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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20:15 수정 : 2005.07.21 20:19

김선우 산문집 <김선우의 사물들>

50여 나라 200여 도시 찍고 채집한 떠남의 단상

 ‘시힘’ 동인인 김선우씨와 이병률씨가 나란히 산문집을 내놓았다.

<김선우의 사물들>(눌와)은 숟가락, 의자, 못, 부채, 쓰레기통, 지도, 휴대폰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 20종에 관한 경험과 사유를 펼쳐 놓는다.

사물들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은 우선 사물들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격과 의지가 없는 물건들이라고는 해도 함부로 말을 걸고 원하는 대로 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건넬 말을 기꺼이 받아줄 만한 사물과 만나야 한다. 내가 말을 걸어도 그가 자기 속내를 보여줄 의사가 전혀 없다면 곤란해진다. 사물의 속내란 그것에 말 거는 내 무의식의 속내이기도 하다.”(119쪽)

 그러니까 <…사물들>은 시인 김선우씨가 사물을 매개 삼아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펼쳐 보인 대화록 또는 고백록이라 할 법하다. 그가 대화의 첫 상대로 숟가락을 택한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가 보기에 숟가락의 기능은

이병률 산문집 <끌림>
 ‘뜬다’는 말로 요약되거니와, “뜬다는 것은 모신다는 것이다.”(10쪽) 또 “숟가락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는 흔히 세상의 어미들에 대한 그리움을 동반하는데, 아마도 그 ‘둥긂’과 ‘먹인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13쪽) 일상 속의 명상과 어머니라는, 숟가락이 떠올리는 두 가지 주제는 이 산문집 전체를 관류하는 주조음이기도 하다.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걸레’는 아마도 시인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심상과 가장 잘 통하는 사물일 테다. “걸레를 앞에 두고 무릎을 꿇는 자세는 기묘한 정신의 각성을 불러오곤 한다”(128쪽)고 그는 쓴다. 쇠락과 재생의 관련성을 증거한다는 점에서도 걸레는 어머니를 닮았다.

 “걸레는 연관되어 있는 세계의 순환을 단적으로 증거한다. 걸레는 저물고 뜨는 것들의 경계에서 지상의 얼룩을 지우고, 공간은 흘러간다. 나는 걸레가 지나간 자리가 꽃 피는 것을 엎드려 오래 바라본다.”(128쪽)

이 산문집이 고귀하고 거룩한 것들에게만 바쳐진 것은 아니다. 그가 “미학적 심연을 지녔다”고 상찬하는 잔들에 관한 산문에서 시인은 봄에 잔으로 마시는 술에 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반쯤 취한 듯한 어조다.


 “술은 봄 술이 제격이다. 내게는 그렇다. 벚꽃이나 사과꽃 만발한 나무 아래서 달밤에 마시는 술도 일품이고 좋은 한낮에 꽃나무 아래서 마시는 낮술도 봄이라야 제격이다. 봄비 내리는 날도 마다할 수 없겠다. 술의 종류를 떠나 꽃나무 아래서 마시는 술은 잔술이 제격이다.”(150~151쪽)

이병률씨의 <끌림>은 1994년에서 2005년까지 그가 여행한 50여개 나라 200여 도시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에 시를 닮은 짧은 산문들을 곁들인 책이다. 50여 나라에 200여 도시라는 숫자를 부러워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시인이 책의 말미에서 쓰고 있는바 “영원히 떠나 있는 사람이고자 했던 소망”을 실천에 옮기기란 말처럼 쉬운 노릇은 아니다. 그가 이런저런 세속적 가치를 희생하고 포기하면서 몸을 놀려 채집해 온 이미지와 문장을 통해 독자들은 ‘떠남’의 자유와 불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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