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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4 18:14 수정 : 2005.08.04 18:45

김별아 역사소설 <영영 이별 영이별>

82살 정순왕후 운명으로 시작 “잊기위해 기억해냅니다” 49일 중음 떠돌며 생 돌아봐 세련된 문장 사료 빈한함 메워 청계천 11개다리 소재로 한 ‘맑은내 소설선’ 첫 작품

<미실>의 작가 김별아(36)씨가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킨 또 한 권의 역사소설 <영영 이별 영이별>(창해)을 펴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비운의 소년왕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다.

미실과 달리 운명 감내하는 여인상

미실과 정순왕후는 최고권력자의 여자라는 점에서 통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거기까지. 미실이 일인자의 최측근이라는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남자를 제치고 지존의 자리에 오르는 데 비해, 정순왕후는 남편의 몰락과 함께 그 역시 나락에 떨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아울러, 미실이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권력을 좇고 마침내 거머쥐는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면, 정순왕후는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다만 감내할 따름인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정순왕후의 관찰 범위 내에서 미실과 비교할 만한 기질의 소유자는 아마도 파락호 연산군의 후궁이었던 장녹수 정도가 아니었을까.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이 불과 3년 뒤에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옥좌를 넘겨준 데 이어 다시 2년 뒤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 마침내 죽임을 당한 반면, 정순왕후는 지아비의 죽음 이후에도 65년을 더 살다가 운명했다. 소설은 1521년 유월, 여든두 살 나이의 정순왕후가 고종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특이한 것은 첫 장의 번호가 49이며 그 뒤 역순으로 진행되어서는 0장으로 소설이 마감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음’을 떠돈다는 49일간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 49일 동안 정순왕후는 단종의 폐위와 죽음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지난 생을 한스럽게 돌이켜본 뒤 마침내 차생(次生)에 든다. “나는 잊기 위해 기억해내기로 하였습니다”(21쪽)라는 문장은 기억에 의한 진술이라는 이 소설의 서사가, 화자인 정순왕후가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절차임을 말해준다.

김별아
다음 생까지 49→0장 역순으로


소설은 정순왕후의 혼백이 먼저 세상을 뜬 단종을 향해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서술된다. 단종의 슬픈 이야기가 앞선 작가들에 의해 여러 번 소설로 옮겨진 데 비해 정순왕후의 이야기는 역사서에도 극히 소략하게 나와 있다는 점은 작가에게 이중의 어려움을 제기할 법하다. 사료와 그에 대한 기존의 소설적 해석에 먹혀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헐거운 사실의 기록을 상상력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소설의 성패는 상상력의 그럴듯함과 어조의 적실성에 좌우되기 십상이다. 김별아씨는 소설집 <꿈의 부족>에 실린 몇몇 역사물들과 장편 <미실>에서 과시한 바 있는 세련된 문장으로써 난관을 돌파하고자 한다.

“아침으로 왔다가 저녁으로 가는 하루가 켜켜이 쌓여 이토록 까마득한 시간의 집을 지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추슬러보니, 어느덧 먼지로 들보를 삼고 티끌로 구들장을 놓은 집 안에 내가 오도카니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타래처럼 엉킨 백발과 흘러내린 주름으로 더는 누추하고 비루할 수 없이 고비늙은 노파가 세상의 무엇보다 질기고 모진 목숨을 견디고 있었습니다.”(10쪽)

“연산 대는 살기보다 죽기가 훨씬 쉬운 시절이었지요.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살인극에 왕족이건 사대부건 백성들이건 제 목숨 값이 얼마나 헐한가를 셈하기에 바빴으니까요.”(22쪽)

문장의 세련미가 읽는 맛을 돋운다면, 단종 사후 정순왕후의 삶이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점은 사뭇 아쉬움을 준다. 사료의 소략함을 과감한 작가적 상상력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었는데, 작가의 모험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대신 정순왕후가 80여 평생에 걸쳐 목격하는 궁궐 안팎의 사변과 권력의 부침 같은 것을 서술하는 ‘간접화법’을 통해 주인공을 그가 놓인 시대 상황 속에서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작가의 모험심이 발휘되는 것은 정순왕후와 그의 시대에 대해 여성주의적 프리즘을 들이댈 때이다. “나는 당신을 잃으면서 세상의 질서에서 퉁기어 나왔고, 공맹의 하늘 아래서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37쪽)는 대목만 해도 삼종지의의 유교적 이치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가 여성 일반을 가리키는 ‘우리’로 바뀐 다음 대목에서 남존여비의 질서에 대한 반감은 소설 밖으로까지 우렁차게 울려나오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미 운명에 호되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무릎을 꺾인 사람들입니다. 명분과 도리, 그 미명과 훈계에 밀려 자기 몫의 생애를 송두리째 저당 잡혔지요. 아버지라는, 남편이라는, 아들이라는 하늘이 진동하는 대로 돌풍에 찢기고 뇌우에 쓸려 청맹과니 당달봉사로 땅바닥을 기어야 하지요.”(55쪽)

정순왕후의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여기에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짙게 배어어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를 살았던 정부인 장씨를 화자 삼아 여성주의를 통매했던 이문열씨의 소설 <선택>이 떠오르는 것은 얄궂은 일이다. 두 작품 모두 500년 전 여성의 입을 빌려 작가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 작품의 세계관을 등가에 놓을 수는 없는 노릇. 두 소설의 작가와 독자가 조선시대가 아닌 개명한 현대를 사는 이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는 탓이다.

작가 11명 참여 복원 이전 완간

<영영 이별 영이별>은 다음달 말 복원을 앞두고 있는 청계천의 열한 개 다리를 소재로 쓰여지는 ‘맑은내 소설선’의 첫 작품이다. ‘영이별 다리’ 또는 ‘영영 건널 다리’라는 뜻을 지닌 영도교를 소재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길을 떠나던 단종과 부인 정순왕후가 영도교 위에서 눈물로 이별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영도교를 소재로 삼은 <영영 이별 영이별>에 이어 모전교(김용우), 맑은내다리(김용범), 비우당교(김용운), 광교(고은주), 수표교(박상우), 오간수교(서하진), 장교(이순원), 황학교(이승우), 두물다리(이수광), 하랑교(전성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청계천 복원 이전에 완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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