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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4 19:50 수정 : 2005.07.14 19:52

열국지/ 고우영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어느 중문학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다보니, 대화의 주제도 마냥 넓어져 본의 아니게 시비거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이름난 중국고전문학은 소설가들이 앞다투어 우리말로 옮기더라, 정작 전공자들은 왜 ‘직무유기’를 하냐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옥신각신하다 이야기는 만화가 고우영에 이르렀다. 그이는 고우영의 <삼국지>를 침 튀겨가며 상찬했다. 그 말끝에 우리 중문학계가 고우영에게 진 빚이 많고, 오십년 안짝에 학위논문으로 ‘고우영론’이 나올 것이라 호언했다.

이때다 싶어 나섰다. 나 역시 고우영의 <삼국지>를 주변사람들에게 권한다. 이유는, 꽤 역설적인데, 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가에 무척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전쟁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굳이 권모와 술수가 넘쳐나고 살육과 탐욕으로 점철된 책을 필독서인양 여겨야 하겠는가. 더욱이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어보기를 권하는 사회분위기에 나는 강한 저항감을 느끼는 편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키워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적 고투를 벌였던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게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회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마치 이른 나이에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사표와 귀감을 얻지 못할 것처럼 나부대는 데다, 더 강화된다는 논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것인양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자율적으로는) 안 읽어도 되는데 (타율에 따라) 굳이 읽어야 한다면, 시간 아깝게 (열권이나 되지 않더냐) 소설로 보지 말고, 고우영의 만화책으로 읽으라고 하는 것이다. 더 재미있고 더 풍자적이고 더 신나고 (같은 열권짜리더라도) 더 빨리 읽힌다는 말도 꼭 덧붙인다. 장광설을 인내심 있게 듣던 그 중문학자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고우영의 <삼국지>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작품 해석이 놀라울 정도로 (그러니까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될만큼) 독창적이어서란다.

이유가 어디있든, 고우영의 역량이 <삼국지>에서만 확인되는 바는 아니다. 장구한 중국역사를 요령껏 극화한 <십팔사략>도 <삼국지> 못지 않다. 그런데 내가 정작 고우영의 역사만화 가운데 제일로 높이치는 것은 <열국지>다. 만화적 상상력이 탁월하게 펼쳐져 있어서다. <삼국지>와 <십팔사략>은 고전을 만화로 ‘번안’하는 모험에 부담이 있었는지 작가가 더 과감하게 ‘궤도이탈’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열국지>에 이르러 고우영은 사뭇 달라진다. 이런 걸 일러 물이 올랐다 해야 맞을 듯싶게, 자유자재에 천의무봉하며 청산유수다. 큰 줄거리는 원작을 따르더라도 배경이나 지문은 상당히 현대적인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읽다 저절로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오게 하는 힘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 중문학자에게 마저 못한 말이 있다. 굳이 오십년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만한 공이 있으면 일찌감치 예를 갖추는 것이 도리 아니겠는가. 뜻있는 학자가 이 일을 얼른 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중국고전의 만화화를 고우영이 성공리에 해냈다면, 우리 고전을 수준높은 만화로 만들어낼 일이 후배 만화가들에게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바라건대, ‘김세영 글, 허영만 그림’으로 만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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