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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7:14 수정 : 2005.07.28 17:17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리더스북 펴냄

잘 팔리는 책은 으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소리소문 없이 출간 넉 달만에 2만부를 찍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이 독자의 호응을 얻은 비결은 내용이 감동적인 데다 가슴으로 감정의 파장이 물결치게 하기 때문이리라. 동병상련의 독자일수록 감정의 진폭과 공감대는 더 클 터이다. 아파 본 자만이 아픈 이의 심정을 안다.

한국방송의 현장 르포 ‘병원 24’를 보다가 콧등이 시큰해지곤 한다. 그런데 시골의사 박경철이 직간접으로 겪은 ‘병원 365일’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병원이란 정말 울고 웃는 인생사의 축소판이다.” 여기서 도시의 대학병원과 시골 병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또 인생사가 그렇듯 기쁨은 순간이고 슬픔은 지속되는 건 그것의 축소판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환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결말 또한 비극적이지만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특별히 미화하거나, 덧붙이는 과정” 없이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좀더 폭넓은 시각을 갖기를 희망”해서 일까? 가난한 사람들의 애달픈 사연에서도 구질구질함을 느낄 겨를은 없다. ‘더러는 대책 없이 참혹한 우리들의 삶’과 ‘인간 역사의 가혹함’에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시골의사의 붓끝을 따라 쓰라림에서 뭉클함까지 감정의 널을 타다 영규씨의 사연(‘밥벌이의 고통’)에 이르러 이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젠 좀 마음을 추스르는가 싶더니 장애인 부모를 둔 정미의 얘기에 가슴이 찡하다. 드물게 밝은 일화가 나오는데 ‘새옹지우’는 그 중 하나다. 경북 영양에서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가 집에서 키우는 소에 들이 받혀 안동에 있는 시골의사의 병원에 왔다. 할아버지는 오른쪽 갈비뼈가 네 개 부러지고, 폐 속에 피가 차는 ‘폐혈흉’ 상태였다. 화가 치민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오면서 “망할노무 소 잡아 묵어뿌려야지”를 되뇌었다. 그런데 수술 직후 찍은 가슴사진의 왼쪽 폐에서 뭔가가 발견되었다. 흉부 시티촬영 결과 폐암이었다. 할아버지는 대구의 어느 병원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는데 다행히 폐암 1기였다. 폐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고 빠르게 퍼지는 특성이 있다. 소뿔에 받히지 않았다면 할아버지의 운명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한두 달 지나 병원에 인사차 들른 할아버지는, 그 소를 잡아 잡수셨느냐는 시골의사의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아유~ 아들 삼았니더.”

시골의사가 들려준 생생한 삶의 기억은 그간 유행한 마음을 ‘뎁혀’ 준 이야기들을 ‘의사’ 휴먼 스토리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에는 그의 뛰어난 글 솜씨가 한몫 단단히 했음은 분명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의사로서의 자격지심을 토로하는 대목의 울림도 만만치 않다. “의사란 그러한 감정들(희로애락)에 적당히 느슨해지다가도 가끔은 다시 팽팽하게 조이고 당겨야 하는데 사실 나는 그것에 실패한 사람이다.” 무릇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일말의 회의도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사람을 믿긴 어렵다. 그렇다고 속편의 집필을 머뭇하고 주저하는 것까지 이해 받긴 곤란하다. 그건 애독자들에 대한 저자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문직의 사회적 책임감과 윤리 의식은 사회 구성원의 기대치를 크게 밑돈다. 의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몇 년간 “의사들은 사회로부터 많은 꾸짖음과 걱정을 들었다.” 그래도 의료 전문인은 법률 전문인에 비하면 백 번 낫다. 나는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내 권리가 침해받더라도 변호사 사무실을 찾고 싶진 않다. 손해를 볼지언정 법에 호소하거나 기댈 생각이 없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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