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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4 17:33 수정 : 2005.07.14 17:36

이지누/ 사진작가

마음을 다스리면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마음을 비우면 분란으로부터 자유롭다 이런이야기들이 어찌 수행자에만 소용있겠는가

윤서두굉 ‘산색’

지난봄부터 서재에 딸린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산색(山色)이 참 곱다. 그렇다고 서재가 근사한 곳에 있어 창을 열면 산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창도 없이 꽉 막힌 화장실이건만 그 안에서 산색을 가늠할 내공이 쌓인 것은 한 권의 책 덕분이다. 제목은 그대로 <산색>이다. 사실 이 책은 댓잎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창가에서 읽어야 제격이다. 필자인 운서주굉 스님이 앞머리에 말하기를 “<용재수필(容齋隨筆)>을 본 따 대나무 창가에 앉아서 붓 가는 대로 적다보니 책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 제목은 <죽창수필(竹窓隨筆)>이다.

그런 책이 화장실로 들어가 붙박이가 되더니 아예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것은 그 글 한편, 한 줄이 투한(偸閒)의 시간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다급하게 들어 간 그곳에서 펼친 면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고요한 것을 찾다>였다. 거기에 이르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를 없애고 마음을 없애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없애고 경계를 없애지 않는다”라고 했다. 경계란 이미 있는 것이고 마음은 내 것이니 마음을 다스리면 모든 것은 고요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어떤 일을 대함에 있어 스스로의 뜻이 견고함을 나무라지 않고, 도리어 그 주변만을 탓하는 것이니 그것은 아주 그릇된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다음날, 다시 들어간 그곳에서 펼친 것은 <제 소견에만 집착하지 마라>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필자가 권하기를 저마다의 고집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부터 비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온갖 비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갖은 험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세상사 많은 분란이 시작되는 곳에 바로 고집이 있으며 그 고집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니 그것부터 다스리는 것이 분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또 길을 떠났다가 돌아 온 날, 무턱대고 펼친 면은 <산에 머물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단박에 머물기보다 우선 행각을 멈추지 말라고 했다. 그리하여 속진으로 물든 곳을 떠다니며 참구하던 선지식을 만난 후에야 산으로 들어가 머물라고 했다. 고요함을 깨달으려면 시끄러움을 겪어야 튼튼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단순한 이야기들이 어찌 수행자들에게만 소용에 닿는 구절들이겠는가. 21세기가 접어들면서 오히려 고전읽기에 몰두하기 시작한 나를 두고 주변에서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더 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현재까지 살아 온 사람들의 생각을 간파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만으로는 과거를 가늠하기도, 또 미래를 준비하기도 마뜩치 않은 것이다. 그저 눈앞의 깜깜한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책 읽기는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공부하던 학창시절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이 책에서 21세기가 아무리 디지털이니 거기에 한 술 더 떠 유비쿼터스니 해도 그것들이 낙원을 만들어 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읽었다. 세상은 사람이 사는 것이고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끈이 오히려 컴퓨터를 이어주는 네트워크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보편적일 때는 문제가 발생되면 서로를 돌아보게 했지만 지금은 사람은 제쳐두고 기계 탓을 하게 되었다는 것과도 같다. 그와 같은 마음들이 은연중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 현실사회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포함한 고전읽기는 사람을 강화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이다. 그들이 상대했던 것은 사람과 자연 그 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사람, 그 아름다운 존재의 위대함을 가꾸는 데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나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 가득 그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으니 참 아름다운 책이다.이지누/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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