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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국회의원(열린우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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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하고 부덕한 군주는 패망하고 선하며 덕있는 자는 흥한다는 역사적 진실 앞에서 요즘 정치인들도 큰 배움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채오 ‘동주 열국지’ 박정희 유신정권은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하여 수 많은 민주 인사와 학생들을 감옥으로 끌고 갔다. 필자도 10년형을 선고받고 여러 형무소를 전전했다. 그 때 얼마나 혹독하게 다루는지, 독방에다 읽을거리마저 반입을 금지시켰다. 나중에 겨우 경전류의 반입이 허락되어 불경과 사서삼경, 그리고 열국지가 들어왔다. 머리를 더욱 무겁게 하는 경전류는 틈틈이 읽고 열국지는 잠을 설치면서까지 탐독했다. 5권짜리 책을 너무 빨리 읽어 내려가 나중에 읽을거리가 없어질까 걱정하면서 오히려 속도를 조절할 정도였다. 그 속에서 인간의 영욕과 흥망성쇠, 역사의 진리에 접하게 되고 감옥생활의 고통을 이겨 낼 수가 있었다. 열국지는 동주시대(B.C 770-B.C 222), 이른바 춘추전국 시대 550여년에 걸쳐 펼쳐지는 중원의 정치를 소설로 기록한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유래를 보면, 명나라 중엽의 여소어()라는 사람이 <춘추열국지전>을 썼는데, 그 후 명말에 풍몽룡(·1575-1646)이 그것을 대본으로 삼아 <신열국지>를 쓰고, 이것을 청나라의 채오가 18세기 말에 다시 일부 수정하여 <동주 열국지>를 썼다고 한다.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순수한 역사서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실은 사실에 기초하면서도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전형적인 역사소설이다. 그 만큼 묘사나 구성 등이 탁월하다. 그 광활한 중국 대륙이 마치 한줌의 땅처럼 느껴질 정도로 국가간의 교류나 사람들의 왕래가 자유자재한가 하면, 아직 진이라고 하는 거대한 고대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임에도 대 제국이 전쟁을 치루는 것 같다. 소설가가 흔히 속된 말로 ‘뻥 잘치고 과대포장하는 데 능란하다’고 하나, 오늘날 우리가 읽으면서도 사실처럼 착각할 정도이니 가히 알만하다.그렇게 기술하게 된 데에는 작가의 현재적 필요성과 사고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도 변변치 않은 2천여년 전의 과거사를 작가들은 자기가 살고 있던 명나라나 청나라의 판도와 권세 그리고 국가의 규모를 그대로 투영하여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도덕주의에 기초한 중화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성에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 예는 일본의 에도시대를 개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그린 <대망>이라는 대중 역사소설이 패전 후 일본인의 패배감을 해소하여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삼국지가 한 시대 영웅들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것이라 하면 열국지는 무려 550여년에 걸쳐 수많은 나라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시대순에 따라 쓴 것으로 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긴박감과 흥미성은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단지 역사서도 아니고 무협소설도 아니다.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어 우리를 손쉽게 중국고대의 역사로 안내해 주면서, 권모술수와 음모, 전쟁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해 인간 삶의 본질과 행태가 무엇인지를, 권력과 정치가 무엇인지를, 더 나아가 역사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또한 철저하게 권선징악적 사관과 유교적 도덕주의로 무장한 작가들의 정신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악한 자나 부덕한 군주는 패망하고 선한 자와 덕이 있는 자는 흥한다는 역사적 진실 앞에 특히 혼탁한 요즘의 정치판에서 정치인들은 큰 배움을 얻을 것이다. 한 여름, 흥미진진하면서 우리에게 역사의 진실을 가르쳐주고 엄청난 교양을 터득하게 해줄 열국지를 청량지책으로 읽어 보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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