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4 15:45
수정 : 2005.08.04 15:46
동아시아는 지금
작가 권정생은 최근 <녹색평론>(7-8월) 기고문에서 덩치 큰 미군 병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일본군 병사들을 닥달하던 일본 패전 직후 시모노세키 항구 정경과 귀국 뒤 목격했던 이땅의 참상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모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다.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고 고향을 잃고 소중한 인간성마저 파괴되어버린 채 살고 있다. 일제침략에서 시작된 고통의 세월이 백년을 넘었으니 어떻겠는가. 지금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같은 책에서 천규석 ‘대구 한살림’ 이사는 말했다.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은 자신의 어떤 작품집의 머릿글에서 1945년 8·15는 해방절이 아니고 일제가 미제에게 사무인계를 시작한 날이라고 썼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나도 이에 동감하여 8·15에 해방이란 말을 붙이지 않고 그냥 8·15라고 부른다.”
‘고통의 세월 백년’이나 ‘사무인계만 거친 일제-미제’의 세월은 기실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제 40년, 미제 60년’의 식민 백년이란 말인가.
백년 전인 1905년 5월27일 러시아 발트함대가 괴멸당한 두달 뒤인 7월29일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각각 나눠가졌다. 11월17일 을사조약, 12월21일 통감부 설치로 사실상 일제 식민지배가 시작됐다.
지난 1일 <아사히신문> 사설은 오는 12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릴 동아시아공동체 구상과 관련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및 한·중·일 정상회의에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3국도 초청받은 사실을 전하면서 공동체 구상이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사히>는 이들 3국을 새로 끌어들인 것은 일본이며, 그 노림수는 “중국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것”이고 또 “중국이 공동체를 미국에 대항하는 조직으로 삼으려 한다고 의심하는 미국 정부의 뜻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고 썼다.
일본 정부내에 동조자가 많은 우익 <산케이신문>은 같은 날 칼럼 <정론>에서 이런 공동체 구상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라며 6자회담에서 한국쪽의 남북한 공조, 반일 분위기, 중국과의 협력을 두고 “사대주의적 제스처”라고 매도했다. “미-일관계가 흔들릴 리 없고, 또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고 부르짖는 그들이야말로 지난 백년간 영국 및 미국에 빌붙어 이웃을 괴롭힌 철저한 사대주의자들이 아니었던가. 저들의 뒤집힌 눈에는 ‘친일’은 사대주의가 아니고, 이제 백년이나 지속된 미-일 중심의 기존구도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오히려 몽땅 사대주의로 비치는 모양이다. 저들의 세월이 끝나가고 있는 데서 오는 초조감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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