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1 20:38
수정 : 2005.07.2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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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leeyoung@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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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만난 사회
최근 정부와 여당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자 다시 한번 인터넷 실명제를 둘러싼 논란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인터넷 실명제가 현재 사이버에 만연해 있는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비방 등 사이버 폭력을 막는 데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실명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인터넷 실명제는 사이버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점은,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이 인터넷 실명제 추진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게 된 데는 최근 인터넷 실명제를 둘러싼 여론조사 결과들이 대체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실명제만큼은 시민들의 지지를 폭넓게 받고 있다는 자신감일 게다.
정부가 시민 생활에 중요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시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하기 위해서는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과 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현재 논란이 되는 인터넷 실명제의 경우는 사안의 성격상 단순 의견조사로 시민들의 여론을 잘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과연 인터넷 실명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조차 아직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실명제에 대한 찬성 쪽의 견해와 반대 쪽의 의견이 균형감 있게 제공되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던져진 인터넷 실명제 찬반 여부 질문에 대한 응답 결과를 시민들의 여론이라고 들이대는 것은 무척이나 비합리적이다.
정부와 여당이 진정으로 시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면 실명제 논란에 대해 균형 있게 제공된 정보를 기반으로 심사숙고한 결과 표출되는 시민들의 의견이 무엇인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마치 배심원들이 법정에서 검사 쪽과 변호인 쪽의 상반된 주장을 균형 있게 접하고 그에 대한 심사숙고를 통해 최종 의견을 제출하는 것과 유사하게,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인터넷 실명제 시민배심원’으로 하여금 충분한 토의와 심사숙고 끝에 인터넷 실명제를 판결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이영희/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leeyoung@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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