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2 17:33
수정 : 2005.07.22 17:34
“각자의 언어로 동북아 문화패권 얘기하자”
“중국은 비어 있다.” 레이치리 중국 화동사범대 교수의 말이다. 중국의 고도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사유와 정서는 오히려 정부의 관리와 통제 아래, ‘공동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대만 사람 내부에 있다. 중국은 이미 ‘탈중국화’했다.” 대만 작가 중흥셩은 중국적 전통을 둘러싼 중국과 대만의 미묘한 엇갈림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남포럼 주최로 21일 연세대에서 열린 ‘동아시아인이 보는 오늘의 중국’ 세미나는 이렇듯 동아시아 여러 나라 학자들이 중국을 여러 각도에서 뒤집어 보려는 자리였다. 첸광싱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겉으로는 평등해 보이는 아시아 내부에도 ‘대국’, ‘소국’의 문제가 있다”며 “이제 각자의 언어로 중국이라는 동북아 문화 패권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쑨꺼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대만을 제대로 보려면 그 주변을 봐야 하듯이, (중국)대륙을 논하려면 대륙 주변을 봐야 한다”며 “각자(각 나라)의 입장에서 중국의 (고정된) 정체성을 상상하는 것은 ‘내용’이 결여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리 요시노 일본 오사카대 교수는 중국인의 ‘반일 감정’ 문제를 짚었다. 모리 교수는 “반일 아니면 친일이라는 패러다임은 ‘타자’에 대해 (논리가 아닌) 감정을 작동시키는 것”이라며 “이런 이분법으로 현실을 대응하는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변천을 짚었다. 개항기 전까지 중국은 문명의 중심이었으나, 1895년 청·일 전쟁 이래 중국은 ‘야만국’으로 전락했고, 이는 해방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을 천시·경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지식인 사이에서 중국이 제3의 길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번지면서 호감이 생겼고, 2000년대부터 겉으로는 중국을 무시하면서 뒤에서는 중국어를 배우는 ‘복합’적 정서가 생겼다. 백 교수는 이런 변천에 대해 “문화적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문제이며, 특히 여전히 온존하고 있는 냉전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미·일과 대응하는 중·러·북한의 대립 구도에 의해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크게 영향받았다는 것이다.
이날 자리는 22일부터 사흘간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리는 ‘인터 아시아 국제학술심포지엄’의 예비 모임의 성격도 겸했다.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23일 ‘중국이라는 변화하는 문화적 상상계에 대한 토론’ 세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