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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일/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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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꽝의 당당함에 대한 열광과 몸꽝의 초라한 현실 자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열광할수록 현실을 확인할 뿐이다 몸꽝을 생각하고 내면을 염려한다면 아예 관심을 끊어주는 게 최선이다
세설 삼순이가 태풍처럼 지나갔다. 한동안 대한민국은 삼순이와 열애에 빠졌다. 몸짱파와 얼짱파가 권력을 양분한 중원을 넉넉한 뱃살 하나로 평정해 버린 소림의 꽃돼지. 시청자들은 육중한 체중을 날카로운 이빨에 실어 적의 급소를 단숨에 제압하는 삼순이의 필살 직설법에 매료됐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아, 이렇게 퉁퉁한 여자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구나! 아, 이렇게 촌티 나는 이름의 소유자도 저렇게 샤프한 코멘트를 할 수 있구나! 아, 이렇게 퉁퉁하고 촌티 나는 여자도 저렇게 당당하고 샤프하면 얼짱, 몸짱, 돈짱 삼박자의 남자가 알아봐주는구나!!! 그러니 평소 미디어 속에서 벌어지는 ‘짱들만의 잔치’에 열 받을 대로 받은 이 땅의 얼꽝, 몸꽝들에게 삼순이는 ‘우리들의 영웅’으로 비쳤을 법하다. 과연 삼순이는 ‘꽝’들의 영웅인가? ‘꽝’들의 일상적 삶에 어떤 희망을 주었는가? 어떤 이는 삼순이가 외모지상주의에 한방 먹였다고 추켜세운다. 또 다른 이는 진솔한 내면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에게 삼순이가 그런 존재였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삼순이 떠난 빈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몸꽝의 권리회복? 촌스러움의 약진? 내면의 진정성에 대한 공감? 삼순이 캐릭터가 조금이라도 현실감이 있다면 그런 일말의 기대마저 부인할 필요는 없을 거다. 하지만 삼순이의 프로필을 보라. 김삼순, 30세, 고졸, 과자 굽고 케익 만드는 직업, 편모슬하의 셋째 딸, 퉁퉁 푸짐한 외모…. 삼순이는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다양한 타자성의 집합체다. 그런데 삶에 대한 태도와 말 실력은 일류 중에 일류이다. 이게 가능한가? 삼순이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말할 기회도 별로 없고, 말 실력을 쌓을 조건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이 부조화의 깊은 골 때문에 삼순이는 환영받았을지도 모른다. 문화상품의 폭발력은 대중의 좌절된 욕구의 정도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삼순이는 아주 다양한 비주류의 가슴에 쌓인 가래침을 대신 뱉어준 인물이다. 이 역할이 어떤 비용도 전제하지 않고 비주류의 멍든 가슴을 잠시 위무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면 삼순이는 비주류의 영웅이 맞다. 하지만 아무래도 삼순이가 남긴 게 무해한 대리만족 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삼순이는 적어도 두 개의 상흔을 남기고 지나간 폭풍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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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가 남기고 간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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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마지막에 남게 되는 ‘몸꽝의 경제학’ 대차대조표. 김선아는 인기를 얻었고, 방송국은 시청률을 높였고, 몸짱은 가호가치를 인정받았고, 몸꽝은 값비싼 환각제를 한대 맞았다. 그 대가로 몸꽝은 언젠가 다시 삼순이를 갈망할 것이고 상황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 시대 몸꽝의 처지가 자기 몸 버려가며 비싼 세금까지 내야하는 중증 니코틴 중독자의 신세와 흡사하다. 가혹한 체제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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