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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15:55 수정 : 2005.07.21 16:09

여름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주요 출판사들이 소설 야심작을 시장에 내놓고 독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정철규 기자

여름농사가 한해농사를 좌우하는 소설시장
독자입맛 당기는 전략품목을 내놓기 위해
출판사들은 더위도 잊은 채 전쟁을 치른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은 ‘오 자히르’등 주로 번역물
한국소설은 ‘개’ ‘유림’ 따위가 선전하고 있다

커버스토리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가을은 네 계절 중 책을 가장 덜 읽는 계절로 꼽힌다. 그렇다면 진짜 독서의 계절은 언제? 여름과 겨울이 그 답이다. 까닭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여름과 겨울은 학생들의 방학이자 직장인들에게는 휴가철이기도 하다(신년과 설날 연휴는 일종의 간이 휴가 구실을 한다). 다른 계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만큼 그 여유를 독서에 할애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소설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출판계와 서점가에서는 ‘여름 소설 시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주요 출판사들은 여름 시즌에 맞추어 자사의 ‘전략 품목’을 출시한다.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듯한 소설 류가 대종을 이룬다. 전략 품목의 경우에는 여름 시즌에 맞추느라 출간 시기를 늦추거나 때로는 무리해서 앞당기기도 한다. 여름 한 철 매출이 한 해 ‘장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만큼 저마다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최인호씨의 소설 <유림>을 내놓은 출판사 열림원의 김이금 주간은 “소설은 역시 여름”이라며 “여름 시장을 놓치면 연중 판매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는 “여름 시장에 연착륙한 다음, 가을에는 독서감상문 모집과 공자 고향 기행과 같은 이벤트를 통해 겨울까지 분위기를 끌고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왕에 나왔던 한국소설 9권을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총서로 새롭게 편집해 내놓은 출판사 생각의나무의 박광성 대표도 “현재 마무리 집필 중인 윤대녕씨의 장편과 <세월>의 작가 마이클 커닝햄의 새로운 작품을 8월 초쯤에 출간해 여름 시장의 끄트머리라도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출판계와 서점가 역시 한껏 뜨거운 달아오르고 있다. 이름하여 여름 소설 시장 독자 쟁탈전! 가히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할 치열한 각축이 시작됐다.

어떤 책들이 나와 있나

어떤 책들이 나와 있나 지난주에 나온 파울로 코엘료의 2005년 신작 <오 자히르>는 올 여름 독자 쟁탈전의 본격 점화를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국내에서는 2001년 겨울에 출간된 이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금술사>의 작가 코엘료의 새 소설은 지난 4월 이란과 브라질에서 첫 출간된 이래 유럽 각국 등 전세계에서 속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연 <오 자히르>는 출간 즉시 온·오프라인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지난달 출간 이래 정상권을 지키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어둠의 저편>과 함께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 있는 소설들은 주로 번역물들이다. 지난해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초기작 <디지틀 포트리스>(대교베텔스만), <다빈치 코드>와 비슷하게 성서와 기독교 역사의 비밀을 다룬 ‘팩션’(팩트 + 픽션)물인 <성 수의 결사단>(훌리아 나바로, 랜덤하우스중앙)과 <세 번째 비밀>(스티브 베리, 밝은세상), 책과 문학이라는 소재를 각각 추리와 판타지 기법으로 소화한 <바람의 그림자>(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문학과지성사)와 <꿈꾸는 책들의 도시>(발터 뫼르스, 들녘) 등이 대표적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톡톡한 홍보 효과를 본 미하엘 엔데의 <모모>(비룡소)가 베스트셀러 최정상권에 오르고, 평소엔 잠수해 있다가도 여름방학이면 생각났다는 듯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괴짜’ <호밀밭의 파수꾼>(J. D. 샐린저, 민음사)이 역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들어선 가운데, 첩보소설의 세계적 권위자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열린책들)와 이언 피어스의 미술사 소설 <라파엘로의 유혹>,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쓰지 히토나리의 <편지>(소담) 등이 독자에게 유혹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소설은?

