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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7 19:27 수정 : 2005.07.17 20:19

최성각/ 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작년 봄, 한 출판사로부터 차와 이혼하기를 권유하는 책의 발문을 부탁 받았는데 게으른 천성 탓으로 뭉그적거리다가 그만 마감에 임박했다. 차를 끌고 있으면서 그런 책에 객담을 늘어놓기 머쓱해 승용차를 후배에게 서둘러 넘기고, 차와 이혼한 뒤의 억지소감을 써 넘겨 약속에 응했다. 그러고 얼마 후 시골에 연구소를 짓게 되면서, 금새 재혼하기에는 남의 눈이 따가워 한동안은 불편한대로 견뎠으나, 서울과 시골을 들락거리며 집을 짓는 일이 만만찮아 결국 중고 화물차를 다시 구입했다. 그 화물차로 거름이나 버려진 목재나 햇감자를 실어 나르는 둥, 시골생활에 매우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긴 하다. 그래서 자동차 문명의 폐해나 우리가 지금 ‘잘못 들어선 길’에 대해서 말한다는 게 다소 걸린다. 그렇담 잠자코 있어야 마땅할 일이겠으나 입술이 말하고 싶어하고, 손이 쓰고 싶어하는 것을 자제하기가 곤란한 것도 사실이다.

몇 해 전인데, 한번은 정선에서 백복령을 넘게 되었다. 백봉령이라면 정선아라리에 나오는 고갯길이다. 정선사람들이 산나물이나 약초를 말려 등짐 지고 여러 날 걸려 북평이나 묵호, 삼척 바닷가로 떨어지던 길이다. 그 바닷가에서 소금이나 생선을 사서 지게에 꿰차고 산길을 타고 되돌아오다가 어두워지면, 가랑잎이나 솔잎을 긁어모아 단지밥을 해먹으며, 구슬프게 정선아라리를 부르던 옛고개가 바로 백봉령이다.

한낮이었는데, 그날 백복령에는 공교롭게도 차량이 거의 없었다. 어떤 굽이는 아주 오래도록 혼자 달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넓게 확보한 도로 폭원(幅員)의 앞쪽에도 아무도 없었고, 후사경으로 보이는 뒤쪽도 텅 비어 있었다. 건너편 산허리의 지나온 길도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녹음 우거진 잘 닦인 백두대간의 대로를 뻘건 대낮에 혼자 넘는 기분이 정체가 일상이던 도시에 견줄라 치자니 나쁠 수가 없었다. 이 산맥이 생기고 이 길을 이렇게 호사스럽고 안락하게 넘었던 사람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러나 그 사치스러운 감정은 잠시,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치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심에서 비롯되었으나 점차 분노의 감정으로 발전했다.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을 바라본 뒤, ‘이것은 하늘에 대한 불경이다’라는 원초적인 감수성이 조용히 고개를 들더라는 어떤 분처럼 말한다면, ‘이건 죄를 짓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누가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까지 이토록 넓고 좋은 길을 닦도록 허락했단 말인가. 어떤 힘이 있어 그냥 경(敬)한 마음으로 누리고 뒀다 물려줘야 할 멀쩡한 산을 이토록 마구잡이로 허물고, 굴을 뚫고, 강줄기를 비틀고, 없어도 되는 다리를 놓으며, 이토록 불필요한 길을 냈어야 했단 말인가. 이것은 몇 안 되는 자들의 채워지지 않을 탐욕을 위한 산천파괴요, 국토공간의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백복령 널따란 길을 걸었다
산골짝 신작로는 하늘에 대한 불경
탐욕을 위한 산천파괴다
민주화세력들은 왜
‘개발’을 같이 발음하는가

도시는 사람이 제정신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 되었고, 이 산하의 골골샅샅이 토건의 대상이 되어버린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들리기로, 잘난 OECD 국가들 중, 토건사업에 ‘경제’를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 한다. 이른바, 정?관?재계가 담합하여 건설을 통해 ‘나눠먹기’식으로 국토를 할 수 있는 한 결딴내는 게 목적인 토건국가, 대한민국. 당대의 소리(小利)를 위해 ‘국가보다 더 오래갈 땅’을 건드는 불경(不敬)을 이 나라는 도무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이 방법 외엔 살 길이 없다고 호언한다. 그것은 개발지상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던 군부시절이나 민주화운동의 찬란한 이력을 지닌 지금 정부나 마찬가지다. 골프장건설로 경제를 살리자고 기염을 토하던 한 땅투기꾼의 피할 수 없는 추락을 이 정권이 몹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 해괴한 경제살리기 묘책은 그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확정되었고, 그런 입법을 한 자들은 다른 나라에 땅투기를 한 뒤 사기를 당했다던가, 하는 망측한 소리도 들린다. 힘있고 영악한 자들이 산천파괴를 목적으로 담합을 하는 짓은 왜 가능한가. 그들의 반생태적 결정에 박수치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뭣이라고? 생태계수보다 인간계수가 높은 이 나라에서 생태계수 쪽으로 균형을 맞춰 개발하는 것은 힘든 노릇일 수밖에 없다고? 그런 어지러운 먹줄 같은 소리가 바로 광적인 개발에 면죄부를 주는 전문가들의 패배주의다.

사바티스타 민족해방군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어느 날 안토니오 할아버지와 사슴을 쫓다가 밀림에서 길을 잃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부사령관은 나침반을 꺼냈고 고도를 쟀고 공기압력을 측정하는 등, 문명권에서 배운 지상항해술을 구사했다. 인디오인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뻐끔뻐끔 담배만 피워댔다. 부사령관은 끝내 길을 찾아내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에는 뒤쪽을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될 거다.”

할아버지도 길을 찾지는 못했다. 결국 둘은 함께 길을 찾아낸다. 길을 찾은 뒤, 아무 것도 없는 뒤를 왜 돌아보라고 했는가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답했다. “그것은 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네. 그것은 전에 자네가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라네”라고.

민주화 세력들이 민주화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불안한 기억력 때문인지 근래 자주 못된 시절과 그때의 저항을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 왜 싸웠는가. 더 좋은 삶과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싸웠고, 그 싸움의 무기인 표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지 않았겠는가. 그게 정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노골적인 토건국가에서 누가 약한 존재인가. 산천의 죽어가고 있는 갯벌이, 사라져버리는 사구가, 메워져 가는 늪이, 앉을 데 없는 철새들이 바로 약한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개혁’과 ‘무분별한 개발’을 아무 갈등 없이 같이 발음하고 있는 한, 그들의 자랑스러운 과거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때는 순결한 명분이었으나 그것은 단지 권력욕을 감추기 위한 치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말이다. 최성각 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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