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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로브(왼쪽)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출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등공신일뿐 아니라 지금도 ‘공동대통령’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지난 14일 인디애나 블랙 엑스포사 주최 오찬연설을 위해 인디애나폴리스로 떠나는 부시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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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게이트는 부시정권의 도적적 파산과 미국적 민주주의 퇴락 보여준 사건 그 한가운데 ‘선거의 귀재’ 칼 로브가 있다. 부시를 주지사로, 대통령으로 만들어 ‘공동 대통령’ 버금가는 파워 휘두르며 ‘보수대연합’ 통한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현장 속 현장 최근 미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이른바 ‘리크게이트’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서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던 미국 사회의 오래된 불문율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리크게이트는 상식적인 미국인들에게 믿기 힘든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1971년 닉슨 행정부 때 국방부 분석관이었던 대니얼 엘즈버그가 미국 베트남 전쟁 비밀 문서인 펜타곤페이퍼를 <뉴욕타임스>에 유출한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기밀의 언론 유출은 뚜렷한 국민적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백악관의 고위 관료가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안보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의 신분을 외부에 누설해 당사자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야비한 정치공작은 자행된 적이 거의 없었다. 일종의 정치적인 금도이자 미국 주류사회가 공유해온 도덕률이었던 셈이다. 리크게이트는 부시 정권의 도덕적 파산을 전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리크의 주역으로 밝혀진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을 비롯한 친 부시 인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미국 집권세력의 도덕적 타락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의 대표적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이 최근 ‘로브의 미국’이라는 칼럼에서 “어쩌다 미국의 정치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라고 탄식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야당도 공작 자체에만 관심을 둘뿐 그 공작의 목적, 즉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 스캔들이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미국적 민주주의 제도의 퇴락이다. 취재한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은 기자를 취재원 증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법정모독 혐의를 걸어 구속한 것은 나치 독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미국 특유의 사법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적 사법정의가 세계보편적인 규범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물론 증언 거부로 구속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의 처신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비밀요원의 이름을 취재한 타사 기자 5명이 취재원의 동의를 얻어 모두 판사에게 증언한 것을 감안하면 유독 밀러만이 기사화하지도 않은 취재내용과 관련해 구속을 감수하면서까지 증언을 거부한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언론의 일각에서는 이라크 전쟁 직전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알카에다와 밀접한 관계라고 거짓 기사를 잇달아 쓰는 등 전쟁론자였던 밀러 자신이 조지프 윌슨의 이라크 전쟁 비판에 격분해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언론인들과 백악관 관리들에게 유포시킨 장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억측까지 하고 있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대가 리크게이트의 초점은 역시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브레인인 칼 로브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대가로 불리는 로브가 리크게이트의 주역이라는 사실은 과거 그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전혀 새롭거나 놀랄 일이 못된다. ’선거의 귀재’ 로브가 선거 때마다 저질렀던 ‘더티 트릭’(야비한 정치공작) 사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로브는 항상 배후에 꼭꼭 숨어 있었다. 로브가 흑색선전의 주역이라는 정황증거는 많았지만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자신의 유출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로브는 명백한 물증이 나오자 이를 시인하되 플레임이 CIA 비밀요원이라는 사실을 기자한테서 들었다고 도망갈 구멍을 만들었다. 정부 비밀문서나 직무상 취득한 기밀사항이 아니면 흘리더라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법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의 결정적인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을 경우 로브는 도적성에 큰 흠집은 나겠지만 사법처리는 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역시 로브다운 대응이 아닐 수 없다. 로브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설파한 마키아벨리 신봉자다. 로브는 매년 적어도 한번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는다. 로브는 정치철학은 “정의는 승리한 자의 것이며 거짓말도 반복할 경우 사람들은 결국은 믿게 된다” “큰 거짓말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는 말로 요약된다. 정상급 선거전략가인 그에게 최고의 가치는 선거의 승리이며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선이고 해가 되는 것은 악이다. 