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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18:28 수정 : 2005.07.21 18:31

한기호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신생출판사 사이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군단을 이끌고 갈리아 지방을 원정하면서 써내려간 <갈리아 전쟁기>를 첫 책으로 선택했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8년 동안 전개된 갈리아 전쟁을 서술할 때 이 전쟁의 주인공 카이사르가 직접 쓴 <갈리아 전쟁기>를 참고하지 않고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은 고금을 막론하고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글은 곧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극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독자들이 찾고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대로 <갈리아 전쟁기>는 “간결함, 명석함, 세련된 우아함”을 지닌 전쟁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 번역되어 나와 있던 책들은 이런 맛을 느끼기에 한계가 없지 않았다. 사이는 이런 출판시장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선 것이다. 사이는 카이사르의 두 번째 책 <내전기>를 8월 중에 출간해 이런 흐름에 더욱 힘을 가할 계획이다.

신생출판사가 저작권이 없는 책을 발굴해 주요한 출판사로 성장한 사례로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펴낸 예담이 있다. 지금 예담은 자회사인 위즈덤하우스를 통해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한국의 부자들> 등 베스트셀러를 이어서 펴내며 종합출판사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예담도 인터넷에서 반 고흐의 편지를 찾아내고 이를 그림과 결합해 처음 기획한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10만 부 이상 판매되지 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영화’를 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저자가 사망한 지 오래되어 저작권이 상실된 책 중에서 화제가 된 책이 적지 않다. 뮤지컬 원작으로 잘 알려져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르루), ‘느낌표’ 선정도서가 된 <톨스토이 단편선>, 모든 환경운동과 자연중심주의의 근원이라 할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리스 로마 신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변신이야기>(오비디우스), 자기 계발서의 고전으로 꼽히는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새뮤얼 스마일스) 등이 모두 저작권이 상실된 책을 펴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경우다.   

저작권으로 유지되는 출판사가 저작권이 없는 책을 찾는다는 것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저작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신생출판사가 유명저자나 화제가 되는 책의 판권을 따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포스트모던이 유행하던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사상은 생겨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9·11테러 이후 ‘문명’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책들이 유행한 정도이다. 경제·경영서에 한정하더라도 폴 크루그먼이 1997년에 있었던 아시아 금융대위기를 예언한 이후로 ‘대형 신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디지털 문명이 제 자리를 잡아가고 숨 가쁘게 속도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당분간은 편집자의 눈이 확 뜨일 만한 대사상가나 초일류 학자의 출현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절판됐던 책의 복간이 큰 흐름을 이루는 이 때에 신생출판사가 몇 천 년에 걸쳐 쌓아온 인류의 모든 지적 유산에서 ‘물건’이 될 만한 기획거리로 눈을 돌리는 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물론 그 물건이 지금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찾아내는 안목과 시대에 맞는 책을 만들어내는 편집력은 기본 소양이지만 말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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