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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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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세미나]
〈엔트로피〉 1. 진보의 한계
■ 책 소개
<엔트로피>제러미 리프킨 지음/이창희 옮김/세종연구원 현대인들은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력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삶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진실이라고 학교에서 배운다. 그런데 이상하게 물질 생산 능력은 갈수록 발달하는데 우리의 삶의 질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하는 많은 이론이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극심한 대립도 이 논란을 반영한다. 미국의 문명 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전혀 다르게 본다. 그의 눈에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결국 과학기술이 발달해야 인간 삶이 나아진다고 보는 점에서 똑같다. <엔트로피>의 주제는 간단하다. “우리 문명의 미래는 물리적 제약 없이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풀무질 대부분의 현대인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전진해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세계관은 불과 400년 전에 형성됐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역사를 지속적 쇠락 과정으로 봤다. 그리스 신화는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는데, 각 단계는 이전보다 쇠퇴한다. 그리스 역사가 헤시오도스는 이 단계를 황금시대, 은의 시대, 청동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로 나눴다. 풍요와 만족의 시대인 황금시대가 가장 좋다. 마지막이 철의 시대로,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8세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올바른 사람, 착한 사람, 맹세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런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과 오만한 사람만 명예를 얻는다. 정의는 폭력에서 나오고 진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인들은 우주는 궁극적인 혼돈을 향해 나아가고 이때 신들이 나타나 태초의 완벽한 상태로 회복한다고 봤다. 순환론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극소수의 수렵채취사회에서 먼 옛날 인간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렵채취사회에서는 일주일에 12~20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나머지는 스포츠·예술·음악·춤·제례의식을 즐긴다. 많은 수렵채취사회는 서로 돕고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독교적 세계관도 현대와 다르다. 서유럽 중세를 지배했던 기독교 역사관은 이 세상 삶을 다음 생을 향해 가는 중간 과정으로 생각했다. 기독교 세계관은 그리스적 순환 개념은 버렸지만 역시 역사를 쇠락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기독교 신학에서 역사는 분명한 시작과 과정, 종말이 있다. 창조, 구원, 최후의 심판이 그것이다. 역사를 쇠퇴의 과정으로 본 그리스인들 그런데 현대적 세계관은 완전히 다르다. 현대는 기계의 시대다. 정밀·신속·정확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런 기계론적 세계관은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등 세 사람의 공동작품이다. 1620년에 펴낸 <신기관론>(Novum Organum)에서 베이컨은 “고대 그리스인들은 주장은 거창하지만 인간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험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리스인에게 과학이란 사물의 형이상학적인 “왜”를 탐구하는 거지만 베이컨에게 학문이란 사물의 “어떻게”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베이컨에 따르면 객관적 지식으로 무장하면 모든 자연물을 지배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이해하고, 암호를 풀고, 인간의 목적에 맞게 통제하는 열쇠는 단 한 가지, 바로 수학이라고 생각했다. “수학은 모든 것의 원천이다.” 데카르트는 자연을 단순히 움직이는 물체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는 모든 질적인 것을 양적인 것으로 대체했다. 뉴턴의 3대 법칙, 즉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출판되자마자 유럽 주요 대학의 교재로 쓰였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운동하는 물체만을 다뤘다. 왜냐하면 운동하는 물체만이 수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계관은 기계를 위한 것이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물의 질서는 공식화할 수 있는데 왜 사회는 안 그럴까? 근대인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을 인간 사회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중요한 구실을 한 사람이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였다. 로크에 따르면, 쓸데없는 관습과 미신을 타파하고 나면 인간 사회는 구성원의 재산축적을 보호하고 허용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 남는다.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부가 희귀하고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상 획득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가 가진 부의 총량을 계속 늘려가기만 하면 사회의 조화는 끊임없이 개선될 것이다.” “사회적 부가 부족하면 인간이 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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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스리랑카에 남아 있는 원시부족인 베다족. 