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1 18:42
수정 : 2005.07.2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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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에세이 달과 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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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9번째 생물 에세이 ‘달과 팽이’ 낸 권오길 교수
“출판사를 하는 제자가 찾아와 대뜸 책을 써달라 하기에 ‘그래 보세’ 했죠. 우연한 기회가 10년 넘게 과학책을 쓰는 계기가 됐네요. 그해 여름방학 내내 집 아이들이 쓰다버린 볼펜들을 모아 집에 틀어박혀 원고지 1300여 장을 메꾸었죠. 볼펜 한자루가 200자 원고지 106장을 메울 수 있다는 것도 새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 책은 볼펜 열세 자루가 지나간 궤적일 테죠.”
지난 1994년 <꿈꾸는 달팽이>라는 이름으로 과학 에세이를 쓰기 시작해 최근 아홉 번째 책 <달과 팽이>(지성사 펴냄)를 낸 강원대 생물학과 권오길(65) 교수는 “나의 영혼이 배어 있는 첫번째 ‘맏이 책’에 대한 애착이 아무래도 가장 크다”고 말했다. 해마다 한 권씩 책을 쓰겠노라 다짐했다는 그는 거의 해마다 한 권꼴로 생물학에서 세상의 이치와 지혜를 다듬어 뽑아내는 책을 11년째 써왔다.
생물의 치열한 삶과 죽음을 담은 <생물의 죽살이>(1995), 굶주린 동료를 위해선 제 피를 토해내는 흡혈박쥐처럼 마음 짠한 동식물의 다함께 살기를 다룬 <생물의 다살이>(1996), 쪼들려 사는 생물들의 애환을 전한 <생물의 애옥살이>(1996)는 자연세계를 들여다보는 잔잔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았다.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는 생물의 살린살이 이야기인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1998), 서로 돕는 생물들의 관계 맺기를 다룬 <하늘을 나는 달팽이>(1999)가 뒤이어 나왔고, 물고기 이야기만을 따로 모은 <열목어 눈에는 열이 없다>(2003), 세포와 분자생물학의 이야기만을 모은 <바람에 실려온 페니실린>(2004)이 나왔다. 9권을 합하면 그 분량만 2300여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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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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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생물의 다살이>에 실렸던 글이 ‘사람과 소나무’란 제목으로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고, “나의 애독자인 시인, 소설가, 국어선생님들”이 생겼으며, 생물학 교수와 더불어 ‘과학 수필가’와 ‘달팽이 박사’라는 다른 이름도 얻었다.
그는 30년 넘게 패류를 채집·조사하러 전국을 누빈 패류 전문가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에는 “굼뜨지만 꾸준히 살아가는” 달팽이가 종종 그의 책 제목에 올랐다. 이번 책의 ‘달과 팽이’도 달팽이의 변종 제목이다. 그의 해설이 재밌다. “달과 팽이를 줄이면 다시 달팽이이지요. 나는 달팽이란 말이 밤하늘의 둥근 달과 땅바닥에서 팽팽 도는 팽이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하니까요. 둘의 짝 지움이 썩 마음에 듭니다.” 달팽이의 예찬은 그의 책 속에서도 이어진다. “자고로 달팽이 하면 어쩐지 정감이 가서, 만져보고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인다. 달팽이는 둥그스름하고 행동이 굼뜬 것이 특징이다. 생김새가 모나지 않았으며,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지 않으니 정담고 마음이 끌린다.”
딱딱하고 난해할법한 과학지식을 쉽게 풀어 전하는 그는 “과학에 관한 글은 원숭이도 읽게시리 쉽게 써야 한다”는 글쓰기의 믿음을 지니고 있다. “요즘 들어선 국내에서도 여러 과학자 ‘글쟁이들’이 출현했어요.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가 대중을 위해 글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과학의 생활화, 생활의 과학화’를 위해 사명감을 가져야 하죠.”
‘글쓰기란 피를 잉크로 만드는 일’이라며 여전히 글쓰기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그는 퇴직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남아 더 좋은 글쓰기에 맹진하겠노라고 말한다. 사진 권오길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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