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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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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자들 부담없는 처소
철저한 익명의 공간
동방예의지국 최후의 보루
지하철은 이렇듯
상반된 얼굴을 갖고
도시의 땅 밑을 달린다 지하철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좁게 공존한다. 창 바깥으로 아무런 풍경이 펼쳐지지 않기에 승객들은 무척 심심하다. 그 허전한 시선들이 뻗어가는 대상은 다양하다. 주변 사람들을 힐끗 훔쳐보거나, 광고물을 멍하니 쳐다보거나, 신문이나 책에 하염없이 몰입하거나,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나 게임에 열을 올리거나…. 아니면 아예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이 가운데 한국의 지하철에서 돋보이는 것은 맹렬한 정보 사냥이다. 아침 승객들은 대부분 눈에 불을 켜고 신문에 전념하는데 의자 위의 선반은 그것들을 주고받는 ‘공유 폴더’가 된다. 출근 시간대 끝 무렵 그 위에 가득 쌓여 있는 종이들은 도시인들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정보의 배설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지하철에는 갖가지 행동 수칙들이 끊임없이 방송된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한걸음 물러서라. 멀리 가실 분은 안으로 들어가라. 화재 발생시에 신속하게 대피하라.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라. 휴대폰은 진동으로 해 놓아라. 국가안보를 위해 신고 정신을 다지라. 옆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마라. 승강장과 전차 사이의 간격이 넓으니 내릴 때 발을 조심하라…. 핵심을 간추리면 ‘안전’, 그리고 ‘배려’이다. 물론 승객들은 그런 안내방송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규칙이나 권고 사항들은 대부분 무시된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노인에 대한 자리 양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 미풍양속이 건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노인에 대한 공경도 있지만, 양보하지 않으면 받게 될 따가운 눈총도 작용한다. 지하철에서 노약자의 함의에 대해서는 경북대 사회학과 천선영 교수가 ‘노약자석을 통해서 읽는 공간의 문화정치’라는 논문 (2004년도 한국사회학대회 발표)에서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그는 ’노약자’라는 범주에 주목한다. 노약자의 구분은 필연적으로 비노약자라는 존재를 가정하고 있고, 그러한 상호 자기규정과 경계 설정은 사회적 긴장을 수반한다고 그는 진단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약자들을 배타적으로 구분하면서 분할하는데, 이는 노약자석의 공간 배치에도 그대로 반영된다고 한다. 즉 여기저기에 흩어져 배치되어 있는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양쪽 끝의 구석으로 몰아놓은 것이다. 자신과 타인이 노약자인지 아닌지를 이토록 민감하게 식별하고 의식해야 하는 공간은 없다. 지하철은 무엇인가? 분주한 직장인들의 이동 경로 - 노인들과 실직자들의 부담 없는 처소 / 전근대적인 무질서와 격의 없음이 잘 드러나는 점이 지대 - 안내방송에서 영어 공용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된 글로벌한(?) 공공장소 / 서로에게 애써 무관심한 철저한 익명의 공간 - ‘개똥녀’ 같은 파렴치한 행동을 절대 간과하지 않는 삼엄한 감시망 / 수백만 시민들의 안락한 교통수단 - 한순간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시설 / 동방예의지국 최후의 보루 - 성추행의 상습적 발생 구역…. 이렇듯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지하철은 도시의 땅 밑을 세차게 달리고 있다.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숨 가쁘게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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