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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20:25 수정 : 2005.07.22 14:33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세설

조갑제가 대한민국은 아니듯
일본 우익이 일본은 아니다
일본이어서
지진으로 죽어도 괜찮단
증오가 좀먹는 건 우리 영혼이다
이제 일본, 털자
그래야 우리가 더 행복해서다

1.

쓰레빠(X), 슬리퍼(O). 이 몰지각에 본인, 분노하는 바이다. 색상은 통상 브라운 계열로 대개 6개월 이내 허리가 절단나 제 명을 다하게 되며 과거에는 호방한 성정의 성인 남성들이 인근 마실 행차 시에도 착용하곤 하였으나 근자에는 주로 욕실처럼 다습한 환경으로 그 용처가 한정된 경질 피브이시(PVC) 사출물. 그게 쓰레빠다.

반면. 실내 가운, 파이프와 함께 70년대 방화 속 별장주인의 3대 코스튬이었다가 작금 숙박업소 실내 슈즈로 그 ‘불륜’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연성 플라스틱폼 밑창으로 인해 보행 시 ‘용각산’적 정적을 담보해내지만 오프로드 보행은 불가한 백색 계통의 헝겊 봉제물. 이게 슬리퍼다. 이 둘, 다른 사물이다.

2.

지난 주말,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든 기사 하나가 떴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독도 위치가 잘못 기재되어 있단다. 북위 37도 9분, 동경 131도 55분로 표기돼 일본 국토지리원 표기와 남동쪽으로 11㎞ 오차가 있단다. 일본 외무성은 과거 자료를 참고하다 보니 오류가 생겼다고 해명했단다. 이 외신의 포탈 노출 제목이 <일본, 제 발등 찍다>. 제 것 아닌 것을 제 것이라 우기다가 물증 잡혔다 이거다. 참… 남사스럽다.


박찬호와 노모가 다저스에서 같이 뛸 적, 우리 언론에게 노모는 동료가 아니라, 무찌르자 공산당이었다. 노모가 마이너로 가자 우리 언론, 심하게 흥분한다. 노모의 부진은 한민족의 상대적 우수성을 증거하는 방증. 만세, 만세. 그러나 노모 방출에 정작 찬호는 “노모의 빈 라커가 너무 허전하다”했다. 얼마 전 후지산 호수 밑바닥에 태극기 꽂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

3.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간섭받다 16세기 이후로 1948년 독립 때까지 식민지배를 당했다. 그들은 땅을 유산받거나 매입, 임대하지 못했고 대학 진학은 물론 군대와 법조계 진출도 금지당했다. 아일랜드인의 두개골은 크로마뇽인의 그것과 근사해 그들의 우생학적 열등함을 증명하고 있다 주장하는 식민본국, 영국에 의해. 16세기 임진왜란 때 일본 식민지가 되어 400여 년을 신사 참배하다 간신히 해방되었지만 이제는 겨우 인구의 5%만이 한국어를 하는 상황. 아일랜드의 영국에 대한 피해의식, 그렇게 치환하면 감이 온다.

세설-쓰레빠는 쓰레빠다
19세기 감자 대기근 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도록 방치했던 영국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하거나 혹은 영국은 용서해도 가톨릭교도들을 대학살하고 성직자 전원을 추방했던 크롬웰은 용서할 수 없다는 식으로 변주되기만 하던 그들의 영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비로소 극복되기 시작한 건 그들의 국민소득이 식민본국 영국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월드컵 4강으로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일본에게 관대해졌던 것처럼.

4.

우린 우리가 못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에게 입증하기 위해, 어떤 일본전도 질 수 없었다. 이 강박, 인간적이다. 네델란드도 독일과 축구하면 목숨 건다. 게다가 피해의식은 분명 가해자 행위의 결과물. 이 집착, 가해자에게 귀책사유 있다. 해서 평생 독도 가본 적 없었을 이순신의 동상을 독도에 건립하자는 주장에 아무도 웃지 못한다. 왜. 우리 분노는 정당하니까. 비분 이외 감정은 반역이다. 물론. 일본, 독일만 못하다. 독일, 이스라엘과 폴란드에 훨씬 더 잘했다. 해서 노무현은 고이즈미를 훈계하려 한다. 그러나 착각이다. 어떤 국가도 상대국로부터 역사 레슨을 받고 앉아 있진 않는다. 더구나 독일은 나치에 몽땅 씌우고 다 털었다.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 안으로는 경제성장으로 면책받으려 했고, 밖으론 일본을 필요로 했던 미국이 무마했다.

이제 사실을 말하자. 우리 콤플렉스, 일본이 풀어줄 수 없다. 백만 번 더 사과해도 안 된다.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민족이라 울부짖던 아일랜드가 영국의 반성으로 객관적이 된 게 아니다. 월드컵 4강이 일본을 바꾼 게 아니다. 과거사. 깔끔하게 마감하자. 포스트 콜로니얼의 식민근성. 세심하게 정리하자. 쪽 팔린다. 하지만 조갑제 아저씨가 대한민국이 아니듯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일본 아니다. 일본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산다. 일본인이어서 지진으로 죽어도 괜찮단 증오가 좀먹는 건 우리 영혼이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그건 일본의 불행이다. 이제 일본, 털자. 일본이 경제대국이고 앞으로도 거래를 해야 하니까가 아니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서도 아니다. 모든 것 이전에 그래야 우리가 더 행복해서다. 피해의식은 세상을 굴절시키고 그리고 그 왜곡은, 유전된다.

5.

쓰레빠는 쓰레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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