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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4 17:38 수정 : 2005.08.04 17:41

옥창기
야마모토 죠지 지음. 포플러 펴냄. 2003년 12월

감옥서 만난 노인 · 장애인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어” “오갈데 없어” 범죄 빠진다 ‘구멍난 복지‘ 현실 고발

바깥세상 책읽기

2003년 12월에 출판돼, 조용히 일본의 화제작이 된 <옥창기>. 옥창이라 하면 감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던가?

홋카이도 삿포로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저자 야마모토(43)는 제1야당 민주당의 전 대표 간 나오토의 비서관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도쿄도에서 재선한 중의원 의원 시절인 2000년 9월 비서급여 유용 사기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제 막 부인이 임신하고, 정치인으로서도 반짝반짝 빛나던 때였다. 그 당시 외상을 지낸 다나카 마키코와 사민당의 여성의원도 비서급여 유용 문제가 불거져 세간이 떠들썩했다. 그는 2001년 2월에 1심에서 실형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부친의 조언으로 자신을 바로 잡기로 결심하여 항소하지 않고, 부인의 출산 직후부터 복역한다.

비서급여 유용은 사무실 운영비를 벌기 위해 정치인이라면 으레 쓰던 편법이었다. 그러나 모두 다 하는 일이라도 신문에 실리는 순간 혼자 죄인이 되는 게 현실이었고, 날마다 죄어오는 미디어 보도는 피를 말리게 했다.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죄의식도 없이 범죄에 손을 대게 됐는지, 정치 지망생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도록 정계 진출과 당선, 그리고 미디어와의 실랑이를 낱낱이 드러내보인다.

야마모토는 감옥에 가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살았는지, 그리고 정계생활 10여년이 반쯤 술에 취한 듯 살아온 것었음을 깨닫는다. 권력잃은 자신에게 윽박지르는 간수의 싸늘한 비웃음은 ‘선생’이라 불리던 자신에겐 너무 낯설었다. 그리하여 감옥은 그가 맺었던 현실의 인간관계를 변화시켰지만, 진실한 인간관계를 새로 발견하게 해 주기도 했다. 감옥에 간 자신에게 날마다 편지를 써보낸 부인과의 정은 오히려 깊어진다.

 그는 감방에서 복역 중인 장애인들을 돕는 작업을 맡았다. 중의원 선거 때도 복지 공약 등을 내걸었던 그가 감옥에서 본 ‘복지국가 일본’의 현실은 너무 삭막했다.

야마모토가 만난 이들 중엔 장애인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오랜 간호에 지쳐 처를 살해한 남편, 보호자가 없어 감옥에 들어오게 된 장애인, 실수로 어머니를 살해한 지적 장애인 등이 있었다.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감옥이 제일 살기 편하다”는 장애인과 노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과 노인 복지의 대부분을 사실상 감옥이 떠맡고 있는 ‘복지국가 일본’의 실상을 고발한다. 출소 뒤 오갈 곳 없어 다시 범죄를 저질러야하는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지원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초판 발행 이후 장애인 가족들을 중심으로 조용한 인기를 끌며 여러번 중판되었다. 언론도 여러 차례 관심을 나타냈다. 출소 뒤 정치활동을 접고, 도쿄도내의 지적 장애자 갱생시설에서 지원 스탭으로 자원봉사하면서, 장애복지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심신 장애를 지닌 수형자 시설과 출소 뒤의 수용시설 설립을 강조한다.

이 책으로 저자는 2004년 8월 출판사 신초가 주는 다큐멘트상을 수상했고, 올해 4월에는 일본의 <티베에스(TBS)> 방송국이 이를 특별기획 드라마로 방송했다. 주인공은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에 등장했던 야나기바 토시로가 맡았다. 야나기바는 “원작을 읽고 울었다.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유사체험시켜 주는 것은 배우에겐 매우 은혜로운 일이다. 배우로서의 인간 만들기에 플러스가 되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물론이고, 급속한 고령화와 더불어 증가하는 1인 세대, 그리고 오랜 간호생활에 지쳐가는 노인들이 더이상 지금의 복지정책에 기댈 수 없어 일탈을 감행하는 현실을 고발한 이 책은 한국에도 교훈이 될만하다.

책을 읽고, 도쿄 거리의 지저분한 홈리스(노숙자)들이 최소피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작은 범죄라도 저지르기만 하면 따뜻한 밥이 나오는 (감방)생활이 보장되는데 말이다. 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서 바람에 휘청거리던 나무와 감옥에 간 ‘종두’ 생각도 떠올리게 했다.

저자는 달빛 차가운 옥창 너머로 자신을 부르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음이 틀림없다. 옥창으로 늘 바라보던 나스산처럼 누가 무어라해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인생을 찾았으니까. 도쿄/이수지 통신원 buddy-su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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