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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4 21:47 수정 : 2005.07.14 22:24

끝나지 않는 신드롬 천정환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5000원

2002년 한-일 월드컵 그 열광의 정체는 무엇일까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은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등 스포츠를 매개로 한 식민지 조선의 신드롬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2002년 6월18일 저녁. 친구·선후배들과 서울 봉천동의 한 식당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함께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 한국 대 이탈리아전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서였다. 긴장 때문에 입이 말라 경기 시작 전부터 연신 맥주를 들이켰다. …그해 6월에 우리는 왜 그랬던가? …패색이 짙던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졌다.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모두 뛸듯이, 가 아니라 정말 일어나 팔짝팔짝 뛰고 발을 구르고, 서로 껴안으며 기뻐했다. 식당 주변의 동네에도 비명과 환성이 메아리쳤다. …연장전이 시작되기 전, 식당을 슬며시 빠져나왔다. 다시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경기가 그냥 1 대 0으로 끝났다면 훨씬 마음은 편했을 것이었다. 그 6월에 나는 일종의 분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끝나지 않는 신드롬>의 저자 천정환은 ‘그 신드롬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는 제목의 에필로그를 이렇게 시작했다. 당시의 열광속에 찾아들었던 그 복잡한 심리, 불편함, ‘일종의 분열증’을 앓은 사람이 어디 그뿐이랴. 그것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표상 · 경험을 거느린 이데올로기

이 ‘소박한 국민국가적 축구팬’은 믿기지 않는 승리에 황홀해하면서도 윤도현의 노래나 엄청난 크기의 태극기, ‘대한민국’구호에 몹시 불편해 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나치의 뉘른베르크 횃불 행진을 연상시키는 것이라고까지 쓴’ 박노자나 국가주의적 신드롬을 경고한 인권운동사랑방에도 반발감을 느낀다. 자신의 위치를 “박노자류의 논리와 ‘자발적 동원의 무해성 주장’의 중간쯤”에 설정한 저자가 ‘과연 우리가 4강 실력이 된단 말이야?’와 같은 ‘있지도 않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오래 쌓인 복잡한 콤플렉스, 소심한 자격지심 속을 헤매다 향하는 곳은 ‘식민지인의 거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및 그 뿌리에 대한 천착이다.

“이데올로기는 표상이나 의례 같은 매개를 통해서만 성립된다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이 책을 쓰게 했다. 이데올로기는 단지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방향을 갖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표상이나 의례 같은 요소가 없으면 이데올로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담론을 이데올로기로 정립시키는 것은 담론의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거의 보이지 않거나 무의미한 부속품처럼 뵈는, 그러나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의 ‘맥락’을 만드는 심성·의례·표상·경험·영웅이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거느린 심성과 표상, 그리고 그 작동방식에 대한 관심이 식민지 시대 조선의 두 신드롬에 주목하게 했다.” 두 신드롬이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 금메달을 딴 ‘사건’일 불러일으킨 엄청난 파장과 그 뒤 조선신문들의 ‘일장기 말소사건’, 그리고 1926년 순종황제 죽음과 6·10 만세사건을 가리킨다. 이야기는 이 땅에서는 1890년부터 등장해 1920년대에 제대로 된 꼴을 갖춘 ‘근대성의 한 표현양식’, 스포츠를 매개로 해서 전개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29분 12초의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손기정 선수. 심훈은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 부를 테냐??”라고 부르짖었다. 그의 우승은 일제치하 억눌린 조선인들에게 사상과 계급을 초월한 감격과 자긍심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주의, 언론 재벌들의 상업주의 등과 결합함으로써 ‘민족주의적 대중사회’의 출현을 촉진한 ‘손기정 신드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친일과 반일을 넘어선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라는 부제에서 중요한 것은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리얼하다. 저자의 특기처럼 보이는 당시의 신문기사 등 폭넓은 자료 찾기와 꼼꼼한 읽기를 토대로 한 소설적 구성은 위력을 발휘한다. 구체적 사실과 일화들, 경쾌한 전개 덕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주제에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다. 권오설, 이상, 나운규, 김교신, 함석헌, 여운형, 윤치호, 유진오, 이광수, 심훈, 송학선 등 ‘엑스트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다채로운 삽화들도 온전한 역사복원에 주요한 몫을 한다. 오늘날과 다름없이 철저한 상업주의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조작의 첨병, 재벌 미디어들간의 저 격렬한 전쟁이 이미 태생기 때부터 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한국언론역사로도 읽힌다.


식민지 꼼꼼히 다시 읽기

“일어난 수많은 일들 그리고 그 연관과 단절에 대해 한층 풍부하게 쓰고 그럼으로써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마음의 구조’를 읽는 일이 이 책의 목표였다.”

작은 삽화지만, 경성제대를 수석 입학·졸업한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며 일제시대 ‘3대 천재’ 가운데 하나였다는 한 친일부역자의 다음과 같은 “가련한 헛소리”는 연민과 함께 차라리 경쾌하게 들린다.

“전쟁의 귀추는 이미 명백한 것입니다. 침략자와 자기방위자의, 부정한 자와 정의로운 자의 …한마디로 악마와 신의 싸움인 것입니다. …요는 미·영을 격멸하는 한 길이 잇을 뿐입니다. …1억 야마토, 최후의 돌격을 향해 매진할 것입니다. 왜냐? 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유진오다. 도대체 똑똑하다는 게 뭔지, 그는 1944년 8월 일제 패망 1년 전에 한 ‘적국항복 문인 대강연회’ 연설에서 이처럼 세상 돌아가는 판을 완전히 거꾸로 읽고 있었다. 이는 저자가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등을 인용하면서 “제 운명을 강대국의 전략에 내맡기고 사는 한국인은 청맹과니가 되기 십상이다”며 경계하자고 한 사례의 하나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럼에도 유진오는 불과 그 얼마 뒤 미군 점령 치하에서 신생 대한민국의 헌법 기초자가 되고 승승장구한다. 진짜 선견지명이 있었던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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