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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분자생물학은 유전자와 유전정보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사진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중나선구조의 디엔에이 모형을 가리키고 있는 프랜시스 크릭(오른쪽)과 제임스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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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생명 본질은 전부 아니다”
분자생물학과 생명의 재정의 20세기 후반부에 분자생물학은 뉴턴 이후 줄곧 과학의 ‘여왕’ 자리를 차지했던 물리학을 그 자리에서 밀어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신비는 아리스토텔레스 시기부터 과학자들의 진지한 탐구 대상이었지만, 분자생물학은 생명현상을 물질적·환원적·실험적 틀을 사용해 근본적으로 새롭게 규정했다. 분자생물학은 생명의 본질이 유전자에 존재한다고 보았고, 생명 그 자체가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의 총합이라고 정의했으며, 관찰하는 과학이었던 생물학을 적극적인 실험과학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를 통해 분자생물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방향을 바꾸어버렸던 것이다. 맨델의 업적이 유전학 출발점 부모와 자식이 닮는다는 사실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무엇인가가 건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존재하고, 또 어떻게 건네지는가라는 문제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었다. 콩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던 19세기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승 그레고르 멘델은 변하지 않는 어떤 실체가 유전을 관장함을 확신하고 이 실체를 ‘인자’라고 명명했다. 멘델의 업적은 그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다윈에 의해서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졌지만, 수십 년 뒤에 재발견되어 20세기 유전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멘델주의자였던 독일의 생물학자 요한센은 멘델의 인자에 ‘유전자’(gene)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세기 들어서 유전자의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 실험을 통해 유전자가 세포의 염색체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초파리의 염색체 위에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20세기 초엽의 영국 의사 아쉬발드 개로드는 특정 유전병이 인체의 신진대사를 담당하는 한 효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유전자가 효소의 생성까지 관장한다고 주장했다. 유전자가 생명체의 대사를 관장한다는 사실은 1930년대를 통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고, 이후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효소에 대응한다는 ‘1유전자 1효소’ 가설이 세워졌다. 새로운 생물학적 발견들이 연이어 이루어지던 1930~40년대에 생명에 대한 철학적 재정의가 물리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양자물리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만들었던 닐스 보어는 1932년 코펜하겐에서 행해진 ‘빛과 생명’이라는 강연에서 물질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원리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대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하면서, 유기체가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생기력’(바이탈 포스)의 존재를 부정했다. 보어의 강연은 뒤에 미국으로 건너가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정립한 막스 델뷔릭과 같은 학자를 이론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전향하게 만들었다. 양자물리학의 세계에서 보어의 코펜하겐 학파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당시 그는 ‘소박한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통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을 사용해 생명현상을 분석한 뒤에, 이를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책자에 담아 1944년에 출판했다. 슈뢰딩거가 물리학적 방법을 사용해 이 책에서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는, 유전자는 왜 변하지 않는가, 유전자는 어떻게 복제될 수 있는가, 생명체는 어떻게 그 자체가 붕괴되려는 경향에 맞서는가, 그리고 의식과 자유 의지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은 과학적·철학적 문제였다.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제2장에서 염색체의 기능과 유전자를 설명하고, 제3장에서는 염색체의 변이를 다룬 뒤에, 제4·5장에서 양자물리학에 기초해 유전자의 크기를 가늠하고, 제6장에서는 생명체를 ‘음의 엔트로피’(네거티브 엔트로피)를 갖는 것으로 정의했다. 모든 자연 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생명체만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슈뢰딩거의 해석은 이후 과학자들 사이에서 폭넓게 수용되었다. 유전자는 우주설계한 신의 마음 그렇지만 이 책의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생명의 본질을 유전자에서 찾은 뒤에, 유전자를 ‘정보’와 연관지어 파악한 것이다. 슈뢰딩거는 염색체에 존재하는 “일종의 암호 대본(코드-스크립트) 속에 개인의 미래의 발육과 원숙한 상태에서 수행하는 기능의 총체적 패턴”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하면서, 염색체에 들어 있는 유전자를 ‘세상을 꿰뚫는 마음’ 곧 우주를 설계한 신의 마음에 비유했다. 유전자는 수정란을 검은 수탉으로 발생시킬 수도 있고, 이를 암탉으로도, 파리나 풍뎅이로도, 심지어 아리따운 여인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슈뢰딩거에 따르면 유전자는 그 속에 미래의 계획과 이 계획을 수행하는 권력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으로,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건축가의 청사진과 건설업자의 집짓는 솜씨를 하나로 합친 것에 해당했다. 20세기 후반 분자생물학 약진
과학의 여왕이던 물리학 밀어내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은 생물학 혁명
유전자 재조합 체세포 복제 등 생명공학 질주
‘생명 연구 한계는 어디까지’ 근본질문 제기 당시 전쟁연구에 식상해 있던 젊은 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의 책을 읽고 생물학에 빠져들었다. 1953년에 디엔에이(디엑시리보핵산)의 구조를 발견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모리스 윌킨스,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은 모두 슈뢰딩거의 책을 읽고 생명현상의 물리적 기초에 매혹된 뒤에 분자생물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특히 제임스 왓슨은 조류학에 관심을 두던 대학생 시절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슈뢰딩거의 책을 읽고 유전자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곧바로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분자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불과 몇 년 뒤에 이들은 염색체 속에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디엔에이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힘으로써 20세기 생물학의 혁명에 팡파레를 울렸다. 이후 분자생물학자들은 생명체의 본질이 유전자로 환원될 수 있으며, 유전자에 각인된 유전 정보를 해독하면 ‘생명의 신비’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자크 모노는 (분자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거대한 코끼리나 박테리아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역설했다. 유전자가 발생과 유전에 대한 정보는 물론 이를 발현시키는 프로그램까지 전부 갖고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초기 분자생물학의 환원주의는 ‘유전자 결정론’의 색채를 띠었다. 인간게놈계획을 추진했던 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것이 시디 한 장에 담길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유전자가 생명의 본질의 전부가 아니며 환경의 영향을 받는 생명체는 유전자로만은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물학자들에게 아주 조금씩 서서히 받아들여졌다. 분자생물학은 생명현상에 대해 적극적 개입과 실험의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1970년대를 통해 디엔에이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떼어내어 증식시키고 이를 다른 디엔에이에 붙이는 유전자 재조합의 방법을 개발했다. 유전자 재조합 방법을 사용해 이전에는 천연적으로만 얻을 수 있었던 인슐린과 같은 효소가 만들어졌고,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바이오텍 산업은 차세대 산업의 선두주자로 격상되었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통해 생명공학은 이전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유전자조작식물은 물론 장기 이식을 위해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동물도 만들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체세포를 이용한 동물의 복제도 지금은 일상적으로 행해져, 미국에서는 죽은 고양이를 복제해주는 사업이 개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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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과학사 comeniu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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