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1 19:19
수정 : 2005.07.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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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초밥요리사
프란스 드발 지음. 박성규 옮김. 수희재 펴냄.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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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고양이도 관찰 · 학습 · 모방하며 저마다 ‘문화’ 만든다
영장류 삶 답사 통해 인간중심주의에 일침
미국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발(57·에모리대학 교수)의 <원숭이와 초밥요리사>(수희재 펴냄)는 오로지 인간만이 문화를 지닐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문화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인간의 독점물이라는 아주 오래된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다른 동물과 자연의 세계를 바라보는 이른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동물행동학자의 ‘개념 수정’인 셈이다.
30여 년 동안 원숭이·침팬지·보노보 등 영장류를 관찰·연구해온 지은이는 이 책을 위해 1998년 ‘80일 동안의 세계일주’를 벌였다. 오스트리아·중국·일본·네덜란드·미국 등에서 영장류 전문가들과 인터뷰하고, 일본 고시마섬 원숭이와 티베트 원숭이 같은 실제 영장류의 삶 현장을 답사한 끝에 이 책을 내놓았다.
이리하여 이 책은 세 가지의 큰 물음을 던진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1부 문화의 안경), ‘인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2부 문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3부 인간의 본성). 세 가지 주제 사이를, 또한 인간과 동물 사이를 오가면서 “문화와 자연의 분계선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최대한 많이 쑤셔본다”는 게 지은이의 기획이다.
문화의 개념은 이 책에서 인간이 발명한 일상의 뜻과는 다르다. “(인간) 문화의 안경”을 벗고서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본 동물행동학자의 ‘문화’는 “타자한테서 얻은, …대개는 구세대로부터 습득하는 지식과 습관” 이 된다. 이렇게 보자면, 문화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다름은 존재할지언정, 동물에겐 야만성만이 존재하고 문화는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점점 더 쌓이는 동물행동학의 연구사례들은 동물에도 집단마다 나름의 문화가 학습되고 전수됨을 보여준다. 어미의 행동을 따라 변소상자에서 소변을 보는 새끼 고양이나, 사람과 함께 생활하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줄 알게 된 침팬지나, 자연의 음악성으로 모차르트의 마음을 움직인 찌르레기나, 화폭에 여러 그림을 남겨 작품전람회까지 연 원숭이나, 함께 자랐기에 평화로운 가족을 이룬 개와 호랑이나….
이런 점에서 ‘원숭이와 초밥요리사’는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함께 할 수 없지만,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어 멀찌감치 뒤로 물러서 바라본 더 넓은 시선에서는 “한 장의 사진에 담길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초밥요리 수습생의 관찰과 학습, 그리고 모방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초밥요리사의 수습생이 받는 교육은 수동적인 관찰이 전부인 듯하다. 젊은 남자는 식기를 씻고 주방을 청소하고 손님에게 절하고 재료를 들어 나르는 사이사이에 곁눈질로 요리사가 하는 것을 힐끗 훔쳐본다. 질문을 할 수 없다. 이렇게 최소 3년 동안, 식당의 손님에게 초밥을 내는 일은 일절 허용되지 않은 채 오로지 지켜보기만 하는 나날이 계속된다.” 3년이 지나고 ‘그날’이 오면 수습생은 초밥 요리를 훌륭히 해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련됨이나 정교함, 예술성에선 다르겠지만 원숭이도 초밥요리 수습생의 태도처럼 문화적 학습을 훌륭히 해낼 것이라고 지은이는 강변한다.
이런 동물들의 문화 학습 사례에 더해 “인간의 문화와 인간의 본성이 양극에 있다는, 시대에 뒤처진 서양의 이원론을 무덤으로 끌고 가기” 위해 문화 대 자연, 선 대 악, 우리 대 저들, 여성스러움 대 남성스러움 등 서양식 이분법을 비판하고 일원적 사고의 동양 전통과 맹자의 성선설에 지지를 보내거나, 이런 문화 대 자연의 이분법에 기댄 레비스트로스, 프로이트, 스키너 등 저명인사들의 이론과 사상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지은이의 목소리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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