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1 18:37
수정 : 2005.07.21 18:41
말글찻집
차이니스 요(堯) 임금에게 단주(丹朱)라는 아들이 있었다. 신하들이 한결같이 단주가 임금 감이 아니라고 했다. 요가 천하에 으뜸가는 어진 이를 구하라고 했더니 배달겨레 ‘순’(舜)이 추천되었다. 겨레가 달라서 서운했으나, 효도가 좋은 것이어서 불러보기로 했다. 시험 기간이 2년이었다. 요는 순의 사람됨을 알아보고자 딸 둘을 순의 아내가 되도록 했다. 요의 두 딸 이름이 아황과 여영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요는 순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었다.
배달겨레 순이 차이나 임금이 되고서 그쪽에 효도하는 길이 열렸다. 순의 효도가 종교처럼 되었다. 이를 유교(儒敎)라고 했다. 공자가 순의 효를 인륜에서 가장 높은 덕목으로 삼았다. 순이 행한 효가 유교로, 유교가 공자교로 되었다.
효는 순이 행한 덕목이었다. 유교, 그 뿌리는 배달겨레 순 임금의 효도에 있었다. 공자는 순을 존경했다. 동쪽에 군자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면서 “나는 배달겨레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했다. 배달겨레가 오랜 세월 <맹자>를 읽어 왔다. 맹자는 순 임금이 동이, 곧 고조선 배달겨레였다고 했다. 후대 배달겨레가 지닌 약점이 자기 나라·겨레에 대한 생각이 굳세지 못한 곳에 있다.
순은 임금이 되기 전에 대륙 요하 동쪽 하빈에 살았다. 역산에서 밭을 갈고,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질그릇을 만들어 팔면서 살았다. 어버이를 받들어 섬기기가 극에 이르렀다. 집 마당에 무궁화를 심어서 어버이 섬기는 날이 짧음을 가슴에 새겼다. 무궁화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것을 알고, 아침저녁으로 무궁화꽃을 보면서 피어 있는 시간이 길지 않듯이 어버이 섬길 날이 짧음을 가슴에 새기고자 그 나무를 집안 뜰에 심었다.
<규장전운>이란 책에 순(舜)이 유우씨의 호라고 기록되었고, 무궁화꽃 ‘순’으로도 기록되었다. 순이 임금이 되고서 순(蕣)이라는 글자를 만들고서 무궁화나무 순(蕣)으로 기록했다. 임금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하려고 풀 초(草)를 위에 얹고 그 밑에 순(舜) 자를 놓았던 것이다.
순이 차이나땅 순 임금이 되었으나, 무궁화나무는 배달겨레 것으로 남았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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