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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발견
강영조 지음. 효형출판 펴냄.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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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아름다우면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그런 곳은 어디인가
조경학자인 지은이는 향적봉, 제주도, 동강 등으로
절경 좇아 발길을 옮기며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감상법을 알려준다
경치가 아름다우면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아’ 하는 탄성이 나오는 곳이면 틀림없이 아름답다. 그럼 아름다운 풍경이란 무엇인가. <풍경의 발견>(효형출판)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이다. “그런 것을 따져 뭐해” 하는 이한테도 쓸 만한 책이다. 쟀도 멋진 곳과 때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은이 강영조 교수(동아대·조경학)는 ①바라보기 좋은 곳, 특히 숨어서 바라보기 좋은 ②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③사람이 최선을 다한 흔적이 많은 ④이름과 의미가 붙여지고 시와 노래로 불리는 ⑤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반복적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대범하게 말하면 풍경의 아름다움은 시계가 확 틔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 규정된다. 원시인이 숲에서 나와 벌판으로 진출할 무렵 자신의 몸을 숨긴 채 모든 것을 살피는 조망이 필수적이었다. 사방이 적이었던 시대가 지나면서 ‘생존을 위한 조망’은 ‘미적 체험’으로 내재화했다는 것이다.
생존 위한 조망이 미적 체험으로
절경은 어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갈릴 터이며 누가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를 터이다. 그래서 ‘풍경의 발견’이다.
덕유산 향적봉, 구룡령, 남해금산 등 조망이 뛰어난 곳은 땀을 흘리며 허위허위 올라 느닷없이 펼쳐지는 전경에서 황홀감을 느끼는 경우다. 시야가 가려진 시간이 긴 탓에 바로 이어지는 멀리보기는 인상적이다. 내려다보는 시선의 각도가 8~10도, 즉 팔을 쭉 뻗은 상태에서 보이는 주먹크기와 각도여서 원경을 편안하게 부감할 수 있다. 해운대 해변은 툭 트인 시야에 더해 넓은 백사장, 긴 해안, 멀어지며 급하게 휜 해안선이 조합되어 보는 이의 실재감을 확인해준다.
“목표로 향하는 발길에 따라 개방과 폐쇄를 반복하는 시계와 시야의 불연속적 변화 혹은 계류의 폭이 좁아지고 깊게 팬 폭호()를 만날 때 우리는 골의 안섶으로 깊이 진입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때마다 물소리는 그 질감을 달리한다. 우리는 이러한 풍경의 질적 차이를 통하여 이 계곡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획득한다. 이런 정위()의 체험은 이 세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기의 실재감으로 이어진다.” 설악산 탕수동 계곡에 대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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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래로 흐르는 물이 산모퉁이를 잡고 돌아가는 동강의 풍경은 ‘똥구멍이 스멀스멀할 정도로’ 아름답다. <풍경의 발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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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트임은 ‘너’와의 마주침, 자연이 말을 걸어온다. 누군가 자기를 보는 듯한 장소, 또는 기품있는 나무나 폭포, 호수 너머의 산과 마주할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때로 그런 곳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고독이란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섬진강, 보문호 호반, 충주호 등은 물이 연출하는 명승이다. 시선을 이동하면서 흐르는 물에서는 지나간 것의 무의미를, 고요한 물에서는 흔들리 않는 마음을, 일렁이는 물에서는 번뇌하는 자기를 보게 된다.
자연과 인간의 처절한 대결 또는 어울림도 아름다움에 속한다.
급한 지붕을 쓴 집, 겨우 붙은 해안도로, 좁은 터널 등 필사적으로 획득한 아늑한 풍경이 울릉도의 아름다움이요, 현무암 돌담, 지붕의 밋밋한 물매와 이를 닮은 한라산 물매는 바람에 맞선 제주의 아름다움이다. 남해 가천 마을 다랑논 역시 자연과 공생하는 사람들이 만든 민예품. 바다로 내려갈 수도, 산을 넘을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악전고투하면서 낳은 절경이다. 언양 작천정의 봄 벚꽃은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피었다 사라지는 찰나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많은 사람들이 흥성스럽게 모여 먹고마심으로써 풍경체험을 깊게 한다.
꽃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다던가. 풍경 역시 이름을 붙여 노래하며 이를 공유할 때 아름다움이 더할 터이다. 윤선도가 은둔하여 낙원을 재연한 보길도의 세연정 원림, 금강산 해금강에서 이름을 빌려온 거제 해금강, 정선 아라리 노래가 들릴 듯한 동강, 담양 소쇄원,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상찬해온 해운대 달맞이 등이 그렇다. 동강은 고성리 마을 앞 백운산 자락 끝에서 보아야 제격이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물이 산모롱이를 잡고 돌아가는 광경이 ‘똥구멍이 스멀스멀할 정도로’ 아름답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높은 절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긴 둔치의 콩밭·옥수수밭, 산자락에 야트막하게 붙은 인가가 자아내는 풍경은 더 아름답다. 거제 해금강의 아름다움은 유람선에서 보기 때문. 눈앞에 생생하되 보는 이와 무관한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존재한다. 절벽에 충돌할 것 같은 위기도 연출된 위험. 상처를 입지 않는다면 위험에 가까울수록 즐거운 경험이 된다.
명소는 시간이 빚어낸다
풍경은 존재하려니와 시간과 더불어 새롭게 탄생한다. 밤이 기울거나 보는이가 자리를 옮기거나 하여 휘영청 달이 나뭇가지에 걸리면 기왕의 풍경은 새로운 것으로 변한다. 이름난 명소는 계절, 기후 등 상황이 만들어낸다. 차운시()도 일종의 풍경 리모델링이다. 태백산 설경, 바래봉 철쭉, 설악산 천불동 단풍, 다대포의 낙조 등은 제한된 시간에 존재하는 풍광이고 그런 탓에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다. 짧은 동안에 존재하는 안타까움이랄까. 경춘선은 북한강을 끼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단 두 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풍광이다. 전통적인 산수화가 아니라 근대의 폭력이 만들어낸….
“도시와 전원 그리고 강과 산을 직선으로 질주하는 열차의 시선은 풍경의 서열적 배열을 비맥락적으로 관통한다. 강과 모랫바닥, 강 언덕과 강촌이라고 하는 수변마을의 풍경적 질서는 제방과 터널로 강을 가로지르고 산을 뚫고 지나가는 선로에 의해 해체된다. 강물 위를 지나는가 했더니 느닷없이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그 어둠 속을 빠져나오면 일순에 산촌으로, 우리의 몸을 강제적으로 이동시킨다. 그렇지만 선로에 의해 의도하지 않게 편집된 산하 풍경은 여태까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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