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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즘의 기능
빌헬름 라이히 지음. 윤수종 옮김. 그린비 펴냄. 2만3000원 |
권위주의와 도덕적 엄숙주의 탓 수군대던 성기 · 오르가즘 침실 밖으로 끌어내 인간 무의식의 원천 집요하게 접근 오르가즘 불능 사회의 대중심리 통찰 “성 해방은 인간 해방의 근본 조건” 확신
오홋! 오르가즘의 기능이라…? 빨간색 표지에 새겨진 큼지막한 제목만 얼핏 보고 이 책을 성생활 지침서쯤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무척 실망한다. 도덕적 엄숙주의에 대해 ‘자연스러운 성과 오르가즘’의 해방투쟁을 벌여온 정신의학자 빌헬름 라이히(1897~1957)의 오르가즘 이론을 역설한 책이기에. 그래서 제목에 끌려 손을 뻗은 독자에게 이 책은 지루할 법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생각하지 못했던 심각한 생각들의 단서를 던져준다. 먼저, 책 제목의 반응 자체가 생각의 단서다. 이런 제목의 책을 들고서 지하철에서 남들 눈치가 심히 보인다면, 그건 라이히가 바로 이 책에서 집어냈던 ‘성억압과 오르가즘 불안’의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이히는 봉건사회를 넘어선 현대에도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억압, 그래서 위선적인 도덕주의가 우리의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오르가즘 불능 사회는 신경증적 전염병과 폭력 범죄는 물론이고 독재정치 출현의 토양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니까 오르가즘은 결코 침실 속의 얘기만이 아니다. 오르가즘은 개인과 사회,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논의돼야 할 심각한 화두다. 빌헬름 라이히가 1942년에 낸 <오르가즘의 기능>(그린비 펴냄)은, 이런 점에서 개인의 성생활이 아니라 인간 해방과 성 해방의 연관성을 끝까지 따지고들었던 한 과학자가 들려주는 정신분석학이자 생물학, 사회학, 정치학의 과학논증이다. 또한 이 책은 그의 독창적 오르가즘 이론이 진화하는 과정을 다룬 과학적 자서전이자 20세기 초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모습을 전하는 증언이기도 하다. 급집적 주장 공산당서 축출 라이히는 문제의 인물이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는 20대 중반에 이미 ‘성격분석기법’을 창안해 정신분석학계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무수한 임상실험과 관찰을 거치며 프로이트의 성의학보다 한발 더 나아가 ‘성기의 오르가즘에서 모든 신경증의 처방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론을 주창하면서 프로이트의 주류 정신분석학과 결별하기 시작했다. 또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인민대중을 위한 급진적 성해방을 주장하다가 독일 공산당에서 축출됐다. 성억압과 권력의 작동방식을 미시적으로 분석한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그의 대표 저작이다.<오르가즘의 기능>에선 ‘성기’와 ‘오르가즘’이 주제어다. 이 책은 ‘인간 생물학’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무의식의 원천에 접근하고자 했던 한 과학자의 집요한 과학투쟁을 보여준다. 리이히가 20여년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 접근한 그 원천의 실체는 ‘성기’에 닿고, ‘오르가즘 이론’으로 일반화했다가, 다시 ‘생체에너지’로 발전한다. 그것은 귀두와 질에 관한 연구, 긴장과 이완의 쾌락과 불쾌에 대한 세밀한 오르가즘 실험부터 파시즘의 등장을 허용하는 오르가즘 불능 사회의 대중심리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까지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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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 현상을 심리적 전염병의 대표 사례로 파악했다. 그는 <오르가즘의 기능>에서 새로운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자유의 불안을 느껴 파시즘의 강압에 복종하는 대중심리의 뿌리엔 성억압과 오르가즘 불능 사회에 피어나는 ‘신경증적 전염병’이 놓여 있으며 가부장적인 독일 나치즘은 이를 적절히 이용했다고 분석했다. 사진은 행진하는 독일 나치군.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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