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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소설집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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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괴한 ‘시설’도 최윤(52)씨의 새 소설집 <첫 만남>(문학과지성사)은 발화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 아니 차라리 발화라는 행위 자체에 열중하는 책이다. 여덟 편의 수록작 가운데에는 ‘시설(詩說)’이라는 갓을 쓴 <우울한 날 집어탄 막차 안에는>이라는 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며, 몇 개의 열쇠말을 통해 성장기를 재구성한 자전소설에는 <파편자전>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소설의 유기적 구조 대신 시를 닮은 파격과 비약을 향한 형식적 모색의 열망으로 읽힌다. <그 집 앞>이라는 단편에서 화자는 “편지에서 정말 내용이 중요한 것인지 알고 싶어.(…)어떤 편지는 전언보다는 누구에겐가 보내는 행위 속에서 전언이 완결되기도 하지”(8쪽)라는 말로 내용에 우선하는 형식의 가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굿바이>라는 작품에는 “내용보다는 어조가, 어조보다는 표정이, 표정보다는 같이 있음이 중요한 속삭임”(113쪽)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집 전체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행동이나 생각, 사건의 발생과 전개와 결말 같은 것들이 아니라, 그것을 서술하는 작가의 어조 또는 서술하는 행위 자체인 것처럼 보인다. 잡지 <문학과 사회> 2005년 여름호에서 작가 최씨는 소설집 <첫 만남>의 수록작들을 쓰던 무렵을 회고하는 가운데 이렇게 쓰고 있다: “할 얘기가 하나도 없는데 입을 열면 말이 쏟아져 나오고, 써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상 앞에 끌려가 앉아 쓰기 시작하면 글이 스스로의 작동 법칙에 따라 연결돼 나오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는 거지. 이번 작품집의 글들은 그런 식으로 씌어졌다고 보면 돼.” 소설집 맨 뒤에 수록된 <파편자전>의 맨 마지막 문장처럼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로서의 몸, 언어”(262쪽)에 대한 궁극의 신뢰가 이런 무작위의 글쓰기를 추동했으리라.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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