소설 시장에서 한국소설이 번역소설에 밀리는 일은 더 이상 낯설거나 이상한 현상이 아니게 됐다. 지난 2~3년 사이 유수의 해외 베스트셀러 작가들에 맞서 거의 단신으로 한국소설의 성채를 지켜 왔던 김훈씨가 신작 <개>(푸른숲)를 통해 또 한 번의 전투를 예고했다. 그러나 <개>는 청소년용 성장소설에 해당하는 소품이어서 앞선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만큼 독자를 끌어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1억원 당선작’의 자존심을 내걸고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고수해 온 김별아씨의 <미실>(문이당), 그리고 올 4월 출간 이래 지금까지 8만부 정도가 팔린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이 여전한 ‘여성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면, 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문학동네), 김연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창비), 김경욱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문학과지성사)는 한국소설의 ‘젊은 피’를 대표해서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다수 독자의 사랑을 받는 번역소설들이 대중소설로 분류할 만한 작품들인 만큼, 그들을 상대로 한 싸움을 이른바 ‘본격소설’에만 맡겨 두는 것은 부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소설들 역시 넓은 의미의 대중소설 또는 장르소설로 이들에 맞서는 양상을 보인다. 최인호씨의 <유림>은 신문 연재가 진행 중임에도 여름 시장을 겨냥해 전체 6권 가운데 3권을 먼저 내놓은 경우다. <드래곤 라자>로 독서계에 판타지 열풍을 몰고 왔던 이영도씨가 <피를 마시는 새>(전8권, 황금가지)를 새로 선보였으며, 김탁환씨의 역사 추리물 <열녀문의 비밀>(전2권, 황금가지)과 가수 이적씨의 판타지 소설 <지문사냥꾼>(웅진) 등도 한국형 장르소설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소설이 고전하는 이유는

그렇지만 한국소설은 전체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교보문고의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집계에서도 소설 부문 상위 20권 가운데 번역소설이 13권을 차지할 정도였다.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가 시대의 대세이니 만치 번역소설이 많이 읽히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와 한국적 감수성이 선손을 쥘 수 있는 문학과 소설의 특성상 외국 소설들이 ‘안방’을 차지하는 상황을 그저 자연스럽게 보아 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소설에서 이야기가 실종됐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다. 80년대 소설의 극단적 참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90년대 이후 한국소설이 내면과 언어를 파고들어 온 것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내면과 언어 역시 문학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기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소설에서 기대하는 바는 다른 무엇에 앞서 풍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작가 개인의 독백에 그칠 뿐 바깥과의 소통에는 소홀한 소설에 독자들은 쉬이 접근하지 못한다. 더구나 영상의 도움을 받는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현실 아닌가.

민음사 계열사인 황금가지의 장은수 대표는 이와 함께 최근 10년 동안 순문학 내에서 새로운 ‘운동’이 없었다는 사실을 한국소설 부진의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 그는 “신경숙과 윤대녕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작은 이야기’를 주창한 <문학동네>가 사실상 마지막 운동이었다”며 “한국문학이 새로운 논점과 이야기 거리를 만들지 못한 결과 독자들이 금방 실증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새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원하는데, 지금 문학판 어디에서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작가의 재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국소설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지망생들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데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게 된다. 장 대표는 “소설을 써서 부와 명성을 함께 거머쥐는 모델이 나와야 작가의 재생산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여름 시장은 없다?

한국소설의 부진만이 아니라 아예 ‘여름 소설 시장’이라는 특수가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다. 강병철 이룸 대표는 “여름 시장이 무너진 지 벌써 몇 년 됐다”고 단언했다. “출판사들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대형 출판사들은 한두 품목에만 연간 매출액을 의존하기 힘들고, 거꾸로 작은 출판사들은 한 작품에 올인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장은수 대표의 견해는 다르다.

“순수문학은 줄었지만 추리라든가 장르문학을 포함한 소설 매출액은 꽤 늘었다. ‘휴가 갈 때 소설 한 권’ 식의 교양인의 포즈가 약화됐다고는 해도 다른 철에 비하면 그래도 여름에 소설이 더 나가는 것은 아직까지는 사실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여름 소설 시장이 전에 비해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 원인을 도서정가제의 붕괴와 중소형 서점의 몰락에서 찾았다.

“지금의 베스트셀러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 몇 군데에서 팔린다는 뜻일 뿐이다. 그래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예전과 같은 블록버스터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전국 방방곡곡을 실핏줄처럼 연결하는 소매상의 존재가 필수적인데 그게 없어졌다. 여행 중에라도 가까운 서점에 들러 진열된 책을 집어들 수 있어야 하는데, 서점의 그런 ‘저장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오래된 미래, 고전에서 찾아라!

같은 여름 시장이라도 한두 종의 블록버스터에 의존하기보다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고전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출판 전략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대입 논술 시장을 겨냥한 문학전집 류에 주요 문학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선보인 창비의 ‘20세기 한국소설’(1차분 22권)이 대표적이다. 문학과지성사가 지난해부터 내고 있는 ‘한국문학전집’과 범우사의 ‘비평판 한국문학선’도 창비의 기획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역시 방학 때면 눈에 띄게 매출이 느는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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