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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 “도대체 말이 안 통해요!” 50분 늦게 도착한 조기숙(46) 청와대 홍보수석이 변명대신 뱉은 탄식. 갑작스런 기자 브리핑 때문에 늦는다는 연락을 받았던 터라, 그 벽창호(^^)들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발언과 관련한 언론의 심상찮은 움직임 때문에 예정에 없던 간담회를 했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의도하지 않은 ‘개헌’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간다는 것이었다.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시절부터 나는 그의 팬이었다. 박근혜, 강금실, 추미애처럼 거의 연예인 수준의 대중적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는 내가 성공한 여성에게 바라는 열두서너가지 미덕 중 열한두가지 정도를 갖춘 정치학자였다. 전형적인 ‘참여형 지식인’으로, 남들 몸사리고 말 아낄 때 소신 똑 부러지게 밝히고, 아쉬울 거 없을 텐데 돈 안되는 페미니스트 딱지로 온몸을 도배했으며,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보수언론 카르텔에 ‘안티’를 선언하고 나아가 언론개혁운동을 조직하는 만용! 만여성이 ‘살리고, 살리고’ 추임새를 넣어야 마땅한 희귀한 자질이고 말고였다. “정치 이야기 안 물어본다고 해서 인터뷰에 응한 거예요.” 먼저 못을 박는다. 그랬다. 이건 뭐 공식적인 정책 인터뷰가 아니다, 여성들의 역할모델이 너무 없는 현실에서, (실력도 좋았겠지만 그보다는 더 운좋게도) 피라밋의 쫌 현기증나는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여성으로서 발언할 의무가 있다. 그래도 직업과 동떨어진 질문으로 일관하는 것도 생뚱맞겠기에 구색 갖추기용 질문부터 할 수밖에.
-요즘 언론상황은 어떤가요? =리더십이 예전에는 비전과 동의어였어요. ‘잘 살아보세’하면 국민들에게 일사천리 그대로 비전이 전해졌기 때문이죠. 방송이니 신문이니 동원하는 데 문제가 없었죠. 요즘 리더십은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수평적 통치체제에서는 국민들과 의사소통이 안되면 리더십을 발휘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홍보수석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데 잘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죠. 대통령께서, 대통령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라는 걸 아는 데 딱 1년 걸렸다고 농담하셨는데, 지금 제가 그래요. (왜 그런지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생략어법이다. 그러나 그처럼 소신 뚜렷하고 발언 용감무쌍하던 사람이 취임 넉달만에 이토록 모든 사안에 대해 과묵해지다니.) 대통령은 계속 소신있게 말해야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국민이 정부를 잘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해명을 해도 믿어주질 않으니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특히 우리 사회에 도덕적 기준에 관련한 합의가 부족한 것이 참 어려워요. 너무 빨리 사회가 바뀌면서 정부에 대해 갑자기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다 대니까 인사할 사람도 많지 않아요. 한 가지라도 결격 사유가 있으면 무조건 인사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잘못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장점이 더 많으면 긍정적으로 봐주는 문화를 만들어갈 건지…. 참여 정부가 과도기적인 문제를 다 안고 가는 희생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구요. 다음 정부는 좀 편하게 가지 않을까. -노 대통령 스타일이 홍보수석 입장에선 보필하기 어렵지 않은가요? =전 대통령이 지금처럼 소신있게 말씀을 하셔야 된다고 생각해요. 의도를 파악하고 듣는 문화로 가야지 말 꼬투리잡아서 전체 의도를 묵살하고 문제삼는 분위기는 잘못 됐다고 봐요. 오히려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어필한다든지, 인기에 거품내는 일을 일절 안하려고 한다는 것. 그런게 대통령이 여론을 무시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받는 빌미가 되는 것 같아요. 정치는 쇼다,라는 말이 있어요. 독재시대에도 대통령이 점퍼 입고 밤에 나가서 서민들하고 소주잔 기울이고 이러면서 리더십 강화했는데 노 대통령은 고집스럽게 그건 그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국민을 그렇게는 속일 수 없다는 철학이니까…. 여론조사하면, 사심없이 한다는 데 대해서는 지지도가 70, 80% 나오는데, 일을 잘하느냐는 대목에서는 30-40%밖에 안 나와요. 저는 대통령이 공치사 한 마디 안하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맏며느리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전통적 맏며느리들이 온갖 궂은 일 다 하지만 내색 안하고, 시어머니는 고생하는 것 몰라주고 어쩌다 찾아온 손아래 동서들 선물에 혹하고 그러잖아요. 궁극적으로 그 시어머니 모시고, 병들었을 때 구완할 사람은 맏며느리인데. 몇 가지 조금 잘한 정책 홍보해서 사랑받는 손아래 동서들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정부가 거의 해놓은 밥상에 숟가락 놓고 공치사 하고…. 대통령은 칭찬없이 궂은 일 도맡은 맏며느리
얄밉게 생색내는 손아래 동서 같은 사람들 있어
남성장벽 뚫기 위해 술자리 2차 끼어들어
인맥 쌓고 ‘현실’ 파악해 교수 자리 잡아
