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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5:40 수정 : 2005.07.28 16:01

고급 승용차·냉장고 선물 ‘미끼’로 개인정보 팔고 부가서비스 슬쩍 끼워넣고 과태료엔 버럭…사실 공지 요구엔 딴청 ‘유비쿼터스’ 외치며 통신망 깔면 뭐하나 국민 믿음 못 얻으면 ‘말짱 도루묵’ 정보침해 열심히 신고해 기업 경쟁력 키워주자

현장 속 현장

#사례1

“정보통신부가 케이티에게 7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정당하다.” 지난 1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나온 판결이다. 케이티가 정통부의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의신청을 한 소송에 대해 기각 판결을 한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판결에 대해 “우리나라가 정보화에서 앞서나가는 데 밑거름 구실을 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재판에서 진 케이티(KT)에게는 꽤나 ‘쓴’ 것이지만, 자신의 개인정보를 기업에게 맡긴 국민들에게서는 무더위 뒤의 소나기처럼 상쾌함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은 언론의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케이티는 지난해 11조8500억원의 매출을 올려 1조2555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 업체에게 750만원은 시쳇말로 ‘껌값’도 안되는 돈이다. 하지만 케이티는 껌 값도 안되는 과태료에 불복해, 통신업체에 대한 규제를 직접 담당하는 정통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왜 그랬을까.

케이티는 지난해 2300여만 전화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를 받아 기업에게 마케팅용으로 빌려주는 사업을 ‘소디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케이티는 이 사업에 남다른 기대를 걸었다. 가입자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최신 고급 승용차와 고급 냉장고, 고급 세탁기, 디지털카메라 등을 경품을 내걸고, 전화요금 감면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케이티는 전화 가입이나 이전 신청을 받으면, 직원을 보내 주민등록증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전화를 설치해준다. 따라서 가입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가 정확하다. 주소와 전화번호로 보면, 정부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게다가 케이티는 전체 시내전화 가입자 가운데 95% 이상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우편이나 방문 판매를 하는 기업쪽에서 보면, 케이티의 가입자 정보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가정을 대상으로 텔레마케팅을 하는 업체들도 탐낸다. 케이티 가입자 정보를 이용하면, 서울 강남에 사는 30대 남자를 뽑아 집으로 광고 우편을 보내거나 사람을 보내 상품을 설명하는 마케팅이 가능하다.

정보의 가치는 대선이나 총선 출마자들에게 가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진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정통부의 과태료 부과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로 실패했다는 게 확인됐다. 케이티는 이 사업으로 엄청난 비용을 날렸고, ‘돈이 된다면 고객의 개인정보까지도 팔아먹는 기업’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정통부는 케이티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과 별도로 케이티를 검찰에 고발했다. 정통부는 “케이티가 소디스 사업을 하면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침해했다”고 고발 이유를 설명했다. 따라서 케이티는 소디스 사업으로 형사처벌까지 받게 됐다.

소디스 사업은 우편 판매와 텔레마케팅의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도 갖고 있다. 하지만 고객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부분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 게 결과적으로 상처만 남긴 채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특히 경품이나 전화요금 감면 등을 내세워 본인 동의를 유도하고,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 자기정보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란 지적을 흘려들은 게 화근이었다.

정통부와 시민단체들은 처음부터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들어 케이티쪽에 본인 동의 및 철회 절차의 보완을 요구했다. 하지만 케이티는 “우리나라 최고의 법무법인의 법률자문까지 받았다”며 밀어부쳤다. 정통부와 시민단체들의 개선 요구에 대해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사례2

지난 6월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케이티에프에게 “피해자들에게 몰래 받은 요금을 모두 돌려주고, 별도로 3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케이티에프(KTF)로서는 뼈아픈 판결이다. 하지만 이동통신 이용자쪽에서 보면, 돈이 된다면 고객을 몰래 부가서비스에 가입시키는 행위쯤은 눈도 깜짝 안하고 하는 이동통신 업체들의 행태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2002년 초 케이티에프는 개인휴대전화 가입자를 몰래 부가서비스(매직엔)에 가입시켜 월 2700~4500원씩의 요금까지 받아오다 통신위원회에 적발됐다. 당시 통신위는 “피해자가 7만4천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케이티에프는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당시 참여연대는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으니, 요금청구서 및 홈페이지의 공지 난을 통해 부가서비스의 부당한 몰래가입 사실을 가입자들에게 알려줄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케이티에프가 통신위원회에 제출한 시정명령 이행결과 보고서를 보면, 피해자가 최대 29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또 피해자 신 아무개씨는 “부가서비스에 몰래 가입시킨 행위는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한 것”이라며,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쟁조정위)에 정신적 피해보상(위자료)을 요구하는 조정 신청을 해, 50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케이티에프는 참여연대의 요구와 개인정보분쟁조정위의 결정을 모두 거부했다. 회사 이미지가 구겨지고, 본인이 신청해서 이용하던 사람들도 몰래 가입됐다며 요금 반환과 위자료 청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반발했으나 귓등으로 흘렸다.

이에 참여연대는 케이티에프를 개인정보 침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이 업체를 벌금 2천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피해자 140여명은 100만원씩의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고, 케이티에프와 2년 가까운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30만원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없다고 한다. 2년 전 케이티에프가 가입자들을 몰래 부가서비스에 가입시킨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참여연대의 요구와 개인정보분쟁조정위의 결정을 수용했다면 어찌됐을까. 케이티에프의 설명대로 자발적으로 부가서비스 가입 신청을 해놓고 그 사실을 부인하며 요금 반환과 위자료 청구에 나서는 가입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게이티에프는 그대신 가입자들로부터 “적어도 케이티에프는 앞으로 가입자들을 몰래 부가서비스에 가입시키는 행위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피해를 또 당한다면?

회사원 김 아무개씨는 통신요금 청구서를 확인하다 신청하지도 않은 부가서비스 요금이 포함된 사실을 알았다. 통신업체 고객지원센터에 문의하자, “확인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한 뒤 종무소식이다. 김씨는 개인정보를 침해당했다며,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50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 신청을 분쟁조정위에 냈다. 분쟁조정위는 통신업체에게 김씨한테서 가입 신청을 받은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으나 내놓지 못하자, 김씨의 요구대로 정신적 피해보상을 하라고 결정했다.

대학생 박 아무개씨는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나갔다가 이동통신업체의 경품행사에 참여했다. 도우미가 내미는 용지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를 적어주자 영화티켓 2장을 줬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동전화를 싸게 줄테니 옮기라는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경품행사에 적어주지 않았느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박씨는 경품행사 때 개인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분쟁조정위에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조정신청을 냈다. 분쟁조정위는 “언제 어디다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경품이나 요금감면을 미끼로 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받는 것은 자기정보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정신적 피해보상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최근 나온 2건의 판례는 국민들에게 부가서비스 부당 가입이나 경품으로 유혹해 개인정보를 수집해 활용하는 피해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른바 피해자 행동요령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정보 침해를 당했으면 “30만~50만원 벌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한다.

정부와 통신업체들은 ‘유비쿼터스’를 외친다. 시간, 장소, 단말기 종류에 상관없이 통신서비스나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구호도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통신망을 깔아도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말짱 도로묵이다.

앞서 사례로 든 2건의 판례에 대해 정보화에서 앞서 갈 수 있는 밑거름으로 평가하고, 상세하게 소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든 국민이 개인정보 침해 피해를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위자료 청구 소송에 나서는 것, 그게 기업의 경쟁력도 키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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