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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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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울고 있다 도시사람들에겐 잊혀진 땅 언제고 개발하여 이득을 남겨먹을 수 있는 땅으로만 대접받는 서럽디서러운 이 나라의 시골
세설 이글을 쓰기 전, 신문에서 ‘니제르 어린이 15만명 굶어 죽기 직전’이라는 기사를 봤다. 전쟁과 독재도 아닌 메뚜기떼의 습격과 가뭄으로 곡물 수확이 없어서, 단지 가난해서 아프리카 니제르의 어린이 15만명이 아사 직전 상태에 있다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살다가 어느 순간, 가뭄에 방죽물 보타지듯이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한 생명이, 보타져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어린 생명들이 15만이란다. 가난해도, 아니 가난하여 어디로 이동할 수도 없이 딱 그 자리에서 옴쭉달싹도 못하는 아이들이 15만이란다. 그러고 보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생활이 위태로워, 어딘가로 이동하거나, 어딘가로 탈출하거나, 하여간 새로운 삶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꼭 가난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고 또 가난 때문에, 어쨌든 그리 희망적이지 못한 삶의 조건들에 둘러싸여서,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제 나고 자란 땅을 떠나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도 있다. 그 이름은 ‘농촌 총각’. 나는 이따금 텔레비전을 보면, 특히 드라마들을 보면, 저게 어느나라 이야기일까, 싶어질 때가 있다. 분명히 우리나라 방송인데도 낯설다. 이 나라는 도시와 농촌이 너무 다르다. 마치 딴나라 같다. 도시는 저 혼자 잘났다. 농촌은 저 홀로 서럽다. 오죽했으면 시인 김용택 선생이 가르치는 어린이가 ‘촌아 울지마’라는 시를 다 썼겠는가. 드라마에서 어쩌다 농촌이나 농촌사람이 그려지면 그 상황이나 사람이 필시 희화화되기 십상이다. 이유는 농촌의 삶과 사람을 도시사람의 눈으로,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농촌의 상황이나 농촌사람이 희화화된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나 자신이 모욕을 느끼는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희화화되기 일쑤인 그 농촌사람들이란 여의도에 10만이 모이면 뭔가 달라지겠지 했다가 30만이 모여도 소용없는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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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에 사는 총각과 결혼하여 그 자신들 당연히 대한민국 장수군민이어서 장수군을 좀 더 잘 알기 위하여 장수군 관내를 나들이했던 장수의 그 애기엄마들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였다. 이 나라 처녀들이 떠나고 없는 곳에 외국 처녀들이 왔다. 그들은 너무나 생기 있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맞딱뜨리고 있는 현실은, 말 그대로 고스란히 이 나라 대한민국 농촌의 현실, 지난주 최성각 작가의 ‘시골에는 빈집이 너무 많다’라는 글에 적시된대로 머리고 얼굴이고간에 거미줄이 친친 감기고, 자전거 레이서 김훈 선생의 표현 그대로 염소가 우물에 빠져죽고 빈 마을에 개소리만이 요란한, 그러한데도 여전히 이 나라 대부분의 도시사람들에게는 잊혀진 땅, 버림받은 곳, 그러나 언제고 개발하여 이득을 남겨먹을 수 있는 땅으로만 대접받는, 서럽디 서러운 이 나라 시골의 현실인 것을. 필리핀새댁 아그네스(가명)는 말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장수는 날마다 아파서 울어요. 시골이 울고 있다는 것을 임실 덕치에 사는 어린이만 느낀 것이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시골이 울고 있다. 누가 그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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