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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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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엉킨 교육 문제를 푸는 핵심고리는 서울대 정점인 대학 서열화 구조 타파 서울대에서 법대·의대·경영대는 없애고 인기없는 기초과학 전공 등을 키우자 민주적 선출 된 총장에게 예산·인사권 주자
인물로 세상읽기/ 서울대 개혁 주장한 최갑수 서울대 교수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을 둘러싸고 사회 전체가 소란스럽다. 나는 서울대 입시안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잘 사는 집 애들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을 감안하면, 그리고 사교육 행태와 입시산업 동향을 고려하면, 소위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이라는 것은 고액 과외를 받는 아이들에게만 유리하다. 한국사회는 고등교육에 대해 분명한 국민적 합의가 있다. 지식자본 내지는 교육자본의 획득에서 기회 균등의 원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시행된 과거시험과 일제 때 시행된 고등문관시험 및 보통문관시험, 그리고 해방 이후 국가가 시행한 각종 고시 등과 같은 제도들은 개인이 획득한 지식과 지적 능력을 통해서 경제적 부와 사회적 상징 자원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해왔다. 설령 이 재분배의 원리가 자본주의 경쟁 원리와는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는 교육에서의 기회 균등의 원리를 역사적으로 선호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선호 경향은 병역 문제라든가 이와 얽힌 국적 문제에서도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결국 이 기회 균등의 경향적 원리는 역사적이고도 인류학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민족공동체 원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모든 대학은 서울대와 나머지 국공립대학, 혹은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과 나머지 사립대학을 경계로 해서 일률적으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이 서열화 구조는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고착화시키며, 더 나아가 현재의 계급 및 소득 구조를 재생산한다. 적자인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이 서열화 구조에서는 나머지 대학들은 서얼인 셈이다. 이 서열화 구조의 문제점은 대학 입시와 관련된 몇 번의 시험에 의해서 학생들의 나머지 삶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결정되어버린다는 것이고, 또 날이 갈수록 잘 사는 집 애들만이 일류대학과 인기학과에 진학하게 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 서열화 구조를 타파하지 않은 채 평준화제도라든가 입시제도만을 건드리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교육 기회균등은 국민적 합의고교평준화제도를 포함한 소위 삼불정책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는 않는 사회적 완충장치 역할을 잠정적으로 해왔다. 즉, 그것들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앞서 말한 교육에서의 기회 균등과 관련된 국민적 선호에 합당한 제도들인 것이다. 서울대의 새로운 입시안은 이렇게 망국적인 서열화 구조는 그대로 놔둔 채 잘 사는 집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함으로써 서울대의 특권과 기득권을 계속 지켜가겠다는 방안인 셈이다. 서울대는 대학의 자율성 운운하면서 학생 선발권을 대학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일의 선후와 경중이 뒤바뀐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모든 문제들을 푸는 핵심고리를 찾는 것은 어찌 되었든 간에 대학 서열화 구조를 타파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동안 서울대와 관련해서는 폐교론, 분리론, 개방론 등이 제안되었는데, 나는 여러 안 중에서 서울대 서양사학과 최갑수 교수의 안을 지지한다. 최 교수는 역사학자답게 무엇보다 서울대의 역사적 원죄를 성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서울대의 전신은 경성제국대학이다. 경성제대는 기본적으로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서 만든 종합대학이라는 역사적 한계를 갖는다. 하지만 해방이 된 후에 이런 역사적 한계에 대한 반성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 군정청의 소위 국대안 설립 계획의 시행과 관련해서 결국에는 대학 안에서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을 거의 다 쓸어낸 다음에야 국립서울대학이 출범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종속적 압축성장의 시절에는 산업화의 필요에 따라서 그때그때 학과나 전공을 계속해서 신설한 나머지 급기야 재벌의 선단식 경영 내지 백화점식 경영과 유사한 현재 체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로를 통해서 서울대와 서울대의 모든 학과는 대학간 서열화 구조의 맨 위에 자리잡게 되었고, 서울대는 학력과 학벌을 통해 사회적 특권과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 교수가 제안한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서울대에서 법대, 의대, 경영학과 등을 없애자는 것이다. 사회적 특권과 기득권의 재생산에 직접 연결되는 이런 대학과 전공을 없애면 서울대 졸업장과 관련된 학벌주의 및 대학 서열화 구조는 금방 타파될 것이라고 한다. 그 대신에 각 분야의 인기 없는 기초과학이나 대규모의 재정 지원이 필요한 학과나 전공은 살려두고 키워나가자는 것이다. 법대 강의실이 사법고시 학원으로 전락하는 것, 그리고 의대가 개업의를 키우는 것을 막기만 해도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이 제대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 내부의 지배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최 교수는 그 핵심이 대학 교수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총장이 예산편성권과 인사권을 가져야 하는 데 있다고 본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설치령을 보면 이 권한은 교육 관료인 사무국장이 갖고 있는데, 국공립대학은 먼저 이런 제도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경우는 사립학교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해야만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한다.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를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사학 재단의 권력독점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최 교수의 안을 내가 지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서울대 내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적인 개혁 방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서울대 내부 구성원의 이해와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최 교수가 강조하는 문제 의식은 서울대의 현재 시스템으로는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 서울대가 학문의 수입 오파상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지론인 것이다. 외국 학문 수입 ‘오퍼상’에 안주 반면에 정운찬 총장은 서울대 입시안은 물론이고 고교 평준화제도 철폐를 계속해서 주장한다. 특히 후자는 총장 되기 전부터의 지론이어서 나로서는 그의 주장들이 충정어린 소신에서 우러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 총장은 자신의 사적 체험 안에 갇혀 있다. 1965년에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의 진학률은 각기 54.3, 69.1, 32.3%였다. 2003년의 그것들은 각기 99.9, 99.7, 79.7%다. 거칠게 계산해도 전국민의 12% 정도만이 대학을 겨우 가는 상황과 전국민의 80%가 대학을 가는 상황은 아주 다르다. 지금은 고등학생 정운찬처럼 성경 공부를 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도 없고, 은행원 정운찬처럼 잠시 힘을 비축하면서 외국유학 준비를 할 수도 없다. 가난한 집 아이가 서울대 인기학과를 들어가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더 나아가 미국 동부의 일류 사립대학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따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지간한 중산층의 통장 잔고로는 미국 유학생 비자가 결코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사임에 분명한 입시 방안을 통해서 학생들을 뽑겠다고 서울대 쪽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거꾸로 나는 다음과 같은 ‘중대 제안’을 하겠다. 총장을 포함해서 서울대의 모든 교수들로 하여금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에 상응하는 재임용 시험을 꼭 치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학제적이며 초분과과학적(interdisciplinaray and transdisciplinary)’ 지필고사와 구술시험에서 탈락하는 교수들은 설령 이미 정년이 보장되었다고 하더라도 모조리 비정규직 교수, 그러니까 보따리 장사꾼으로 떨어뜨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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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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