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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4 17:15 수정 : 2005.07.14 17:16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58)의 2005년 신작 장편 <오 자히르>가 번역 출간되었다.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자히르’란 아랍어로 집념 또는 탐닉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소설 속에서는 “한 번 만지거나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고, 우리의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광기로 몰아가는 무엇”(78쪽)으로 정의되어 있다. <오 자히르>는 파울로 코엘료 자신을 연상시키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를 화자 겸 주인공 삼아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아내 ‘에스테르’를 향한 그의 ‘자히르’를 묘사하고 있다.

에스테르가 사라진 뒤 ‘나’는 떠나기 전에 에스테르가 해준 조언을 좇아 소설 쓰기에 열중해 보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여자를 만나 동거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아무리 해도 에스테르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던 차에 에스테르의 잠적과 관련된 카자흐스탄 출신의 신비한 청년 ‘미하일’이 찾아오고, 그의 안내에 따라 중앙아시아 초원에 있다는 에스테르를 찾아 길을 떠난다. 미하일과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사막을 건너는 험한 여정 끝에 ‘나’는 사랑과 행복에 관한 유목민들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마침내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에스테르와 재회한다.

영성과 신비주의, 유목과 같은 주제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오 자히르>는 전형적인 코엘료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여자 에스테르의 돌연한 잠적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작가의 고민을 풀어가기 위한 장치로 이해된다. 에스테르의 행방에 관한 열쇠를 쥐고 있는 미하일이 초조해하는 ‘나’에게 들려주는 말에 소설의 주제의식이 담겨 있어 보인다: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제하려 할 때, 그것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129쪽)

사랑에 관한 이런 잠언투의 가르침에 못지 않게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코엘료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사랑받았고, 평론가들에게서는 미움을 받았다”(57쪽)거나 “문학잡지들은 그 동안에도 내게 우호적이지 않았지만, 이번엔 훨씬 더 강하게 나왔다”(91쪽)는 구절은 독자 대중의 뜨거운 반응과 평단의 싸늘한 대접 사이에 끼여 있는 코엘료의 처지를 상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에 앞서 “자신의 꿈을 좇아 이집트 피라미드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나는 한 양치기 소년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금술사는 어디에 있는가?”(이상 52쪽)와 같은 구절은 그의 출세작 <연금술사>를 노골적으로 가리키고 있음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내용보다는 스타일에 골몰했”으며 “그들은 그들만의 폐쇄적인 세계 속에 갇혀 있었다”(이상 53쪽)는 파리 문단에 대한 냉소적 관찰,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대해 부정적이라는 사실(165쪽, 296쪽)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녹록찮다.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과 인터뷰 약속이 있긴 하지만”(232쪽)이라는 ‘나’의 대사에 열광하거나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는 한국 독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앗,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에 ‘한국’이!). 이즈음 할리우드 영화들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한국어 간판과 (단말마적인) 한국어 대사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는 독자는 혹 없을까. 뒤이어 나오는 두 명의 소방수 이야기는 어떤가: 소방수 두 명이 숲 속에서 불을 끄고 나왔는데 한 사람은 얼굴이 온통 검댕 투성이고 다른 한 사람은 깨끗했다; 시냇가로 간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얼굴을 씻으려고 할까?…. 잘 아는 대로 조세희씨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도입부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다(물론 여기서는 소방수가 아닌 굴뚝청소부들이 등장한다). 코엘료가 번역된 이 소설을 읽은 것일까, 아니면 조세희씨의 소설과는 별개인 다른 버전이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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