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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8:14 수정 : 2005.08.04 02:39

세계의 과거사 청산
안병직 외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8000원

프랑스 · 스페인등 각구 사례
모범 · 실패 열거 그치지않고
역사 경험 ‘그대로’ 보여줘
한국 사회의 과거사 청산
어떻게 할까 고민 기회줘

 광복 60주년이다. 때와 장소를 기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인류의 독특한 ‘의식(ritual)’이다.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는 인간에게, 과거에 대한 성찰은 그 사회존재적 특성 가운데 근본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성찰해야 할 60년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친일, 한국전쟁, 군사독재가 흩뿌린 지뢰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시공간이다. 이 곳을 거쳐 평화와 민주주의의 미래로 나아가려는 과거의 모든 시도는 난관에 부딪혔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과거에 대한 성찰과 함께, 그 성찰을 어렵게 만드는 오늘을 직시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짊어진 셈이다.

<세계의 과거사 청산>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유용한 길잡이다.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온 안병직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를 비롯해 모두 11명의 역사 연구자들이 이 책을 함께 엮었다.

연구자들은 각각 독일·프랑스·스페인·아르헨티나·칠레·남아공·러시아 등에서 일어난 과거사 청산의 쟁점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손쉽게 과거사 청산의 모범 사례 또는 실패 사례를 추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각 나라들은 좌우 정치세력의 대결, 시민사회 내부의 논란 등으로 인해 극심한 ‘성장통’을 겪으며 과거사 청산의 굽이길을 걸었다.

흔히 과거사 청산의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과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통해 전후 신속하고 철저한 나치 청산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독일에선 그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1970년대 이후의 전후 세대에 이르러서야 나치 청산은 사법청산의 단계를 넘어 사회적·내면적 청산으로 확장됐다. 프랑스도 비슷한데, 친나치 비시정부에 대한 사법청산은 그로부터 한 세대 뒤인 68세대에 의해 비로소 큰 매듭을 짓게 된다. 죄를 캐고 그 법적 책임을 묻는 ‘사법 청산’만으로는 과거사를 올바로 대면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흔히 실패 사례로 평가되는 스페인이나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그런 결과를 낳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과거사 청산 과제 자체를 유예하면서 민주주의로 이행한 스페인이나 좌·우간 정치적 타협에 의해 이를 봉합한 아르헨티나 등은 극심한 내부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핵심적인 화두였다. 구체적으로는 구 체제가 궤멸당한 독일이나 프랑스와 달리, 옛 군부 세력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에 대해 민주주의 세력이 타협한 결과다. 러시아 사례는 좀 더 특이한데, 스탈린 독재를 청산하려는 흐루시초프와 고르바초프 시대의 노력은 (비록 과거사 청산이 직접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국가 체제 자체의 붕괴로 인해 아예 빛을 보지 못했다.

각 사례를 통해 서로 다른 ‘함의’를 끌어올리는 필자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다. 각 필자들은 한국 사회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결과 독자들은 갈림길 앞에서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이야기하는 서로 다른 두 길잡이를 앞에 두고 깊이 고민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여러 나라들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과거사 청산의 과제는 옛 체제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정치 주체에 의한 ‘체제 이행’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거사 청산의 경로와 귀결도 이런 체제 이행을 둘러싼 정치정세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과거청산 작업이 특정세력의 정치적 공세일 수 있다면, 이를 회피하거나 조절하려는 시도 역시 정치적 행보일 수밖에 없다”(박구병)는 한 필자의 지적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과거에 대한 역사적·내면적 반성과 진지한 역사인식의 가능성은 ‘정치적 진공’이 아니라 ‘정치적 대립’이 존재하는 현실과의 대면 속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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