그는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돼 수석 정치고문에 임명돼 백악관에 입성한 뒤에는 모든 정책과 정치적 결정을 차기 대선에 도움이 되는냐에 입각해 판단했다. 9·11 동시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로브는 그 참극이 차기 대선에 유리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끝난 뒤 이라크로의 확전 문제를 놓고 망설이는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침공 쪽으로 몰고 간 인물은 로브와 네오콘 강경파 폴 월포위츠 당시 국방부 부장관(현재 세계은행총재)였다. 로브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 역사상 전쟁의 와중에 치러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이 낙선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플레임의 이름을 흘린 것도 이라크 침공에 대한 그의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과 맞물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부시의 정치 역정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던 19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 때의 일이다. 정치 초년생인 부시의 상대후보는 호방한 성격의 여걸로 유권자들의 인기가 높았던 민주당의 현역지사 앤 리처즈였다. 지지도 조사에서 부시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부시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로브는 전화여론조사 때 조사원들에게 “귀하는 보좌관 중에 동성애자가 많은 리처즈 후보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습니까?”라는 흑색 선전성 유도질문을 던지게 해 리처즈가 레즈비언이라는 유언비어를 은연중에 확산시켰다. 이 전략은 보수성향의 남부 유권자들을 부시 쪽으로 결집시키는 데 주효해 부시는 승산이 희박했던 선거의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아홉살,정치에 눈을 뜨다 로브는 또 200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존 매케인 후보에게 흑인 사생아가 있다느니 5년 반에 걸친 베트남 포로생활 때문에 정신병에 걸렸다는 등의 흑색선전을 퍼뜨려 매케인의 돌풍을 잠재우려 했다. 2004년 대선에서도 부시 진영은 베트남 전쟁의 영웅인 존 케리 후보의 베트남 무공이 위조됐다는 내용의 네거티브 캠페인성 텔레비전 광고를 대대적으로 해댐으로써 케리의 이미지를 크게 깎아내리는데 성공했다. 로브는 일찍이 정치에 눈을 떴다. 아홉 살 때인 1969년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와 닉슨이 격돌했을 때 로브는 닉슨을 지지한다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또 로브는 유타대학을 비롯해 텍사스 대학, 조지 메이슨 대학 등 총 6개 대학을 다녔지만 한군데도 졸업하지 못했다. 공부보다는 공화당의 대학별 전위조직인 ’칼리지 리퍼블리칸’에 가입해 정치활동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은 각 대학별로 자신의 조직을 구축해 상위조직인 공화당전국대학생위원회의 회장직에 선출되기 위한 포석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학생신분으로는 자격이 없는 공화당전국대학생위원회의 사무국장직에 취임하기 위해 그는 71년 유타대학을 중퇴했고, 3년 뒤 회장직에 선출돼 자신의 꿈을 실현했다. 로브는 선거 판세와 흐름을 읽는 통찰력과 조직력에서 발군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역대 선거에 관한 통계수치와 미국정치사에 대해서 로브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정치컨설턴트가 없을 정도다. 정치평론가들은 그의 전략적 재능이 빛을 발한 사례로 2004년 대선을 꼽는다. 대부분의 선거전문가는 박빙의 승부를 전망했다. 그러나 로브는 1900여만 명에 달하는 기독교 보수파가 대부분 투표장에 나온다면 부시가 낙승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2000년 선거에서 400만명의 기독교 보수파가 기권해 쉽게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고전했다는 것이었다. 부시 진영의 선거 전략은 ‘숨어 있는’ 400만 명을 투표당일 투표장으로 끌어내는데 집중했다. 일부에서는 과연 로브가 말하는 400만 명의 잠자는 표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낙태금지, 동성애자 결혼반대 등과 같은 가치관과 관련된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고 민주당과 각을 세운 것도 이 전략의 일환이었다. 로브의 전망대로 숨어 있던 기독교 보수파들은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로브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로브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통계를 면밀히 분석한 끝에 숨은 400만 명의 표를 찾아냈다고 한다. 현재 로브의 파워는 ’공동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2기 부시 정권 출범과 함께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으로 임명된 그는 국내문제담당국, 경제위원회, 국가안보위원회, 국토안전위원회 등 백악관 핵심기관의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전략 이니셔티브실’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첫 정당회담 때 로브는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배석할 정도로 외교문제에도 대해서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미국에 괴벨스가 부활했다? 이런 현상은 로브에 대한 부시의 절대적 신임에서 비롯된다. 두 사람 관계는 ’샴 쌍둥이’를 연상시킬 만큼 일심동체에 가깝다. 이러한 신뢰관계는 40살이 다되도록 술과 마약으로 허송세월을 보낸 탓에 정치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 바도 없었던 부시가 로브라는 ‘정치적 보모’를 만나 30여년간 교류하면서 텍사스 주지사와 대통령에 각각 두번씩이나 당선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로브의 선거전략 덕에 부시는 선거에 관한 한 불패신화를 이룩했다. 로브는 이제 부시 이후의 공화당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1930년대 이후 30여년간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던 ‘뉴딜연합’에 필적하는 ‘보수대연합’을 구축해 향후 수십년의 공화당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70년간 미국 복지제도의 근간인 국민연금제도 개정과 공무원 노조 약화 등의 각종 정책은 모두 이런 전략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에 괴벨스(나치 선전장관)가 부활해 미국판 나치제국의 건설을 꿈꾸고 있다는 항간의 얘기는 과연 황당하기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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