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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7 19:12 수정 : 2005.07.13 01:51

지난 6일 저녁 서울 대학로의 한 음식점. 20여 명의 시인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세상에 없는 책>(작가)이라는 합동시집의 출판기념회 자리였다. 윤의섭 시인의 시를 표제로 삼은 이 책은 윤 시인이 포함된 ‘21세기 전망’ 동인과 또 다른 동인인 ‘시힘’의 합동 앤솔로지였다. 식당에 모인 시인들은 그러니까 이 두 동인에 속한 이들이었던 것. 양애경 김백겸 김경미 고운기 안도현 최영철 박철 박형준 문태준 이병률 김선우씨가 ‘시힘’의 일원으로, 윤제림 함민복 차창룡 함성호 이선영 윤의섭 연왕모씨가 ‘21세기 전망’의 성원으로 출석했고, 동료 시인 이문재씨와 진수미씨가 각각 ‘시운동’과 ‘천몽’ 동인을 대표해서 ‘찬조 출연’했다. 뒤의 두 사람은 <세상에 없는 책>에 지금은 해체된 ‘시운동’과 아직 첫 동인집을 내지 않은 ‘천몽’을 회고하고 소개하는 산문을 보탠 터였다.

1984년에 결성된 ‘시힘’과 1989년에 출범한 ‘21세기 전망’은 현재 한국 시단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양대 동인이라 할 수 있다. 1980년에 1집을 낸 ‘시운동’이나 이듬해에 1집을 낸 ‘오월시’, 그 이전 70년대부터 활동한 ‘반시(反詩)’ 동인 등은 해체되었거나 동인으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그런 점에서 당대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양대 동인이 합동 시집을 낸 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게다가 ‘시힘’이 민중적 서정성과 자연 친화적 성격을 보인 반면, ‘21세기 전망’이 대중적 전위주의를 표방하며 도시적 활력에 매혹되었다는 점에서 이 두 이질적인 동인의 만남은 한층 의미심장했다.

비슷한 시도가 1989년에 한 차례 있었다. ‘시힘’과 ‘시운동’이 합동 시집을 낸 것. 당시만 해도 ‘시힘’ 동인들은 지금보다 한결 더 민중과 역사·현실에 밀착된 시를 쓰고 있었고, 반대로 ‘시운동’은 80년대의 주류적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자유로운 상상력과 언어 실험에 주력하는 집단이었다.

그로부터 16년 만에 시힘은 “‘시운동’의 2기가 아닌가 생각”(고운기)했다는 ‘21세기 전망’과 또 한 번의 합동 시집을 꾸린 것이다. ‘시힘’의 좌장 격인 김백겸 시인은 “‘시힘’과 ‘21세기 전망’의 만남은 ‘우리끼리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긴장 속에 자기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이런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1세기 전망’ 동인의 최연장자인 윤제림 시인도 “‘21세기 전망’ 동인은 지난 20세기에는 자주 만났지만 막상 21세기 들어서는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면서 “‘시힘’ 동인들 덕분에 우리까지 용기백배해서 새롭게 도약할 기회가 된 것 같아 고맙다”는 말로 화답했다.

‘동인(同人)’이란 뜻이나 취미를 같이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책>의 앞머리에 쓴 김춘식씨의 주제비평마따나 “‘동일성’이 아닌 ‘다양성’과 ‘차이’를 근거로 한 모임으로서 ‘대타적인 투쟁’보다는 ‘내부적인 논쟁과 토론’을 더 중요시하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인(異人)’의 모임”이야말로 오히려 더욱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동인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이윤학·이병률 시인을 ‘21세기 전망’에 내주고 허수경·함민복 시인을 ‘시힘’으로 스카우트해 오고 싶다”는 고운기 시인의 농담은 그런 맥락에서 이 두 동인이 이미 내장하고 있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한 증거로 받아들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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