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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9:58 수정 : 2006.01.18 16:26

내 페이스대로 가자. 혼자면 어떤가. 먼저 간 그들을 따라잡으려다간 계속 꽁무니만 좇아가는 여행이 돼버릴 것이다. 그렇게 작심하자 다소 느긋해졌다.

출발 3일전 가까스로 연락된 리차드슨 부부
그들은 이틀 먼저 출발한다며 따라 붙으라고 했다
하지만 사흘, 엿새…갈수록 차이가 벌어진다
그들은 마치 내 추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포위망을 벗어나고 있었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11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추격전이 전개되고 있다. 추격자는 나, 용의자들은 리차드슨 부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그 부부는 출발하기 사흘 전 연락이 돼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해진 일정이 있어 이틀 먼저 출발하면서 따라붙으라고 했다. 내가 여행 초반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서는 돌아가게 돼 있는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를 거친 것은 지름길로 질러가 그들을 따라잡기 위한 것.

가는 곳마다 그들의 소재를 탐문하다가 마침내 쿠키 레이디의 바이크 하우스 방명록에서 그들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미 사흘 전에 그곳을 떠났다. 이틀이 사흘 차이로 벌어진 것. 그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빈곤과 문맹 퇴치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여행하는 나로서는 조금 버거운 상대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함께 갈 혁명동지 구하는 데 반년

여행을 떠나기 전 장거리 여행을 혼자서 하느냐고 사람들이 놀라워할 때마다 나는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느냐고 태연하게 웃곤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조급했다. 같이 갈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거진 반 년을 찾아 헤맸다. 같이 가면 장비를 줄일 수 있고 길을 덜 헤맬 수 있고 더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다. 특히 맞바람이 불면 번갈아 바람을 막아줄 수 있으니 일석사조의 동반효과.


어드벤처 사이클링 어소시에션의 웹사이트에는 여행 동반자를 구하는 광고가 게시된다. 일종의 구인 광곤데 광고 내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인물들도 흥미롭다. 그 중 휴스턴대 교수가 조직하고 있는 팀을 골라서 이메일을 보냈다. 그 때가 벌써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얼마 안 있어 신청자들이 많아서 대기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려놨다는 답장이 왔다. 사실상 거절이다. 그래도 큰 걱정은 안 됐다. 시간 여유가 있었고 다른 구인광고들이 있었다. 하지만 3월까지 석 달 동안 같은 방식으로 여러 차례 거절을 당하면서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학교에서 관심을 표명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지만 마음만 있지 준비는 전혀 안 된 사람들이어서 믿음이 안 갔다. 예상대로 다 떨어져 나갔다. 여행에 소요되는 3개월이라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체력적, 재정적 부담이 적지 않은데 쉽게 떠나기는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진짜 혼자 6700㎞를 줄창 달려야 할 판. 급한 나머지 내가 어드벤처 사이클링 어소시에이션에 광고를 냈다.

41살 한국 저널리스트. 미국 횡단 동반자 구함. 5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스케줄 조정 가능.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그러나 가끔 다른 길로 샐 수도.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진도 촬영하고 글을 쓸 예정. 캠핑을 주로 하고 밥도 해먹음. 구간 구간만 합류하는 것도 환영.

그 때가 3월 중순. 이미 여행갈 사람들은 다 임자를 정했을 무렵이다. 뜻밖에 이메일들이 답지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41살로 자기소개를 시작한 탓인지 나이를 앞에 대면서 같이 갈 뜻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청자들이 많아서 한 때는 팀을 몇 명으로 조직해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다. 팀원들이 너무 많으면 여행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어렵게 된다. 그 중 가장 적극적인 인물은 캔터키 주에 사는 톰이었다.

안녕,

41살의 톰이야. 캔터키주 루이빌에 살고 리컴벤트(누워서 타는 자전거)를 타. 텐트, 짐수레, 자전거 도구도 있어.

내가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서 벗어날지도 모르고 단지 여행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도 인터뷰해서 시간이 걸릴 텐데 그래도 같이 갈래 라는 이메일을 보내자 그는 바로 답신했다.

안녕, 은택.

네가 어디 가든 나는 따라 갈 거야! J 이번 여행이 처음이라서 처음 몇일간은 느릴 텐데 이해해줘. 내 전화번호는 502 742 xxxx야. 계속 연락하자고. 근데 무슨 자전거 타고 가니? 우리 밥해먹으려면 버너가 필요할 텐데. 너한테 연락을 받아서 무지 기뻐. 우리 가장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까? 그렇길 바래. 캔터키에서는 바이크 라이더들을 찾기가 힘드네….

너의 새 친구로부터. J

이 메일을 받으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한번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벌써 가장 좋은 벗이 될 것을 다짐하지 않나, 특히 그 나이에 J와 같은 이모티콘을 이메일에 섞어 쓰질 않나. 마치 맞선을 본 다음날 혼수를 상의하자는 것과 다름 없다. 아내는 이 사람이 수상하다면서 인적 없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가서…. 알았어, 그만해. 그의 정체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내가 사는 미주리 주 컬럼비아에서 차로 무려 7시간이 떨어진 곳에 있는데 중간에 길을 잃어 헤매는바람에 약속시간보다 2시간 가량 늦게 도착했다. 그의 집은 흑인들이 주로 사는 허름한 아파트였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서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베란다에 리컴벤트가 한 대 있기는 했다. 허탕을 치고 컬럼비아로 돌아와 약속시간에 늦어서 미안하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가 괜찮다고 짤막하게 회신했다. 뭔가 일이 이상했다. 그 먼 길을 찾아갔으면, 그리고 그렇게 긴 여행을 같이 할 사람한테라면 기다려주거나 혹은 기다리지 못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설명을 해줄 법 한데…. 같이 그 집 앞까지 갔던 아내는 그 사람이 아마 약속을 잊어버린 것 아니냐며 이번에는 범죄 용의자보다는 정신이상자로 추정했다.

