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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80번 옆에 있는 캔터키 주 동부의 한 탄광. 갱도를 파고 들어가서 캐내지 않고 다이나마이트로 산의 뚜껑을 폭파시켜서 석탄을 캐내기 때문에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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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10
도로에도 계급이 있다. ‘주간 고속도로’는 미국의 중추신경
미국사회는 이도로를 중심으로 재배치돼 출입구엔 판에 박힌 마을이 우후죽순 생겼다
이에비해 ‘카운티도로’로 가는 자전거여행은 기울어가는 마을, 성장의 이면을 달린다 오늘 드디어 버지니아 주를 넘어 캔터키 주에 들어왔다. 14일 만이다. 미국 여행을 독서에 비유한다면 미국 자전거 횡단 여행은 12장 149쪽짜리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지능 못지 않게 체력이 요구된다. 눈이 아니라 온 몸으로 읽는다. 어드벤처 사이클링 어소시에이션이 제작한 이 ‘책’은 한 쪽마다 50㎞ 안팎의 트레일이 주변의 마을과 함께 표시돼 있다. 14일만에 17쪽을 읽어서 새로운 주로 들어왔으니 그렇게 빨리 읽는 편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도 읽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신대방동에 살 때 그 때로서는 먼 동네인 봉천4동까지 아무 이유도 없이 걸어서 갔다 온 뒤 다녀온 길을 지도로 그려보곤 했다. 언어는 실재를 단순화한 것이다. 산이라고 하면 관악산에서부터 에버레스트까지 다 포함된다. 지도는 선과 색의 언어로 현실을 단순화한 것이다. 글보다 더 직접적이다. 마치 암실 확대기로 필름에 빛을 비추면 하얀 종이에 형상이 돋아나듯 지도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부각된다. 그렇게 상상하는 게 좋다. 등고선 간격이 짧으면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같은 험한 산세가 떠오르고 강을 표시한 파란 선이 곧게 뻗어있으면 삼각주를 만들며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이 연상된다. 대지는 평평할 것이다. 쓰임새가 다르면 지도도 달라진다. 자전거 지도에 표시되는 시설은 식료품 가게와 우체국, 캠프장, 모텔, 주유소, 식당, 자전거포, 화장실 그리고 도서관이다. 이 일곱 가지 시설만 있으면 바이크 라이더들은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다. 얼마나 소박한 삶인가. 그러나 불행히도 이 7가지 시설을 갖춘 동네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은 대인기피증에 걸린 것처럼 미국의 오지를 지나간다. 인구 1천 명이 넘는 마을은 매우 번화한 마을에 속한다. 버지니아 주 다마스커스도 인구 981명밖에 안 된다. 오늘 내가 지나온 버지니아 주 헤이시(Haysi)는 인구가 186명이다. 미국의 오래된 마을들은 대체로 64㎞ 간격으로 포진해 있다. 마차가 하루에 가는 거리마다 마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가 도입되면서 중간에 마을들이 생겨나 이 간격이 문란해졌다.
인구 1천명이면 변화한 마을 지도에는 빨간 선으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이 표시돼 있다. 자전거로 이 선을 타고 가면서 미국을 읽는다. 관광지나 목적지들을 찾아다니는 자동차 여행의 경로를 점선이라고 하면 자전거여행은 실선이다. 창 밖으로 보는 게 아니라 경치의 일부가 된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내리면 비에 젖는다. 그래서 주변에 명승지가 있다고 해서 굳이 들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책의 부록에 불과한 것이다. 지도에는 쪽마다 길 안내가 돼 있다. 다음은 여행 시작 13일째에 읽은 135 쪽 지도의 길 안내. “CR603을 타고 13㎞. CR600으로 좌회전, 160m 지점에서 CR603으로 우회전. 4㎞ 가면 코너록. US58로 직진. SR91이 합류. 그렇게 1㎞ 가면 다마스커스. 계속 SR91로. US58이 갈라져 나감. 사우스 포크 홀스톤 강을 건넌다. 6㎞ CR722로 좌회전. 1㎞ 뒤 CR709에서 우회전. CR803으로 직진. CR803이 SR80으로 바뀜. I-81 다리 밑으로 가면 메도뷰. CR609와 SR80을 따라 좌회전. 린델 로드와 SR80으로 우회전” 빨간 선에서 벗어나지 않게 타고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종종 길을 잃어버린다. 트레일에서 벗어나면 세상이 갑자기 혼미해진다. 지도가 그려지지 않은 세상은 혼돈이다. 사실 트레일로 표시되나 안되나 촌이기는 마찬가진데도 말이다. 트레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버린 지점까지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기운 넘치는 바이크 라이더도 이미 넘어온 고개를 다시 넘어가라고 하면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안 그래도 먼 길인데 같은 길을 두 번 타게 되면 심신이 지친다. 어차피 미국 구경하는 건데 좀더 많이 보고 느끼면 되는 것 아닌가 말은 쉽게 하지만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라가는 게 쉽지는 않다
길을 잃으면 갑자기 세상이 혼미해진다
기운이 넘치는 라이더도 막 넘어온 고개를
다시 넘어가라고 하면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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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스 인터스테이트 공원에 있는 식당에서 살쾡이가 유리문턱에 앞발을 대고 안을 바라보고 있다. 이 살쾡이는 저녁마다 빵을 얻어먹으러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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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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