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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4 15:54 수정 : 2005.08.04 16:15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대량생산 시스템에 맞춰 자유이용권 본전 뽑기 위해 사람들은 놀이공원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그래도 재미는 재미다 마술과 과학의 경계를 따라 행진하는 동심의 순례 그것으로도 족하다

생활속의 문화사회학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 한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아래라 /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가곡 ‘그네’의 가사다. 기성세대는 이 노래에서 어린 시절 긴 그네를 굴렀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른이든 아이든 그네를 거의 타지 않는다. 동네 놀이터의 그네는 꼬마들에게조차 별 인기가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네의 재미는 짜릿함이다. 대기와 몸이 세차게 스치면서 느껴지는 전율이다. 그런데 그 느낌을 몇 배로 제공하는 놀이기구들이 유원지에 계속 등장한다. 이제 힘들이지 않아도 그네보다 훨씬 신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어느 놀이공원의 선전 문구를 보자. 자이로스윙 - ‘업그레이드된 스릴과 짜릿함을 안겨드립니다. 40여명이 둘러앉은 거대한 회전기구가 시계추처럼 움직여 회오리바람에 날려가는 듯한 새로운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이로드롭 - ‘하늘과 닿을 듯한 곳에서 시작하는 순간 낙하의 아찔함. 숨이 멎을 것 같은 낙하 순간을 즐기세요. 2초 동안 숨 막히는 공포의 무중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270m 높이의 ‘회전 그네’가 등장했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라토스피어 호텔 타워의 19층 꼭대기에 설치된 ‘인세니티(Insanity)’라는 이 기구는 한번에 10명을 태우는데 타워의 벽면과 20m이상 거리를 두고 시속 70㎞의 속도로 회전한다. 이름 그대로 ‘미친 짓’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그런 광기는 놀이 충동의 중요한 본질을 이룬다.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이라는 책에서 ‘illinx’라는 개념으로 그 정체를 파헤치고 있다. 그것을 한국어판에서는 ‘현기증’으로 옮기고 있지만, ‘아찔함’이 더 적절한 번역어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아찔한 모험을 즐긴다. 어른들은 가끔 갓난아기를 공중에 살짝 던졌다가 받아주곤 하는데, 이때 아이는 깔깔대고 웃으며 좋아한다. 강아지를 그렇게 해보라. 만일 꼬리를 흔들면서 좋아한다면? 그것은 분명 미친개다.

근대사회에 들어와 각종 기술이 발전하면서 놀이문화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구미에서 탄생한 각종 유원지는 그 첫 결실이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것은 탑, 관람차, 기구(), 수족관 등이었다. 높은 곳에서 또는 물속에서 조망하는 파노라마는 매우 경이로운 것이었다. 지금도 거대한 관람차는 유원지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교통수단과 미디어가 발달하고 대중화하면서 그러한 체험의 신선함은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짜릿한 흥분을 제공하는 놀이기구들이 계속 출현하였다. 청룡열차에서 롤러코스터로, 자이로드롭, 번지 점프로 진화했다. 그 핵심 요소는 <속도>와 <회전>의 스릴이다. 나선형으로 꼬이면서 질주하는 열차, 예고 없이 급강하하는 의자에서 사람들은 잠시 넋을 잃는다. 급기야 그러한 중력과 가속의 신체 감각은 물 속에서도 체험된다. 피서객들을 겨냥한 수영장 겸 유원지에는 예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기구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인공파도 서핑, 워터 봅슬레이, 급류타기 (워터 슬라이드, 튜브 라이드)….

그런데 유원지가 제공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바로 <환상>이라는 의미공간이다. 이 역시 로제 카이와가 'mimicry '(모의 : )이라는 개념으로 통찰한 놀이의 핵심 요소에 해당한다. 50년 전 출현한 디즈니랜드는 월트 디즈니가 창출해온 만화세계의 환상을 오프라인에서 다채롭게 구현하였다. 그리고 지금 모든 유원지는 그 패러다임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모험, 미래, 꿈, 판타지 등의 영역 구분이 그러하고, 그 안에 성(), 밀림, 무인도, 동물, 해골, 악당, 유령, 마법사, 요정, 카우보이, 오즈, 피터팬, 백설공주, 피노키오 등이 등장하는 것도 그러하다. 그리고 야외 거리에는 삐에로, 마술쇼, 삼바춤이나 인형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야간에 불꽃놀이와 레이저쇼가 이어지면서 몽환의 분위기는 계속된다. 유원지 근처에 도달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화나 만화에서 보던 원색의 뾰족 지붕들이다. 그 광경에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가슴 설렌다. 미국 디즈니랜드의 여자 화장실에는 거울이 없다는데, 자기의 얼굴을 보고 현실로 돌아와버리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라고 한다.


거대한 유원지들의 구조에는 공통점 하나가 있다. 출입구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애당초 월트 디즈니가 당시 유원지업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현해낸 디자인으로서 이후 모든 유원지의 모델이 되었다. 그 의도는? 모든 손님들이 동일한 문으로 들어왔다가 나감으로써 디즈니 왕국에서의 하루를 완결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 왕국에 한번 들어오면 바깥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이 차단된 영토 안의 모든 자연은 인공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곳은 만화적 공상의 원체험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자기 완결적 무대장치인 것이다.

놀이공원에서 사람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자유이용권의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나라도 더 타기 위해 분주한 것이다. 회전목마에 앉아 있지만 다음번에 어느 코너로 가야할지를 계산하느라 승마를 즐기지 못한다. 장사진을 이룬 손님들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차례대로 놀이기구에 오르거나 특수 관람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출구로 쏟아져 나온다. 그 시간은 대량생산 시스템의 톱다퀴만큼 정확하다. 사람이 노는 것인지 아니면 기계에 의해 놀아지는 것인지. 우리는 아직 놀이에 관한한 <모던 타임즈>를 살고 있는가. 그러나 재미는 재미다. 그것으로 족하다. 거대한 기계와 형형색색 가상현실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만끽하는 별천지의 시공간, 그 유희는 마술과 과학의 경계를 따라 행진하는 동심의 순례다. 디즈니랜드의 신화는 내일 우리에게 또 어떤 꿈을 선사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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