉하고
이젠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며 팽창을 거듭한다
‘기술’ 부추기는 함량미달의 책도 쏟아지지만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거품이 빠지고
성숙한 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5년에 와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 때의 변화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문학 분야 점유율이 55%(소설 5, 비소설 5, 시 1종)로 최저 수준을 기록한 점, 기껏해야 3, 4개 분야가 차지하던 20위권에 무려 9개 분야가 고루 포진한 점, 경제경영 외국어 컴퓨터 건강 등 4개 실용 분야가 전면적으로 목록에 얼굴을 내민 점 등이다. 물론 93년과 94년에도 실용 분야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지만 95년의 특성은 출판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변곡점이라 할 만하다. 이 때 유일한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로, 그것도 종합 1위로 등극한 책이 바로 자기계발서의 고전이 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2종이 목록에 오른 외국어 분야,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을 타고 3종이 오른 컴퓨터 분야까지 포함하면, 가히 넓은 의미의 자기계발 시대 서막을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아이엠에프 뇌관’이 터지기 2년 전이지만, 모든 혁명적인 변화는 이미 그 폭발 시점 이전부터 분명한 징후를 보인다(그 당시에는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 비극이지만)는 점에서 아이엠에프 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그 이후 경제경영서는 매년 꾸준하게 2~3종의 도서가 연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는데, 2003년에는 4종, 2004년에는 무려 6종이 올라 있어 소설(7종)에 이어 2위 그룹을 형성한다. 이 가운데서도 자기계발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2003년에는 4종 전부가 자기계발서로, <한국의 부자들> <설득의 심리학>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가 그들이다. 베스트셀러 상위권 대열에 2004년에도 6종 가운데 5종이 자기계발서로, <설득의 심리학>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 <메모의 기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이 그들이다. 자기계발 욕구는 단순하지 않고 또 늘 같지 않다.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양산해내고 그에 상응하는 지침서들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아이엠에프 체제를 전후한 시기에 독자의 선택을 받은 책들은 대부분 종합적인 자기계발 지침서들이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인생의 목표와 내면의 혁신을 주장함으로써 종합적인 사고의 틀을 제시했고,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선취해나가는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을,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는 현실적이고도 모범적인 자기 자신을 만들 수 있는 구체적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 긍정과 부정 효과의 양면성 이런 종합적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끈 뒤에는, 독자들은 어김없이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내용의 책들을 원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2003~04년의 베스트셀러 목록만 보더라도 그런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생각의 변화를 얻고 큰 틀의 목표와 계획을 수립했다면 이제 구체적인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팽창은 여러 각도에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긍정, 부정의 영향을 가져오고 있다. 출판업계로서는 출판의 다양성이라는 긍정적 방향의 이면에, 성장이 더딘 출판시장의 상황에서는 본의 아니게 다른 분야의 위축이라는 부정적 현상도 초래한다. 독자 개개인에게는 성실함이나 능력개발 등의 근본적이고도 1차적인 삶의 덕목 외에 세상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자기계발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더 나은 삶을 위한 건실한 노력의 기회가 다양하게 제공된다는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표피적인 ‘기술’로서만 자기계발을 이해하려는 이들이나 이를 부추기는 함량미달의 자기계발서들도 양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어떤 업종의 발전이나 사회현상의 변화도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치게 돼 있다. 자기계발서 시장은 이제 성장단계를 마감하고 성숙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거품은 자연히 걷힐 것이고, 스타급 책 한두 권에 의지하기보다는 다양한 책들이 다양한 독자의 요구에 부응해 시장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누구나 성공과 행복을 꿈꾼다. 그리고 그 성공과 행복의 내용 또한 모두가 다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인생에는 그 목표에 맞는 조언자와 친구가 필요하다. 부모, 스승, 종교지도자, 선배,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고 세상살이의 원칙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처럼, 이제 양질의 자기계발서는 한국인에게 또 하나의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고 있다. 김기옥 한스미디어 대표 kgo@hans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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