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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한국민중 80인의 사진첩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 편저. 현실문화연구 펴냄. 2만9800원 |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 그리고 급진 개발시대의 전통을 온몸으로 견딘 ‘특별할 게 없는’ 이 시대의 주역들 핏줄을 위한 그들의 생존투쟁이야말로 격동의 20세기 한국 현대사 그 자체임을…
김관숙은 1921년 평안남도 용강군 다미면 한전리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1937년 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겸이포제철소에 입사해서 2년제 기술학교 과정을 마쳤고, 이후 전쟁이 나던 1950년까지 약 13년 동안 기계제도 및 공장도면 관리업무 등을 맡았다. …열아홉되던 1938년 아버지의 제자였던 한 전도사의 중매로 아내가 될 여성(당시 18살)을 처음 만났다. 아버지와 함께 여성의 집에 찾아간 그는 첫 만남에서 약혼 서약서를 쓰고, 다음해에 결혼해서 1남1녀를 두었다. …1950년 전쟁이 나자 김관숙은 그해 12월 가족과 함께 월남했다. 서울 마포에 있는 용강국민학교에 부인과 자녀 둘을 남겨 두고 제2국민병으로 나갔는데, 가족과는 이때부터 소식이 끊겼다. 1980년대 이산가족찾기 방송에 사연을 내보았지만 가족의 소식을 알 수는 없었다. 1961년 함께 월남한 형의 소개로 재혼을 했는데, 둘 사이에는 자녀를 두지 않았다. …월남해서 통영, 수원, 군산 등지로 옮겨다니다가 1953년 8월 서울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남대문시장 내의 대도 아케이드에서 지퍼장사를 시작했는데, 1년만에 실패하고 이후 줄곧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상을 운영해왔다. 우동희는 1926년 10월18일(음력)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양구동에서 6년1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 먼저 들어간 아버지를 따라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본(도쿄)으로 갔다. …그 뒤 교토로 이사하여 소학교 고등과를 다니다 수업시간에 안중근 의사 발언사건으로 중퇴했다. 열다섯살 되던 1940년 무렵부터는 양재학원에서 기술을 배운 뒤 군수공장에서 재봉일을 했다. 이후에는 미군의 공습 때문에 시마네현으로 피난가서 국민복 만드는 양복점에 들어가 일했다. 일제 패망과 함께 가족들은 밥상을 받은 상태에서 사카이항으로 가 급히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귀국했다. 남대문시장으로, 서문시장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생계가 막막해 예천과 의성을 전전하다 1946년 스물하나 때 의성군 비안면 출신의 스물아홉 재혼남과 결혼했다. 이곳에서 1년간 농사를 짓다가 남편을 채근하다시피 하여 대구시 중구 동인동 신천변에 거처를 마련했다. 남편은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가서 1년만에 돌아왔다. …6.25가 터져 남편은 길거리에서 붙들린 채 전쟁터로 나가 물자운반을 하다 돌아왔다. …남편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여수 등지로 다니며 건어물을 사다가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넘기곤 했다. …가정경제가 나아지지 않자 서문시장과 가까운 달성공원 밑으로 이사한 뒤 양장점을 열어 한동안 운영했다. …동인동으로 다시 이사하고 나서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아 2녀1남을 키우면서 일감을 받아다가 집에서 줄곧 재봉일을 하였다. 마흔한살에 낳은 아들이 학업을 마치고 가계를 꾸려나간 일흔두살 즈음부터 재봉일을 줄일 수 있었다. 지금은 달서구 용산동 자택에서 아들 내외와 손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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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과 식민, 분단, 전쟁, 그리고 개발독재. 숨쉴 틈조차 주지 않았던 고단한 지난 세기를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어떻게 헤쳐왔던가. 이제 역사속의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은 지난 세월을 더듬는 그들의 표정이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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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웃 80명 삶 담아 “지난 100년 민중생활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은 역사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쓰는 일인 동시에 새로운 인문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가 겹쳐진 이 시대는 이 시점에서 점검되지 않으면 영원히 정리될 수 없다. 이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시대의 사실들을 기록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연구하고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따지다 보면, 이미 이 시대의 인물들과 자취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급한 것은 당장에라도 민중생활의 현장으로 들어가 지난 100년 세월에 관한 사실들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지난 2002년 7월 “더 늦기 전에 20세기의 민중생활을 기록하고 해석하여 민중생활사의 자료집성(아카이브)을 구축함으로써 역사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내세우고, 아울러 이 시대에 적실한 새로운 인문학을 정립하기 위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사업 지원 아래 결성된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이 또 하나의 성과물을 내놓았다. ‘100년 생활사를 담은 20세기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어제와 오늘: 한국민중 80인의 사진첩>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1백여명의 연구단 참여 전문가들 가운데 20명의 전문연구자들과 3명의 사진작가들이 기록한, 격동의 20세기를 살아낸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이웃 80명의 삶이 그들 자신의 기억과 회고를 토대로 각자의 과거 및 현재 사진들과 함께 정리돼 있다. 이들 80명은 통계학적 표본이 아니며, 경인·호남·영남 이 세 지역군에서 연구자들이 찾아내고 선별한 민초들이다. 하나같이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 급진적 개발시대의 진통을 온몸으로 겪어낸, ‘특별할 게 없는’ 그러나 이 나라 이 시대를 만든 진짜 주역들이다.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이제 기막힌 세월을 되돌아보는 그들이 고단하고 눈물겹고 때로 허망해보이기도 하고 때론 허허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과 핏줄에 헌신했던 그들 세대의 절박하지만 당당했던 생존투쟁이야말로 한국현대사 그 자체였으며 그들의 기억이 역사 재구성을 위한 근간이 돼야 한다는 것을 책은 보여준다. 그들의 간결한 이력과 자서전을 대신한 연구자들의 비망록, 해설과 사진작가 3명의 노트 등도 따로 정리해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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