젊은 여성 후배들아, 절대 모험을 두려워 마라 =정치학계가 남성들의 텃밭이었는데, 자리잡기까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객관적으로 전혀 비교가 안 되는 남자들이 다 교수 돼도 나는 안 되더라구요. 뼈저리게 느낀 게, 여자라서 지금 교수가 안 되지만, 교수가 돼도 여자라서 될 거다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여자로서 좌절하면 여자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해요. 거칠어진다든지 오히려 남자들이 기대하는 여성성을 다 무시해버리는. 전 그냥 질서를 따랐어요.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죠. 예를 들어, 술자리에 가야 정보를 들을 수 있다, 하면 술자리를 함께 하되 여성에게 허용되는 선을 넘지 않는 식이죠. 처음에는 여자가 2차까지 쫓아오네 하면서 대놓고 핀잔주는 사람도 있고 핍박이 심했지만, 아 이 여자가 있어서 모임이 유쾌하고 행복하다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그러는 과정에서 남성들과 교분을 쌓고 그 세계로의 진입을 허용받은 거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여성이 여성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권력이 없고, 권력이 없다보니 정보가 없고, 도울려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거죠. 나만 해도 어떤 절차를 거쳐야 교수가 되는지 현실을 모르고 자격이 되니까 서류만 제출하면 되겠지, 로비는 나쁜 거니까 하면 안 되겠지, 무턱대고 집에 앉아서 기다리니까 안됐던 거죠. 그런데 동료선배 남성들과 교분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모르던 사실을 배우게 된 거예요. 논문 들고 찾아가라, 그건 로비 아니냐, 안 찾아가면 열정이 없다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렇기도 하겠구나,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런 얘기를 해주는 여자선배는 없었던 거죠. 여자들은 그런 입체적 현실을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남자들과 인맥을 쌓지 않았으면 끝까지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교수가 된 다음에는 강의 하나라도 여자후배 챙겨서 주려고 하는 식으로 굉장히 노력을 하는데 아무래도 부족하죠. 틀려도 그때 그때 할말을 하자 -대개의 성공한 여자들은 시스템에 반대하는 언행을 안 하잖아요. 아쉬울 것도 없고, 손해보니까. 그런데 조 수석은 왜 그랬어요? =우리가 모래시계 세대잖아요.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서울역 나가서 데모하고 그랬는데 결국은 그게 5·17의 빌미가 됐잖아요. 휴교를 하고 난 뒤 돌아왔을 때 한 교수님이 너네가 군사쿠데타에 빌미를 줬다, 철없이 행동한 거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때 왜 말을 못했느냐 의문이 들었어요. 그때 우리가 대자보 붙이고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때라서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우리를 보호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는 거예요. 군사독재 시절이어서 이해는 가면서도 나는 저러지 말자 다짐했어요. 교수라면, 학생들이 아무리 순진한 열정에 사로잡혀 귀를 막고 있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거잖아요. 물론 나중에 그게 틀린 말로 판명 날 수도 있어요.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다라고 사과를 할지언정 배운 사람들이 그때 그때 얘기를 해줘야 학생들이 자기판단의 기준을 삼아서 선택을 한다는 거죠. -여성정치인인 박근혜 대표나 전여옥 대변인에 대해서는. =박 대표에 대해 김어준씨가 했던 코멘트가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타일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여성리더로서 감성적인 리더십 잘 보여주고 있고 자질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정치인이 야당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니까. 전 대변인에 대해선 ‘노 코멘트’하면 안 될까요?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는 여자를 좀 보호해줘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냐면 여자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을 때 두배를 더 받는 그런 게 있거든요. 여당이나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하는 거, 다 좋다고 생각해요. 그 촌철살인이 대단한 실력이라고 보는데, 뭐랄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예의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바람은 있죠. 그러나 전 대변인이 정치를 재미있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젊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몇가지 조언. =절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마라,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주관 뚜렷하게 가지고 가면 언제든 소신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제자들이 “선생님, 뭘 전공하면 취직을 쉽게 해요?”하고 묻는데, “네 전공에서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라. 너만의 독자적인,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열정 불러일으키는 분야를 택하면 거기서 일자리가 나올 거다. 그게 가장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라는 게 제 대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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