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1 17:25
수정 : 2005.07.21 17:26
역사로 보는 한주
1956년 7월26일 가말 압델 낫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냉전시대에 서방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이 전략적 요충의 탈서방 선언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서방은 즉각 이집트의 해외자산을 동결하고 식량원조를 중단하는 등 보복조처를 취했다. 그해 10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제2차 중동전쟁=수에즈동란)하고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도 공격에 가담했다. 이스라엘은 자국 선박의 안전통행 등 안보상의 이해를 내세웠고 영국 프랑스는 운하 무료사용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엔이 이집트의 운하 국유화의 정당성을 인정한데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미국마저 압력을 가하자 점령군들은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의 국유화 선언은 아스완 하이 댐 건설 자금확보 문제와 직결돼 있었으나, 개혁파 아랍민족주의자요 제3세계 지도자이기도 했던 낫세르 혁명정부의 탈식민 자주화 노선, 동서 냉전체제 등이 그 배경에 깔려 있었다. 낫세르는 미국이 아스완 하이 댐 건설자금 지원 요청을 거절하자 국유화를 선언하고 소련쪽 지원에 기댔다.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레셉스 주도 아래 1859년4월에 건설공사를 시작해 10년 뒤인 1869년 11월에 개통했다. 공사에는 150만명의 이집트인들이 동원됐으며, 그들 중 12만5천여명이 콜레라 등으로 숨지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자금을 지원한 프랑스와 이집트 정부가 공동소유했으나 이집트가 빚 때문에 자국 지분을 영국에 팔아넘겼고 영국은 1882년 운하 보호를 구실로 군대를 운하 양안에 주둔시킴으로써 운하의 지배자가 됐으며 이집트를 사실상 식민화했다.
오늘날 이집트 경제의 생명선이 돼 있는 아스완 하이 댐은 1900년대 초 영국 주도로 건설한 원래의 아스완 댐(아스완 로 댐)에서 상류쪽으로 6.4㎞ 떨어진 곳에 세워졌으며, 지금 통칭 아스완 댐이라 할 때는 이 하이 댐을 가리킨다. 제방 높이 111m, 길이 3830m, 폭 980m에 발전용량 175메가와트의 발전기 12기가 설치돼 있다.
이 댐도 애초 영국이 건설계획을 주도했으나 52년 7월 낫세르 등이 주도한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되는 등 정변이 일어나 계획은 중단됐다. 60년에 공사를 시작해 70년에 완성했다. 거대한 인공호수 이름은 낫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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