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07 19:22
수정 : 2005.07.1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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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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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만을 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지방들의 풍속도가 참으로 정답게 몸에 휘감기는 것을 느낀다. 지방 사람들은 때로는 귀찮을 수도 있는 모임에도 지극정성을 보인다. 그것은 의리이고, 정이고, 촌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간살이의 한 모습이다. 지방 사람들은 서울 가면 서울 구경, 서울 사람 구경에 해 저무는 줄 모르는데(서둘러 내려오는 이유가 있다면 공기 나쁘고 시끄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기 때문) 서울 사람들은 아무리 공기 좋고 아무리 인심 좋은 지방에 와도 일 끝나면 서울로 내빼기 바쁘다. 사실은 하나도 바쁠 것도 없으면서 바쁜 척하는 것인지는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서울 사람 왔다가 도망가기 바쁜 시골이라도 그래도 시골 사람들은 또 시골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꺼리도 만들고 모임도 만들고 재미지게 놀 연구들도 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전주에 와서 불려나간 처음 자리는 김용택 시인의 동시집 <내똥 내밥>과 전북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종민 교수의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란 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냥 간단히 출간을 축하하는 덕담이나 한마디 나누고 밥이나 한끼 먹고 좀 ‘거시기’하면 술이나 한잔하는 자리인 줄 알고 전주 입성 인사도 할 겸하고 나갔다. 그런데 웬걸, 판은 예상 외로 ‘장중’하고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고서 약간의 엄숙미조차 풍기면서 아주 맛깔나게 진행되었다. 장소도 전주 한옥마을 안의 마당이 진짜 옛날 시골집 마당처럼 흙 그대로인 한옥집이고 마침 또 시원스레 비조차 내려주어서 분위기는 그야말로 절정을 향하여 치달았다. 벽면에 내려뜨려진 스크린에 <내똥 내밥>에 나오는 시들을 누군가 낭송하고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에 나오는 테오도라키스에서 김영동까지의 음악들이 박남준 시인의 친절하고도 그윽한 해설에 얹혀서 비오는 마당으로 퍼져나갔다. 나로서는 정말 난생 처음 접하는 예술 같은 출간기념회 자리였다. 이곳이 정말 예향 전주구나!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가 있고 난 얼마 뒤 또 나는 남원을 갔다. 이번에는 시집 <목련꽃 브라자>를 출간한 복효근 시인을 축하하기 위해서. 전번에는 어쩌다 그렇게 해본 것이고 이번에는 진짜 밥만 먹고 술만 먹는 자리겠지, 하고 갔는데, 벌써 장소부터가 춘향예술회관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출간 기념행사는 정식 사회자의 지휘 아래 시낭송이 있고 남원 지리산 아래 사는 현직 중학교 교사이긴 하지만 노래는 진짜 양희은보다 더 양희은 같이 부르는 가수도 나오고, 예를 갖춘 형식에 정이 담긴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어쨌든 지역에 사는 문인의 책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밥값 술값을 알아서들 챙겨가지고들 나와 이런다니, 그 끈끈한 정들에, 그 촌스럽지만 아름다운 삶의 모습에, 일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소리 듣기 십상인 우리사회
오늘도 시골 마을에선
‘문학의 밤’이 펼쳐지고
고된 하루 끝낸 40대 가장
늦은 연극 연습에 사는 재미 본다
사람은 돈만으로 사는게 아니다
그리고 어제, 대전을 다녀왔다. 원래 ‘강연자리’ 같은 데 잘 안 가지만 ‘대전 여민회’라는 단체에서 전화를 걸어온 분의 한번 와 달라는 진실됨이 묻어나는 부탁을 차마 떨칠 수가 없어서 간 자리였다. 여민회. 여성시민단체. 30, 40대가 주축이 된 애기 엄마들이 이 세상을 지금보다는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고 생각을 모으는 그런 단체겠지, 같은 또래 아줌마들하고 이야기하다 오는 자리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나를 마중 나온 분이 분주하길래 오늘 무슨 행사하느냐고 물었더니, 대전지역 ‘쑥과 마늘’ 동인들과 대전 여민회가 공동주최하는 ‘여성문학의 밤’ 행사를 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를 초청한 건, 그 행사의 일환이다. 행사장 입구에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림 위에 시를 써서 액자로 만들어 전시한 시화전. 서울 사람들도 시화전을 하는지 궁금하다. 대전 사람들은 시화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학의 밤. 얼마나 정다운 이름인가. 나름대로 멋지게 꾸민 무대에서 성악가도 초청해 노래도 듣고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을 깔고 시낭송도 하고, 연극도 한다고 했다. 뒷풀이 자리에서 연기자가 부족해 연극에 ‘동원된’ 여민회 회원의 남편되는 어떤 이가 그런다. 그는 물론 직장이 있고 직장일이 끝나는대로 연극연습을 했다고 한다.
“사람은 돈만으로 사는 게 아니잖아요. 연극연습을 하면서 진짜 사는 재미를 실감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말한 이는 40대 중반의 가장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들이 오고갔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돈버는 생활에만 매진하면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들 생각한다. 만약에 우리 사회에서 노숙자가 연극판을 만든다고 한다면, 노숙자가 연극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도 않을 뿐더러 ‘먹고 사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연극하는 미친놈’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신경림 시인의 시에도 그런 구절이 있지 않느냐,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느냐.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은 ‘영혼생활도 없이’ ‘감정생활도 없이’ 무조건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야 정상인 것처럼…(말줄임표를 쓸 수밖에 없는 사연을 이해해 주시압).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는데, 몸이 고달픈 사람들은 마음을 보살피면 안 되는 것처럼….
마침 집에 돌아와 인터넷 동영상 뉴스를 보니, 배우 최민식이 거의 절규하듯이 내뱉는다.
돈만 바라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진정코 그렇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진짜 돈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김용택, 김종민, 복효근 책 ‘출간공연’을 할 수 있으며, 시화전이며 문학의 밤 행사를 할 수 있으며, 40대의 가장이 고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연극연습장에 나갈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문득, 김치를 담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내 집에 왔던 고향 후배의 말이 생각난다.
“언니, 난 비록 가난하지만 천박하게 살지는 않네 이.”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매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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