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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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질 공자는 리프킨과 같은 생각을 했을까? 제러미 리프킨은 <엔트로피> 1장에서 그리스와 기독교의 역사관을 소개하면서 그들에게는 진보라는 관념이 없었다고 본다. 그들은 이미 엔트로피 법칙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리프킨은 서유럽의 역사관만 소개했으나 사실 동양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교 역사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상고주의(尙古主義)다. 국어사전은 ‘옛날의 문물을 귀히 여기고 숭상하며 그것을 모범으로 삼는 주의’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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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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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금질 “어떻게”보다 “왜”가 중요하다 요즘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이 뜨고 있다. 지난해 3월 처음 나왔는데 채 2년도 안 돼 가입자가 2500만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끈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위력을 보여줬다. 한데 카카오톡을 만든 회사 ‘카카오’ 이사회의 김범수 의장 이력은 독특하다. 1992년 삼성에스디에스(SDS)에 입사했던 그는 1998년 ‘한게임’을 만들었다. 이 한게임과 네이버커뮤니케이션이 2000년 합병해 탄생한 회사가 엔에이치엔(NHN)이다. 엔에이치엔은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와 국내 최대 게임사이트 한게임 등을 운영한다. 2007년 8월 네이버를 떠난 뒤 몇 년 소식이 뜸했던 그는 갑자기 카카오톡을 들고 나타났다. 부침이 심한 인터넷 분야에서 한 사람이 여러 번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김범수 의장은 ‘스타 시이오(CEO)’라고 불린다. 그런데 그는 지난 10월19일 경제전문지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악착같이 살지 말라”고 했다. 성공한 사람은 대개 노력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그는 달랐다. 김 의장 인터뷰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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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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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아래글을 읽고 ‘물화된 세계관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글을 써 보시오. (800자) ① 데카르트는 자연을 단순히 움직이는 물체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는 모든 질적인 것을 양적인 것으로 대치했고 “중요한 것은 오직 공간과 위치이다”라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했다. “외연(外延)과 움직임만 알면 우주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데카르트의 수학적 세계에는 맛도 색도 냄새도 없다. 뭔가가 흘러나오거나 뚝뚝 떨어지거나 엎질러지는 일도 없다. 결국 대수와 기하처럼 깔끔하고 얌전한 것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수학은 총체적 질서의 표현이며, 따라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을 한번 휘둘러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고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들은 쓸어내버린 것이다. <엔트로피> 제1부 ‘기계론적 세계관의 창시자들’ ② 중요한 것은 “조작”, 즉 효율적인 처리방식이다. 인간에게 세계는 항상 카오스(혼란)로 묘사되고 이것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하는 것은 구원이 된다. 근대과학으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인간은 ‘의미’를 포기한다.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이라는 척도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계몽에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계몽은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예 존재나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계몽의 이상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도출해낼 수 있는 ‘체계’다. 계몽에는 ‘세계의 계산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숫자는 계몽의 경전이 되었다. 계몽은 모든 걸 물질적 대상으로 취급한다. 모든 걸 ‘계산 가능한 존재’로 환원시킨다. 이것만이 ‘객관적’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물화(物化)다. 정신이 물화되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나 개개 인간의 자신에 대한 관계도 악령에 사로잡힌다. 애니미즘이 사물을 점령화했다면 산업주의는 영혼을 물화한다. <계몽의 변증법> 중에서 ‘계몽의 개념’ 요약 2. 다음 존 로크의 말을 ‘트리클다운’ 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해보시오. (600자) 자신의 노동으로 땅을 경작하는 사람은 인간 공통의 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리는 것이다. 경작되는 1에이커의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은 똑같은 지력을 지닌, 그러나 자연 상태로 버려진 1에이커의 땅에서 나오는 산출물보다 열 배 정도 많고, 따라서 인간의 삶을 더욱 잘 지탱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 소유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경작하는 사람은 10에이커의 땅만 가지고도 자연 상태의 100에이커 땅에서 나오는 산출물을 생산해낼 수 있으므로 결국 90에이커의 토지에서 나오는 산출물을 인류의 풍요를 위해 바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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