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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17:54 수정 : 2006.02.22 19:50

황금광시대

아깝다 이책

이 책과의 인연을 따지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출판사 새내기 시절 필자는 좋은 책을 기획하겠다는 애초의 의욕과는 달리 이렇다 할 원고 하나 받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 민망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만만한 것이 선배 아닌가. 가장 먼저 떠오른 저자가 카이스트의 전봉관 교수였다.

다시 2년 전, 그러니까 6년 전,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할 때였다. 그는 툭하면 나를 불러놓고 1930년대의 황금열풍에 대해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했다. 함께 차를 마실 때건 식사를 할 때건 언제 어디서나 그와 함께 있을 때면 황금광 시대의 풍속을 지겹도록 들어야 했다.

 “야, 너, 설의식이 누군지 아냐? ‘일장기 말소사건’의 책임을 지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물러났던 당대 최고 논객이었어. 근데, 이 양반이 소설가 채만식이랑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아? 금광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말이야. 재미있지? 그치?”

선배는 분명히 식민지 시대의 도시적 서정시를 연구 주제로 정해 박사논문을 쓰고 있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이 무슨 난데없는 금광타령인가?  

 “어이, 강 선생. 최창학이라고 들어봤어? 이건 거의 전설 수준이야. 삼십살까지 평북 일대를 빌빌대며 산 사람이지. 그런데 말야. 5년여를 평안도 고향 근처를 헤매다가 마침내 조선 최대의 금맥을 발견하게 돼. 별명이 ‘조선의 황금귀’야!”

무장독립군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밤중에 최창학의 삼성금광을 습격한 이야기, 최창학이 자다가 칼을 든 자객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밤중에 기관총 세례를 받기도 했다는 둥,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 알지? 후백제 견훤의 군대에 포위됐을 때 왕건의 복장을 하고 후백제 군사를 유인하다 목이 잘려나간 장수말이야.”


 “어? 오늘은 황금 얘기 아니네?”

 “끝까지 들어 봐. 태조 왕건이 신숭겸의 공을 기려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사를 지내줬거든. 황금광 시대의 광풍이 그걸 비껴갈 리가 없잖아. 30년대 잡지를 보면, 도굴꾼들이 그 황금머리를 훔치려고 난리였대. 평산 신씨 문중에서는 그 때문에 아예 신숭겸의 묘소에 천막 치고 밤낮으로 경계를 섰다잖냐.”

출판사에서 기획을 한답시고 앉아있던 필자가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잊고 있었다는 것이 갑자기 한심해졌다. 한달음에 달려가 저자를 졸라 그 자리에서 원고를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원고를 받기까지는 2년이 흘러야만 했다. 저자는 광업 관련 법령을 확인해야 했고,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금광 개발에 매진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당시의 경제상황도 알아야 했다. 옛 신문·잡지에서 관련 기사들을 찾아 퀼트 조각 맞추듯이 시대를 복원하는 일이 쉬웠겠는가.

책이 나오던 날 만감이 교차했다. 짧지 않은 시간의 인연이 저자와 기획자, 그리고 황금광 시대 사이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이 책의 독특함과 가치를 알아보았지만, 독자들의 손을 많이 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간이 황금의 매력을 알게 된 후로, 황금광 시대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기에, 이 책의 매력과 생명력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강심호/살림출판사 기획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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