실망했지만 내색은 안 했다. 그 외에도 역시 41살인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제니퍼, 47살의 덕, 나이를 밝히지 않은 워싱턴 디시(DC)에 사는 사라, 27살의 슬로베니아 출신 마르코, 64살의 린다, 플로리다에 사는 60살의 래리 등이 연락해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다니는 한 아시아계 여대생이 박사과정에 다니는 다른 아시아계 여학생과 같이 동참의사를 밝혔다. 꼭 톰이 아니라도 같이 갈 사람들은 많아 보였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여행을 동반하기는 무리여서 집단인터뷰를 기획했다. 나부터 인터뷰해서 전체 이메일로 보낸 뒤 각자 똑 같은 질문에 이메일로 답하게 했다. 다시 톰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솔직했다. 그리고 아내의 두 번째 추측은 기가 막히게 맞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톰 그와 여행하는 광경을 상상라면 감당이 안됐다
내 인간성에 비춰볼 때 그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내 이름은 톰 XXX. 직업은 지붕 고치는 일. 지붕에서 떨어져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고 기억상실증이 있음.

1. 여행 출발지: 조정가능 2. 여행 종착지: 확실치 않음. 3. 음식: 이게 걱정되는 대목. 굉장하게 많이들 먹는다고 들었음. 음식을 살 만한 충분한 돈이 있을지 모름. 4. 하루 주행거리: 말하기 어려움. 날씨에 달려 있음. 최선을 다하겠음 J 5. 어떤 지도를 이용할 계획: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음. 6. 경험: 자전거 여행 경험무, 하지만 여행은 좋아함. 7. 하루 예산: 돈이 별로 없어 얼마를 쓸지 모르겠음. 8. 여행대비 훈련: 몇 ㎞ 정도. 9. 동기: 사람들이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하는 것을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음.

한마디로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는 것을 폭로한 이 메일이 예비 팀원들에게 발송되자 당혹스런 침묵이 감돌았다. 하나 둘 동참의사를 철회했다. 톰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안녕 은택.

나를 팀에 끼워줘서 고맙기는 한데 계획이 바뀌어서 합류 못하게 됐네. 여행 잘해.

사라.

그래도 아시아계 학생은 전화해서 톰과 같이 가는 게 무리가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다. 톰을 팀에서 제외한다면 같이 가겠다는 뜻이 내포된 전화였다. 고민에 빠졌다. 톰이냐 아시아계 학생 2명이냐. 톰이 마지막 문항에서 남이 하지 못할 거라고 하는 걸 해보겠다고 한 말이 귀에 쟁쟁했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한결같이 톰은 아니라고 했다. 아내는 은근히 톰을 미는 쪽으로 돌아섰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세상을 보고 싶다는데 도와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리고 자기는 괜찮지만 여대생 2명과 여행을 같이 한다고 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보라는 뼈있는 말을 덧붙였다.

톰과 같이 여행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감당이 안 됐다. 천천히 달릴 게 뻔하고 기억상실증이 걸려 길을 잃어버린 그를 찾기 위해 여행을 접어두고 수소문하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 여행이 아니라 그의 여행이 될 것이다. 내 인간성에 비춰볼 때 그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꽁무늬 쫓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여대생 일행도 좋은 동반자는 아니라고 느꼈다. 역시 타는 속도도 다를 테고 내가 일종의 보호자격이 되는 것이어서 짐스러웠다. 숙소도 불편할 테고. 그래도 톰보다는 나아 보였다. 한 달을 고민한 끝에 톰을 버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서로 여행이 안 맞으면 중간에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같이 가기로 했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진지해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은 부모한테 허락을 받기 위해서 내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짜 무슨 선을 보나. 조금 황당한 일이었지만 미혼의 젊은 여대생들로서는 내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족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허락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여행을 같이 챙겨나갔다. 그런데 여행 출발 나흘 전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못 갈 사정이 생겼다는 것. 허허벌판에 세찬 바람이 불었다. 다시 외톨이가 된 나는 무차별적으로 절박한 이메일들을 보내 동반자를 구했다. 그래서 가까스로 리차드슨 부부와 연락을 하게 된 것.

리차드슨 부부는 몇 년 전에도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완주한 경험이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동반자. 하지만 사흘 차이로 벌어졌다. 거리로 치면 320㎞ 안팎. 그들은 마치 내 추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포위망을 벗어나고 있었다.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홍은택.
여행 13일째, 바이크 라이더들에게 숙소를 개방하고 있는 버지니아 주 엘크가든 연합감리교회에는 그들의 지문이 남아 있었다. 다녀간 날을 확인하니 무려 엿새 전이었다. 내가 무거운 짐 때문에 발목이 잡혀 시속 14㎞로 그것도 하루에 대여섯 시간밖에 달리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파죽지세로 애팔래치언 산맥을 넘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나는 주저앉았다. 잘못하다간 그들의 뒤꽁무니만 좇아가는 여행이 돼버린다. 내 페이스대로 가자. 혼자면 어떤가. 그게 여행의 참 맛을 더 깨닫는 길이 아닌가. 하늘과 땅 그리고 나, 그게 여행 아닌가.

그러면서 속으로는 페이스를 늦춰 뒤늦게 오는 사람들과 합류할 계산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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