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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각/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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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지성인들 여관서 자고 비빔밥 먹으며 공경의 생태주의를 논했다 기품있는 사상의 거처 문화의 힘을 갖춘 아름다운 나라 꿈꾼다
녹색에세이/ 달려라 냇물아 수년 전, 새나 돌멩이 갯벌의 조개에게 ‘풀꽃상’이라는 이름의 환경상을 ‘드리는’ 방식으로 참회와 경탄의 환경운동을 펼치던 ‘풀꽃세상’ 시절, 필자는 만약 한 권의 책에 풀꽃상을 드린다면 ?백범일지?에 드리고 싶었다. 그 까닭은 거기 ?나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글에 담겨 있는 백범 김구선생의 나라관() 때문이었다. 백범선생이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1947년 샛문 밖에서’ 쓰신 글이다. 일제의 침탈로터 막 벗어난 직후의 사상이다. 놀랍고도 깊다. 걸핏하면 단식을 무기로 삼던 간디선생에 못지 않다. 깊은 상처 속에서도 백범의 소망은 부국강병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쉬운 결심’이 아니라 더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평화의 꿈으로 이어진 것이다. 백범의 말이 계속된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백범의 생각은 가히 성직자들의 기도에 가깝고, 수년 전 시애틀에 모였던 반세계화의 주역들이 고민 끝에 도달한 대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가까운 얼마 전에도 백범 같은 이가 우리에게 계셨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정신’이 있는가, 묻게 된다. 이태 전, 녹색평론사가 주최한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도 아마 잘은 모르지만, 그런 생각에서 발상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이라크 파병이 확정되었고, 삼보일배에도 불구하고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야간에 감행되었으며, 부안 핵쓰레기장 사태가 일어나던 즈음이었다. 주최측은 지금은 ‘인간다운 생존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뿌리로터 흔드는 극히 불안한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시대’라는 현실인식에서 이의 극복을 위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진 새로운 대안을 구상할 수 있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의 힘’이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취지문에서 밝혔다. 그리고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모신 이들이 도다 기요시, 볼프강 작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그리고 사티쉬 쿠마르 등, 네 사람이었다. 적극적 평화를 위한 실천을 강조했던 도다 기요시는 낡은 운동화와 청바지차림에 멜빵가방을 걸쳤는데,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복학한 대학생 같았다. ‘세계적 석학’에 대한 통념적 이미지를 신봉하던 관습적인 사람들에게 도다 기요시의 외모는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대동한 ?오래된 미래?의 헬레나는 어느 곳보다 이 나라 농촌현장을 보고 싶어 강연을 마친 뒤, 충남 홍성에서 농민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팔공산 아래에서 만났던 볼프강 작스는 ‘산업화된 부유한 나라들의 발자취가 제3세계에서, 또 세계 곳곳에서 줄어들 때 세계가 좀더 지속가능하고 생태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일견 무망해 보이지만 현실적인 기대를 표했다. 핵보유국을 찾아 8천마일을 걸어 반핵을 호소했던 일로 유명한 사티쉬 쿠마르는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이 '모래 위에 세운 누각과 같다'는 비유와 함께, 왜 국가주의와 인종주의, 성적 차별 등은 극복해가면서도 유독 자연에 대해서만은 인간이 더 잘났다는 우월콤플렉스에서 못 벗어나는지 안타까워했다. 그는 '친구인 자연'에 대한 겸손의 태도, 이른바 '공경의 생태주의'를 강조하는 한편, “산업주의, 물질주의 단일문화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전혀 없다”는 인도인 특유의 낙관론을 펼치기도 했다. 문정현신부님과 만났을 때 두 노인이 나누던 뜨거운 눈빛을 나는 상구도 잊을 수 없다. 좀더 사람다운 세상을 위해 골똘하게 고민했고, 그 고민을 놀라운 실천으로 드러냈고, 그런 경험을 여기 와 나눴던 그들의 공통점은 태도의 겸손함이었고, 사상의 진정성과 기품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너무나 자주 듣는 ‘적자생존’ ‘무한경쟁’ ‘경제성장률’ ‘부국강병’이란 살벌한 말 대신 ‘동정심’ ‘연민’ ‘공경’ ‘경건‘ ’기도‘와 같은 부드러운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들은 호텔이 아니라 민가나 깨끗한 여관에서 자고, 대중식당에서 혹은 필자가 일하는 연구소에서 만든 비빔밥을 같이 나누기도 했다. 귀한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할 저비용으로도 다녀갈 수 있다는 기록을 그 사상강좌는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년 4월 사티쉬 쿠마르를 끝으로 사상강좌는 비용마련의 한계로 인해 안타깝게도 중단되어 있는 상태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다국적기업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사실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농사를 반도체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기술과 과학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정부관료 기업가 엘리트들에게, 줄기세포 연구에 광분하는 사람들에게, 석유가 아니라 태양과 수소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성장사회에 대한 확신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적은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고 더 많은 이들이 궁핍과 좌절 속에 빠지게 된 사회구조를 호도하고 은폐하려는 사람들에게, 덜 쓰면서도 더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대안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질문없이 핵쓰레기장 유치를 타퉈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부국강병이라는 확신을 의기양양하게 토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현실로 드러난 기후변화보다 저성장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이니 공생이니 ‘자발적 가난’이니 하는 생태적 가치를 같잖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더러운 전쟁’으로 판명 난 침략전쟁에 동참하고도 죄의식을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닐지도 모릅니다”는 소리를 나눌 ‘사상강좌‘는 외진 구석에서나마 신음소리처럼 계속되어야 옳지 않겠나 싶다.60여년 전, 강한 부자나라가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백범이 여기 이곳에 계셨다는 것은 자랑이면서 한편 오늘도 하나의 책무로 우리의 마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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