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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5:55 수정 : 2005.07.28 15:59

역사로 보는 한주

1964년 8월2일 3척의 북베트남 어뢰정이 베트남 통킹만에서 작전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를 향해 어뢰와 기관총 공격을 가했다. 미국이 개입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획적으로 유발해낸 이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20세기의 가장 추악하고 부도덕한 제국주의 침략전쟁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베트남 군사개입(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본격화했다.

매독스는 즉각 반격했고 항공모함 타이콘디로거의 함재기들과 또다른 구축함 터너죠이까지 가세했다. 북베트남 어뢰정 1척이 격침당하고 나머지 2척도 손상을 입었다. 이틀 뒤인 4일 매독스와 터너죠이는 다시 초계활동에 들어가 북베트남군이 공격해오는 것을 레이더로 확인해 반격했다고 밝혔다. 사실은 북베트남 해군기지와 석유저장소에 대한 일방적 폭격이었다.

매독스 등은 이미 그 며칠 전인 7월31일부터 초계활동을 시작해 남베트남 특수부대의 북베트남 연안 습격도 지원하고 있었다. 8월7일 미 상·하 양원은 북베트남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인 ‘통킹만 결의’를 채택했다. 65년 2월 B-52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대적인 북베트남 폭격(북폭)이 시작됐다. 중앙정보국(CIA)이나 군사고문단 등을 통한 기존의 배후조종형 개입을 버리고 자국군이 전면에 나서는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그해 7월2일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에 전투부대 1개 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10여일 전인 6월22일 미국의 종용 아래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로써 미국의 동원체제는 정비됐다.

통킹만 사건은 <뉴욕타임스>가 미 국방부의 방대한 베트남전 비밀보고서인 이른바 ‘펜터건 페이퍼’를 입수해 71년 6월13일부터 연재함으로써 날조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도 95년에 자작극이었음을 자백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54년 프랑스군이 디엔비엔푸 전투 참패 뒤 베트남에서 철수하자 고 딘 디엠 괴뢰정권을 지원하면서 프랑스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그러나 그가 압제와 무능으로 신망을 잃자 전면 군사개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63년 11월1일 케네디 대통령의 승인 아래 중앙정보국이 지원한 쿠데타가 일어나 고 딘 디엠과 그의 동생인 비밀경찰총수 고 딘 누가 암살당하고 정권이 교체됐다. 같은 달 22일 케네디도 암살당했으나 미국의 전면개입 정책은 예정대로 강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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